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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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파 ‘혼다 의원 구하기’

美 정치권 위안부 문제 대변 구심점 구실…한국계는 물론 중국계도 나서 쌍끌이 지원

  • 박현진 동아일보 뉴욕특파원 witness@donga.com

    입력2014-02-24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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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한파 ‘혼다 의원 구하기’

    8선을 노리는 마이크 혼다 미 연방 하원의원.

    2월 14일 미국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파크 시에 있는 파인플라자. 이날 마이크 혼다(73·민주·캘리포니아) 연방 하원의원의 후원행사가 열렸다. 혼다 의원이 미 서부에서 비행기로 7시간 가까이 날아가 동부에서 후원행사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기자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통상 정치후원금 모금행사는 해당 지역구에서 이뤄진다. 지역구를 넘어 다른 지역구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날 행사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노령의 재미교포들은 “아무리 춥고 눈이 와도 이런 행사는 와야지. 우리가 도와줘야지”라며 힘든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날 뉴저지는 폭설로 대중교통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후원행사는 혼다 의원이 기획한 것이 아니라 뉴저지 교포단체들이 혼다 의원을 초청한 것이었다. 팰리세이즈파크는 뉴저지에서도 재미교포가 많이 사는 도시다. 행사장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미국 최초의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있다.

    이날 행사장 앞에서 만난 혼다 의원은 오랜 친구처럼 지내는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이사와 행사를 주관한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민주평통) 뉴욕협의회 정재균 회장 및 정영인 전 회장, 김기철 민주평통 미주 부회장과 인사를 나눴다. 이날 행사에는 100명이 넘는 현지 교포가 참석했다.

    8선 눈앞에 두고 ‘정치적 위기’

    혼다 의원은 한국과 외교적으로 갈등을 빚는 일본인의 후손이다. 한국도, 일본도 아닌 제3국인 미국에서 고국을 지지할 만도 하지만 그의 정치 인생은 ‘반일(反日) 친한(親韓)’으로 이어져 왔다. 이를 이해하려면 그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봐야 한다.



    1941년 캘리포니아 주 월넛그로브에서 태어난 혼다 의원은 영아기 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콜로라도 주에 있는 강제수용소 캠프에서 지내야 했다. 당시 일본과 전쟁을 치르던 미국 정부가 미국 내 일본인을 대상으로 취한 조치 때문이었다. 그는 풀려난 뒤 산호세고등학교와 산호세주립대를 거쳐 1965~67년 미 유엔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엘살바도르에서 복무하며 미국 시민으로 입지를 굳혀갔다. 이후 그는 공립학교 2곳에서 과학교사로 일한 뒤 샌타클래라 카운티 감독위원회와 캘리포니아 주 의회를 거쳐 2000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했다.

    당시만 해도 조국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큰 관심이 없던 그는 몇 년 뒤 미국 한인 교포 사회에서 일기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접하고서야 일본 역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캠프에서 보내야 했던 이유를 자문해봤다. 2005년부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미주협의회와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이사는 미 연방의회에서 ‘일본의 위안부 운영을 규탄하고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결의안’(결의안) 통과에 온 힘을 기울였다. 혼다 의원은 “한국 등 아시아에 그렇게 아픈 역사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고 훗날 털어놨다. 그리고 사회정의를 바로잡고 후세에 다시 이런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고 결의안 참여에 나섰다. 그는 2월 14일 후원행사에서 “교사로서 지내온 경험 때문에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 역사를 꼭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국 교과서도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루지만 위안부에 대해서는 한 문장도 나오지 않는다.

    이후 혼다 의원은 2007년 미 연방 하원에서 결의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킨 주역으로 활동했다. 또 최근 2014년 통합세출법안에 결의안 이행을 촉구하는 문안을 넣는 데도 주도적 구실을 했다.

    재미교포는 물론 한국에게도 더없는 은인인 그가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그는 7선 의원으로 캘리포니아 주에서 탄탄한 입지를 자랑해왔다. 하지만 인도계 미국인 로 칸나(37)가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면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상무부 부차관보를 지낸 칸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돌아다니면서 “혼다 의원이 실리콘밸리를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느냐”고 주장한다. 칸나의 주장은 실리콘밸리에서 서서히 먹혀들어갔다. 6월 민주당 후보를 뽑는 프라이머리를 넉 달 앞둔 2월 7일 현재 칸나가 모은 정치후원금은 197만5000달러(약 21억3000만 원)로 혼다 의원(62만3000달러)의 3배가 넘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전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혼다 의원이 8선에 실패한다면 미 정치권에서 위안부 문제를 대변해왔던 유일한 구심점을 한인 사회는 잃는 셈이다. 난징(南京) 대학살 등 일본의 탄압 역사를 가진 중국 커뮤니티도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한중일 역사논쟁과 관련해 현지 커뮤니티뿐 아니라 유엔에서도 일본에 맞서 종종 공동보조를 취해온 한국과 중국이 이번에도 손을 잡았다. 중국계인 그레이스 맹 연방 하원의원(38·민주·뉴욕) 주도로 재미교포 후원회가 열린 다음 날인 2월 15일 뉴욕 퀸즈 플러싱에서 중국계 미 시민들이 참석한 후원회가 열렸다. 미국에서 한국과 중국 커뮤니티가 ‘혼다 구하기’를 위한 쌍끌이 지원에 나선 것이다.

    재미교포, 정치후원금 전달

    친한파 ‘혼다 의원 구하기’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후원행사가 열린 데 이어 2월 14일엔 뉴저지 팰리세이즈파크에서 ‘한인 후원의 밤’ 행사가 개최됐다. 이 행사에는 김기철 민주평통 미주 부회장과 정영인 전 민주평통 뉴욕협의회 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2월 14일 후원행사에 앞서 혼다 의원은 기자와 인터뷰를 갖고 “11월 (연방의원을 선출하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코리아 커뮤니티의 지원이 큰 힘이 되고 있다. 그 덕에 나는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재미교포들은 십시일반으로 수십 달러에서 수백 달러를 모아 3만 달러가 넘는 정치후원금을 혼다 의원에게 전달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와 기업인이 경쟁 후보인 칸나에게 정치자금을 댄다는 소문도 있어 “실리콘밸리가 칸나를 미는데, 두렵지 않느냐”고 기자가 물었지만 그는 “편안하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그의 자신감은 이어진 연설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혼다 의원은 못 다한 일을 강조했다. 연설에서 그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 다시 선거에 나서게 됐다.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는 일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가르쳐야 젊은 세대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사회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좀 더 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교포들은 뜨거운 박수로 그의 꿈을 지원했다.

    혼다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미 국민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인 홀로코스트는 많이 알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거의 모른다”면서 “한인 교포가 중심이 돼 다양한 인종 커뮤니티에 알리는 노력이 중요하며 나도 거기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혼다 의원은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는 방안을 논의하려고 조만간 미 국무부 고위 관료들과 만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통합세출법안은 미 국무부가 일본 정부와 아베 신조 총리에게 사과를 촉구하는 한편, 일본 후세에게 이를 가르칠 의무(obliga tion)를 지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도 이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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