사무실 곳곳에 있는 카메라는 근로자의 근태를 지켜보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정보통신기술 발달은 마찬가지로 직장 환경도 바꿔놓았다. 언제 어디서든 연락할 수 있고, 일할 수 있으며, 네트워크를 이용해 작업한 내용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나아가 시공간을 초월한 협업이나 피드백도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전자기기는 대부분 본연의 기능을 넘어 컴퓨터 및 네트워크 기능을 함께 탑재하고 있다. 소식을 주고받는 데 쓰던 휴대전화는 사무용 컴퓨터 기기로 이용되고, CCTV는 언제 어디서나 근로 현장을 확인할 수 있게 프로그램화됐으며, TV는 원거리 근무자와 화상회의를 하는 다용도 기기가 됐다.
충격적인 전자 노동 감시 사례
정보통신기술은 기업에게 자동화 시스템을 통한 생산력 증대를 가져다줬다. 컴퓨터와 오피스 프로그램을 사용해 업무를 통합 관리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가능해졌다. 문제는 이러한 자동화 시스템이 근로자에게 멀티태스킹 능력을 배양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용자가 짧은 시간 안에 더 다양하고 많은 업무를 근로자에게 시킬 수 있게 된 셈이다.
송신자와 수신자가 숫자로 의사를 전달하는 무선호출기가 등장하자 근로자의 족쇄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무선호출기만 해도 암묵적 의사소통 메시지를 따로 정하거나 전화로 직접 확인해야만 업무 지시가 정확히 전달되는 구조였다. 휴대전화가 보편화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일방의 전화 확인 방법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직접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에 의한 업무 지시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의사전달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고, 사용자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정확하고 세밀하게 업무 지시를 할 수 있게 됐다.
휴대전화에 스마트 기능이 탑재되면서 상황은 또 한 번 근본적으로 바뀐다. 인터넷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업무 지시가 담긴 e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오피스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시간 업무 처리와 전송이 가능해졌고, 단문 메시지가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실시간 채팅형 업무 지시도 이뤄진다. 사진과 영상을 통한 복합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업무 처리, 위성항법장치(GPS)와 지도, 위치정보를 활용한 영업 마케팅이 모두 스마트폰을 매개로 이뤄진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다는 말은 모든 것이 기록되고 전달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제 작업장에서 만들어지는 문서와 음성, 영상은 지워지지 않고 계속 저장, 분석된다. 또 실시간으로 누군가에게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도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보통신기기가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시켰다고 응답한 근로자가 각각 25%와 30% 정도인 반면, 사생활이 침해된다고 응답한 이는 64%에 달했다. 노동 통제가 강화된다고 응답한 경우도 54%였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전자 노동 감시 사례는 더욱 충격적이다. 회사에 불만을 표출했더니 사장이 CCTV를 설치한 후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지켜봤다는 한 노동자는 화장실에 가거나 휴식을 취하면 바로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와 근무태도를 문제 삼았다고 한다. 버스기사 폭행 예방을 목적으로 설치한 CCTV가 기사들의 근무태도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기사들의 음성을 녹음한 후 회사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해고한 사례도 있었다.
근로 현장에서는 개인 작업량을 표시하는 작업대 옆 개인용 휴대단말기(PDA)에 화장실에 다녀온 것까지 표시하게 하거나, 회사에서 지급한 스마트폰에 위치추적 기능을 탑재해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최단거리 동선에서 벗어날 경우 알림 문자메시지가 자동 발송되게 한 경우도 있다. 퇴근 후나 휴일에도 개인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속 업무용 SNS에 바로 답을 해야 하거나 업무 보고를 강요받기도 한다.
정보기술 발달은 생산성을 높이는 순효과와 함께 노동 감시 강화라는 부작용도 낳았다.
정보통신기기 발달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은 분명 우리가 상상하던 ‘유비쿼터스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이들이 본연의 기능을 넘어 스마트기기가 되면서 수집하고 활용하는 정보도 텍스트 정보에서 음성·영상 정보, 생체 정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출퇴근만 해도 예전에는 출근체크기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전자태그(RFID)가 탑재된 사원증으로 자동 인식하거나 CCTV 확인, 지문·정맥·홍채 인식 기술 등을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요즘에는 회사에서 입사지원자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를 사전에 조사하거나, 신입사원에게 SNS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입사 이후에는 사용하는 인터넷 접속 주소, 컴퓨터 저장 파일, 메신저 대화 내용, CCTV, GPS, 업무용 토털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노동조합을 설립하려 하자 작업장과 샤워실에 CCTV를 몰래 설치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내용을 문제 삼아 징계나 해고를 가했다는 사례도 있다.
이들 사례에서 회사가 수집하고 활용하는 근로자의 개인정보는 대체로 ‘개인정보보호법’의 ‘목적 외 이용금지’ 조항에 위배된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 주체의 동의만 있으면 얼마든지 개인정보를 수집, 활용할 수 있게 해놓았고,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감시 장비는 노사 협의를 거치면 얼마든 설치할 수 있다. 고용불안을 염려하는 근로자는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에 동의할 수밖에 없고, 감시 장비 설치에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게 된다. 근로자에 대한 전자 감시가 넘쳐나지만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 원인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유비쿼터스 기술 발전에 따라 스마트 워치나 구글글래스 같은 웨어러블(wearable) 컴퓨터가 곧 보편화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근로 현장에서 더 강력한 노동 감시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정보통신기기가 성과를 높이는 수단인지 감시를 위한 족쇄인지 사회적 검토와 고민을 진지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업무 효율성 증대’라는 명제에 드리워진 근로자 전자 감시의 야누스적 행태에 대해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일은 그 첫걸음일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