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보도를 통해서는 유치장 안 생활을 알 수 없잖아요. 어떻게 대접받는지 모르니까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고. 결국 이런 제 궁금증에 대한 본능이 살아나 경찰서에서 경험한 사실을 최대한 정확히 서술하려고 노력했어요.”
그의 유치장 체험담은 자신의 블로그에서만 5만명의 방문자를 불러들였고, 이 글은 곧 다음의 ‘아고라’ 자유게시판과 ‘올블로그’ 등 메타사이트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기본적 인터넷 인프라에 개개인 소통구조 장착
이후 촛불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선 ‘닭장투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이는 집회 도중 부득이하게 닭장(전경버스)에 끌려가거나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더라도 ‘헌법 정신에 입각해 당당히 대처한다’면 두려워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자신감이 깔린 표현인 셈이다.
낯모르는 이의 경험과 이 경험에 대한 댓글들이 집회 참가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준 것이다. 웹2.0식으로 표현하면 ‘집단지성’이 완성된 셈이랄까.
6월10일 오후 7시. 6·10 민주화 항쟁 21주년 기념식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어우러지면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대는 넘치는 사람들로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웠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가 8만명이라는 추정치를 내놨지만, 기자의 눈으로는 족히 수십만명은 돼 보이는 대단한 참여 열기였다. 경찰의 추산치에 분개한 어느 블로거는 촛불집회 사진의 화소를 분석해 사진에서 확인된 촛불이 21만개라는 과학적인 분석치를 내놓기도 했다. 촛불을 들지 않은 사람과 사진 밖에 존재하는 참여자들까지 합하면 50만명이 넘는다는 것. 이 같은 누리꾼의 활동 역시 기성 언론에선 찾아보기 힘든 ‘특종’이다.
10대 여고생들의 무모해 보이는 듯했던 촛불집회는 불과 40여 일 만에 수천 배 규모로 불어났다. 과연 보수단체들의 표현대로 ‘우매한 대중이 방송과 친북단체의 선동’을 받아 거리로 쏟아져나온 것일까? 전문가들은 민주화가 완성단계에 접어들고 대중의 관심이 극단적으로 다양화된 이 시기에 전국적으로 10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것도 평범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를 선전선동에서 찾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물론 1차적 원인은 국민 건강권을 위협하는 쇠고기 협상과 이명박 정부의 독단적 태도다.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의 정치적 확산과 지속성의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블로고스피어로 통칭되는 1인 미디어의 확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인터넷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었잖아요. 개개인이 소통할 수 있는 구조는 기본적으로 마련됐던 것이고요. 이번 촛불집회는 시민들이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것 같아요.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데다 국민 건강권이라는 이슈에 강하게 반응하고 결집한 거죠.”(자동차 정비업에 종사하는 최두호 씨)
기성 주류 언론에서 담아내지 못한 내용들이 블로그라는 1인 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공론이 형성됐고, 시민들이 진실을 알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사실 2002년 시작된 이른바 ‘촛불집회’의 탄생에는 인터넷(네트워크)으로 상징되는 뉴미디어의 힘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한다. 활자(아톰)의 발전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데 반해 전자미디어(비트)의 진화상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특히 올해 ‘촛불혁명’의 주역은 다음 ‘아고라’와 ‘디시인사이드’라는 평범한 자유게시판, ‘아프리카’ ‘유튜브’ 같은 UCC 동영상 사이트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무려 70만명이 집결했다는 6월10일 집회에서도 휴대전화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이하 디카)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는 무수한 ‘시민기자’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시청 앞, 광화문 세종로 사거리, 안국역 인사동길에서도 이 같은 모습은 일상의 일부가 됐다.
휴대전화·디카 덕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시민기자
6월10일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휴대전화(위)로, 카메라(아래)로 현장을 실시간 촬영하고 있다.
실시간 생중계는 집회 및 시위 문화에 일대 혁명을 몰고 왔다. 초고속 무선인터넷인 ‘와이브로 기술’이 적용된 생중계 문화는 현장에 있던 참가자들뿐 아니라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어, 심지어 전 세계 한인 네트워크에까지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다.
프리챌 뉴미디어팀 이길성 팀장은 촛불집회 현장에서 캠코더와 노트북으로 혼자 생중계를 했다. 지금은 회사의 지원을 받아 일반 카메라 2대, 노트북 2대로 4명의 인원과 함께 방송하고 있다.
“우리의 실시간 방송을 유럽에서도 시청하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이 같은 1인 미디어는 민주주의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기존엔 오프라인에서만 협의를 하고 기성 언론매체를 통해 공론이 이뤄졌지만 이젠 온라인과의 결합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돼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죠.”
‘오마이뉴스’나 ‘진보신당의 컬러TV’ 등 인터넷 매체에서의 중계가 지명도를 갖기는 하지만, 개인 블로거나 동호회 회원끼리 팀을 짜 집회 현장에서 캠코더와 노트북을 이용해 전송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저는 촛불 대신 웹캠하고 노트북만 가지고 나왔어요. 오늘 처음 나왔는데, 사람들에게 현장을 생생하게 알리고 싶어요.”(‘아프리카’를 통해 집회 현장을 생중계한다는 김모 씨)
이렇게 전파되는 콘텐츠들은 즉시 초고속 인터넷이 깔린 가정으로 전송된다. 이러한 실시간 방송은 전 세계에 포진한 재외교포들에게도 여과 없이 전달된다. 6월 초에만 400만명의 누리꾼이 ‘아프리카’ 중계를 시청했다고 하니 촛불집회 참여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셈이 된다.
1인 미디어의 힘은 기성 주류 언론이 보여주지 못한 진실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민들은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 ‘왜곡된 정보만을 제공하고 시민과 반대편에 서 있다’는 인식을 갖고 신문과 방송의 보도 내용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국민 건강권이라는 공통 이슈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었고, 그 진실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의 이면엔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
촛불집회 때마다 인터넷 사이트 ‘아프리카’에는 집회 생중계 방송이 수십 개씩 올라온다.
“처음엔 집회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내용도 다 비슷비슷했고. 하지만 5월31일 집회 때 서울대 음대생이 전경에게 구타당하는 동영상을 보고 ‘아,이건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직접 현장에서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군홧발 짓밟힌 여성, 서울대 음대생’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사건이 발생한 날부터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들의 카페와 개인 블로그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분노한 시민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들었고, 촛불집회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기록을 경신해나갔다.
집회 현장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이른바 보수신문 폐간 서명운동이나 ‘보수신문 폐간’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동안 참가자들은 기성 언론에 대해 가졌던 의구심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친구들 싸이(싸이월드)에 가면 집회 현장에서 피 흘리고 그러는데 막상 신문을 보면 이 대통령 편만 들잖아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잘못된 것인데 신문에서는 처음부터 정부 편만 들었어요. 그러니 집회 보도는 물론 다른 보도 내용까지 믿으려 하지 않는 거죠.”(고등학교 1학년 김도희 양)
현장성과 무제한성 특징이 시민들 공감 얻어
1인 미디어는 이 같은 시민과 언론의 거리감을 메워주는 구실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인 미디어가 주류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내용을 실시간으로 보도하면서 ‘진실 전달자’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촛불집회 강제진압을 둘러싸고 전경과 시위대 간에 충돌이 발생하면서 피해자, 가해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실게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1인 미디어는 현장 모습을 담아 보냄으로써 그 자리에 없던 사람들도 어떤 것이 진실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정용준 교수는 1인 미디어의 부각이 미디어 파워에 변화를 가져다준 것으로 분석한다.
“신문이 50대 이상이 수용하는 매체라면 방송은 30, 40대 대상 매체입니다. 반면 인터넷과 블로그는 10대와 20대의 매체죠. 1인 미디어는 역동성이 있습니다. 특히 10, 20대 젊은이들이 현장을 체험하고 그 내용을 인터넷 공간에서 소통함으로써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은 것입니다.”
1인 미디어가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데는 현장성과 무제한성이라는 특징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신문은 지면의 한계로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습니다. 방송은 현장성이 있지만 일부에 그칩니다. 시간적, 공간적 한계가 명백히 존재하는 것이죠. 반면 1인 미디어는 1인이지만 1인이 아니에요. 현장에 나간 모든 1인 미디어들이 모이면 24시간 내내 현장을 생생하게 중계할 수 있고, 어느 장소에서든 그 장소를 촬영하는 1인 미디어가 존재합니다.”
물론 이 같은 집단참여에서 싹트는 느슨한 공동체 문화는 인터넷을 오로지 문서를 읽거나 e메일을 확인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올드 세대’에게는 부정확한 정보가 판치는 ‘갈등’과 ‘혼돈’의 공간으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1인 미디어의 등장은 사회 이슈에 무관심한 시민들까지 공론의 장으로 나오게 만들었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질적 성장을 가져오는 비디오크라시(videocracy) 개념으로 발전했다는 지적이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성동규 교수는 1인 미디어가 민주주의의 폭을 확대시켰다고 설명한다.
“1인 미디어의 등장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금기했던 주제들을 과감히 깨뜨렸습니다. 웹2.0 시대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사회적 네트워크가 강화됨으로써 1인 미디어가 사회적 어젠다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의 경우에도 1인 미디어가 온라인과 결합되면서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다시 정치의 장으로 돌아오게 해 오바마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참여를 통해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인 것도 성과로 지적된다. 다만 1인 미디어가 강화하는 참여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재 구실에 그칠 뿐 그것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사회 이슈에 무관심한 시민들에게 참여민주주의 산교육
하지만 1인 미디어가 소통 공간을 만들어 대안 언론과 공론장의 역할을 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인 미디어가 건전한 공론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속보 위주의 정보 전달에서 벗어나 시대상까지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그런 의미에서 1인 미디어의 활동이 시대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은 1인 미디어의 진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단순히 일회성 보도에 그치고 싶지 않습니다. 한 시대의 기록을 남기고 싶은 거죠. 촬영한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지금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2008년 촛불시대를 살아가는 전체적인 모습을 담고 싶습니다. 이 카메라가 진실을 드러내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영화감독 박성준 씨)
“다음 아고라의 인기가 높지만 새로운 글이 나오면 예전의 기록으로 묻히잖아요. 블로그는 검색과 링크를 통해 먼 훗날에도 지금의 기록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6·10 민주화 항쟁이 21년째를 맞고 있는데도 당시의 자료를 찾으려면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라도 내보내지 않으면 보기가 힘들잖아요? 1인 미디어와 블로그가 결합되면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정보의 공유 기능을 할 거예요.”(BK_love 김봉간 씨)
생산자인 1인 미디어도 시민들이고, 이를 보고 광장으로 뛰쳐나간 사람들도 시민들이었다. 이들의 힘은 작은 규모로 시작된 촛불집회를 다수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거대한 공론장으로 만들었다. 1인 미디어를 디딤돌로 시민이 광장을 넘어 참여로 나간 2008년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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