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기술이 발전할수록 직장인은 기업으로부터 노동 감시를 받을 공산이 커진다.
2014년 오늘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꿰뚫는 빅 브라더가 실제 존재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우리는 이미 유무선 인터넷망과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폐쇄회로 (CC)TV, 위성항법장치(Global Positioning System·GPS)를 통해 자기 존재와 위치가 노출되고 있다. 다만 그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감시로 입는 피해보다 편익성이라는 반대급부에 안주해 빅 브라더 사회의 현실을 모른 척할 뿐이다.
3세대(3G)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 중 하나인 한국의 국민은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당한다. ‘근처 맛집 정보를 알고 싶으세요? 그럼 현재 위치정보 사용을 승인하세요’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하길 원하세요? 그럼 현재 위치정보 사용에 동의하세요’…. 구글을 비롯해 네이버와 다음 등 대형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네비게이션 서비스는 ‘사용자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개인 위치정보 사용에 동의할 것을 강요한다. 멋모르고 ‘승인’ 버튼을 꾹 누르는 순간 초현대식 문명의 편리함이 선물로 주어지는 듯하지만, 당신은 또 다른 ‘21세기형 빅 브라더 사회’의 감시 아래 놓일 수 있다.
빅 브라더의 악몽은 편리하자고 공개한 위치정보가 GPS를 통해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회사는 그럴 리 없어’ ‘그 사람이 내게 그럴 수 없지’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국내 많은 기업은 물론 다른 이의 위치정보가 필요한 사람은 GPS나 무선 인터넷망을 이용해 필요한 대상의 동태를 손금 보듯 살피고 있다.
개인 위치정보 동의 강요
스마트폰 앱의 위치정보 사용에 동의하는 순간 당신도 ‘빅 브라더’ 기업의 노동 감시를 받게 된다.
2월 초 국내 A제약사와 그 자회사의 영업직원들이 “스마트폰 위치 추적 앱을 통해 ‘노동 감시’를 당하고 있다”며 ‘주간동아’를 찾아왔다. 그들은 “회사가 자신들의 영업 위치를 스마트폰 앱을 통해 보고하게 함으로써 인격적 모독과 함께 인간적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그들이 말하는 GPS를 통한 ‘전자 노동 감시’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회사 서버에 입력된 영업 위치에 제시간에 맞춰 가서 사람을 만난 뒤 앱을 켜 ‘콜’을 찍으면 회사가 GPS 확인을 통해 내 스마트폰에 ‘성공’이라는 메시지를 띄워줘요. 시간을 약간이라도 어기거나 좌표 위치 값이 맞지 않으면 ‘이탈’이라는 글자가 뜨죠. 그럼 위에서 연락이 와요. ‘너 지금 어디야’ ‘농땡이 치고도 월급을 받으니 부끄럽지도 않나’라는 말은 예사고요, 온갖 비난이 쏟아집니다. 심한 경우 욕지거리까지 해요. ‘이탈’이 많아지면 심지어 유류비도 삭감합니다.”(A제약사 영업직원 김모 씨)
“우리가 상대하는 고객은 대부분 병원장이나 약품 도매상 사장 같은 ‘슈퍼 갑’입니다. 병원이나 업체를 방문하기로 약속해놓고 전날 회사에 약속 시간과 날짜를 보고하지만, 실제 그분들은 다른 곳에서 보자고 할 때가 많아요. 심지어 병원이나 도매상 앞 카페, 식당에서 만났는데도 스마트폰에는 ‘이탈’이라고 뜹니다. 회사는 믿어주지 않죠. 우리도 자존심이 있는데 의사나 다른 영업직원 앞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콜’을 찍을 때는 정말 부끄럽습니다. 항상 내 동선이 회사에 감시당하고 있는 느낌 때문에 우울증이 올 지경입니다. 아예 2G폰을 한 대 더 사서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직원도 많아요. 현행법상 GPS를 통한 위치 추적은 반드시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데 우리는 동의한 기억이 없습니다.”(A제약사 자회사 영업직원 이모 씨)
과연 이 영업직원들의 말은 사실일까. ‘주간동아’ 확인 결과, A제약사는 그 자회사를 포함해 모든 영업직원에게 CRM(고객관리) 모바일 프로그램을 스마트폰에 깔게 했는데, 그 프로그램 안에 위치 추적 앱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앱 명칭은 ‘활동관리’. 영업직원들에게 다음 날 만날 사람, 장소, 시간을 미리 ‘활동관리’ 앱에 입력하게 하고 당일 영업직원이 그 장소의 좌푯값과 일치하는 위치에서 앱을 연 뒤 ‘확인’ 버튼을 누르면 ‘성공’이라 뜨고, 벗어난 곳에서 ‘확인’ 버튼을 누르거나 아예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이탈’이라는 글자가 영업직원의 스마트폰 화면에 선명하게 뜬다. 영업직원들은 이를 “콜을 찍는다”고 표현한다.
영업직원들의 ‘노동 감시’ 현장
이에 대해 A제약사 관계자는 “위치 확인 앱은 인트라넷 등 회사 업무와 관계된 모든 그룹웨어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영업직원이면 누구나 깔아야 한다. 영업직원에게 개인 위치정보 확인을 강요한 적은 없으며, 앱을 깔 때 동의하게 돼 있다. (제보 영업직원들이) 기억하지 못할 따름이다. 우리 앱은 영업사원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없을뿐더러, 회사는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이 앱은 영업직원의 활동을 분석해 고객정보를 객관화, 수치화하려고 만든 것이지 근본적으로 영업활동을 감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인사상 불이익도 없다”고 해명했다.
영업직원의 현재 위치를 GPS 앱을 통해 파악하는 제약사는 A제약사만이 아니다. A제약사와 매출 경쟁을 벌이는 B제약사는 아예 대놓고 “영업관리를 위해선 다른 대안이 없다”며 모든 영업직원에게 위치 확인 앱을 깔게 한다. 다만, A제약사처럼 영업직원이 다음 날의 영업동선과 시간을 미리 입력하는 방식이 아니라, 매년 초 자신의 거래처 좌표 목록을 미리 입력하고 일주일에 몇 번 이상 해당 거래처에서 위치를 확인하면 회사 측이 이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 앱은 B제약사의 자회사가 직접 만들어 납품했다.
B제약사 관계자는 “2002년 이후 우리 회사 소속의 모든 영업직원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사무실에 직원 자리가 아예 없다. 1년에 단 한 번도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는다. 위치 확인 앱을 쓰지 않고서는 영업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위치 확인 동의서를 모두 받았다. 영업직원의 경우 입사할 때부터 이런 사실을 통보한다. 이에 불만이 있는 직원은 입사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앱의 경우 특정 좌표는 인식하지만 이동 경로 추적은 불가능하다. 직원을 감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려는 것이다. 이 앱을 통해 약품 주문과 배송도 가능하며, 영업직원의 유류비를 실제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하면, 재택근무 때문에 개인 위치정보 추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B제약사의 한 영업직원은 “일부 영업직원은 ‘콜’을 찍으려고 사람을 사는 경우도 있다. 급한 일이 있으면 부모나 부인에게 스마트폰을 주고 해당 위치에 가서 찍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회사 측 관계자 또한 “모든 영업직원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해당 위치에서 100% 콜을 찍는다. 회사도 다른 사람이 대신 찍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솔직히 이 시스템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개인 위치정보 추적 문제는 2000년대 들어 GPS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됐다. 그러나 주문한 물건의 배달 경로와 도착시간 또는 수리기사의 도착시간을 알고 싶어 하는 소비자의 요구,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자 하는 업체 측의 필요성, 산불 감시 등 정부기관의 공익적 사용 필요성이 맞아떨어지면서 각 개인의 위치정보는 동의가 있는 경우 기업이나 개인이 추적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 바로 2005년 7월부터 시행된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바로 그것이다. 각 기업은 이 법률을 근거로 “직원들에게 개인 위치정보 동의서를 받았기 때문에 법적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치정보 추적을 통해 노동 감시를 당한다고 주장하는 근로자들은 “회사 측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개인 위치정보 확인에 동의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강요나 마찬가지다. 동의하지 않으면 위치 추적 앱을 깔 수 없고, 위치 추적 앱이 없으면 실질적으로 영업이 불가능한 구조여서 회사 측의 동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곧 회사를 그만두거나 입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호소한다.
동의 없는 위치 추적은 무조건 불법
현대인을 고개 숙이게 만드는 스마트폰. 하지만 때에 따라선 자신의 동선을 공개하는 위치 추적기로 돌변할 수 있다.
“근로자의 동의하에 개인 위치정보를 수집한다 해도 그 동의가 대등한 사이에서 완전한 자유의사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근로자의 동의 범위 해석과 관련해서도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 또 동의 범위를 넘어 취득한 정보를 처리하는 문제가 있으며, 근본적으로 사생활 보호라는 기본 권리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여지도 있다.
회사가 사원의 위치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사원의 민감하고 내밀한 사생활까지 다 파악할 수 있는 만큼 근로자의 동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노사 간 자율 교섭에만 맡긴다면 해결은 요원할 것이므로 입법적 차원에서 제도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S그룹, L그룹, P그룹 등 국내 굴지의 그룹이 첨단기술 보유 시설과 국가가 지정한 보안 시설, 고객 정보 저장 시설이 있는 각 공장과 사무실 종사자를 대상으로 스마트폰 통제 프로그램 MDM(Mobile Device Management·모바일 기기관리) 솔루션 앱을 스마트폰에 깔도록 권고한 것과 관련해 “이것 또한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노동 감시가 아니냐”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앱은 GPS를 이용한 개인정보 추적 시스템이 아니라, 일종의 근거리 무선 통신망과 전자태그(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RFID) 솔루션을 이용해 공장과 사무실 등 작은 공간 안에서 직원의 위치를 파악하고 직원의 스마트폰 카메라 등 정보 유출과 관련된 모바일 앱 실행을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쉽게 말해 이 앱을 스마트폰에 깔면 회사가 설정한 보안구역에 들어갈 경우 스마트폰 카메라앱이 자동으로 작동 정지되고, USB 등 각종 정보를 빼내갈 수 있는 모든 앱의 실행이 중단된다. 또한 공장 내 직원의 동선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어 회사 측으로선 정보 유출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각 노동단체는 “이 솔루션 앱이 스마트폰에 깔린 앱을 원격 통제할 수 있는 데다 외부에서도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회사에 의한 ‘노동 감시’일 뿐 아니라 사생활 침해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를 내비친다. 최근 금속노동조합(노조) P그룹 사내 하청지회는 “회사가 국가 보안 시설이라는 점을 내세워 사내에서 사진과 동영상 촬영 금지 및 송신 금지 조치에 동의를 요구하지만 실질적으론 강제성을 띤다. 이 앱은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변경,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우려된다. 회사가 보안 강화를 핑계로 직원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개인정보 전체를 감시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노동3권 침해할 개연성도
하지만 P그룹을 비롯한 S그룹, L그룹 등 각 그룹 측은 “MDM 시스템을 스마트폰에 깔라고 강요한 적 없다. 깔지 않으면 스마트폰을 두고 해당 지역에 들어가게 하거나 ‘보안 스티커’를 붙여 해당 스마트폰이 보안에 취약함을 다른 직원이 알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보안 지역을 벗어나면 사용이 불가능한 데다 볼 수 있는 개인정보도 극히 제한적이라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없다”고 해명했다. 심지어 S그룹 관계자는 “이 시스템을 이용해 지난번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태 때 계열 증권사에서의 고객 정보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MDM 시스템과 관련해 보고서를 쓰기도 한 법무법인 거인의 양윤숙 변호사는 “MDM 시스템을 이용한 일부 대기업의 보안체제 강화는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법적 근거 없이 직원이나 직원과 관련된 제3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최근 제정, 시행된 산업기술유출방지법에 따르면 보호구역 지정이나 출입 시 휴대전화 검사 등이 보안 조치의 예에 해당하기 때문에 MDM 시스템을 이용한 전면 감시체제 같은 수준의 보안 조치를 허용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MDM을 활용한 보안 시스템 강화는 산업기밀 유출이라는 명목으로 직원들과 제3자의 헌법상 보장된 인권인 사생활의 비밀자유, 통신비밀자유, 행동의 자유, 인격권 등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며, 심지어 기업 내부의 노조 설립 내지 노조활동 내용까지 모두 감시할 수 있어 노동3권을 침해할 개연성도 농후하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과도하게 인권 침해를 하지 않도록 이에 대한 규제 수단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7년 11월 GPS나 CCTV 같은 전자 감시 장치로 근로자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판단, 당시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사업장의 전자 감시를 적극 규제할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말이다.
“아직까지 전자기기를 이용한 노동 감시에 대한 구체적 피해가 확정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낸 소송도 없어 관련 판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을 지켜보고 문제점이 크게 발견되면 (법 제정을) 고려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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