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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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죽이면 가 만히 있지 않겠다”

국정 실패 여권 파워게임 4R 돌입 … “소장그룹 vs 萬事兄通” 폭풍전야 긴장감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8-06-16 13: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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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두언 죽이면 가 만히 있지 않겠다”

    6월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출석한 정두언 의원이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정두언 의원(한나라당)이 기폭제가 된 여권의 권력투쟁은 ‘예고’됐으나 ‘우연’하게 벌어진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 가운데 한 명인 그가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 류우익 대통령실장, 박영준 전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 장다사로 대통령 정무1비서관을 꼬집는 인터뷰 기사가 6월7일 ‘조선일보’에 실리면서 정국은 요동쳤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보수혁명’의 주역을 자임하던 정 의원은 그즈음 좌절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네 사람을 묘사한 대목을 잠시 읽어보자.

    류우익 대통령실장 : 그는 민비(閔妃·명성황후) 같은 존재다. 민비가 누구냐. 흥선 대원군이 세도정치를 없애겠다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을 고르고 골라 앉혀놓은 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떻게 했나. 대원군을 쫓아내고 또 다른 세도를 부리기 시작하지 않았나.

    박영준 전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 : 류 실장보다 더 문제 있는 사람이 박 비서관이다. 그는 대통령 주변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음해하고 모략하는 데 명수(名手)다. 어떻게 익혔는지 그런 분야에서는 정말 ‘엑설런트’하다.

    장다사로 대통령정무1비서관 : 박 비서관을 대통령 주변에서 떼어놓으려고 하면 장다사로 비서관이 나섰다.

    이상득 의원 : 그분은 부작용이 조금 있더라도 권력을 장악하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권력함수 따라 ‘연대’와 대립 줄타기

    친이(親李·친이명박)로 불리는 권력집단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뉜다. 이상득 의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 ‘원로그룹’, 진수희 안경률 이군현 의원 등 ‘이재오그룹’, 정두언 의원과 박형준 전 의원 등 ‘소장그룹’이 그것이다. 이 세 그룹은 ‘권력 함수’에 따라 ‘연대’와 ‘대립’의 줄타기를 벌여왔다. 세 그룹은 그간 세 차례 파열음을 냈다.

    1. 4·9 총선을 앞두고 55인의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자가 이상득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는 ‘거사’를 벌였다. 그 중심에 정 의원이 있었다. 거사 다음 날 오후 1시 소장그룹으로 분류되는 A의원은 이재오그룹 B의원의 전화를 받았다. A의원은 격앙돼 있었다.

    “B의원님! 나는 공천장 반납할랍니다. 의원님하고 나는 공천장 던집시다. 이게 뭡니까. 이러자고 우리가 MB(이명박 대통령)를 위해 뛰었습니까? 나는 안 할랍니다.”

    A의원은 전화를 끊은 뒤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의 박영준이 다 말아먹고 있다. 검찰, 국정원 인사? 그건 아니다. 짜증나 죽겠다. 이렇게 가면 우리 대통령 실패한다.”

    ‘55인 거사’의 배후는 소장그룹의 핵인 정 의원이었다. 당시 이상득 의원과 맞붙었다가 패배한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상득 의원을 존경하고 따라왔다. 이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한 55인은 당과 대통령을 위해 나선 것이다. 권력 투쟁은 절대 아니다.”

    ‘55인 거사’ 때 이재오 전 의원의 포지셔닝은 어정쩡했다.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한 거사를 지원하는 듯하다 결국 고개를 숙인 것. 주동자 중 한 명이던 이 전 의원이 빠지면서 거사 동력은 약해졌다.

    2. 이 전 의원이 총선에서 낙마한 5월 권력집단 간 두 번째 다툼이 있었다. 이상득 의원이 박희태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을 당 대표와 원내대표로 민다는 소문이 파다할 때다. 이재오그룹과 소장그룹은 안상수 의원과 정의화 의원을 대항마로 들고 나왔는데, 이 전 의원이 또 한 번 물러서면서 원로그룹이 승리했다는 후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첫 조각과 인사 때부터 소외된 소장파가 또다시 좌절하는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정두언 죽이면 가 만히 있지 않겠다”

    이상득 의원(위), 류우익 실장

    3. 세 번째 거사는 정 의원이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는 5월19일 ‘조선일보’와 정식으로 인터뷰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기자들을 만나 좌절감을 토로했고 ‘조선일보’ 기자와도 술 한잔 하면서 얘기나 하자고 만났다고 한다. 녹음기를 켠 기자가 “끄라면 끄겠다”고 말했을 만큼 편한 자리였다. ‘조선일보’가 정 의원과의 면담 내용을 기사화하겠다고 전하자 정 의원은 당황했다고 한다. 정 의원뿐 아니라 권부 인사들도 ‘조선일보’ 기사를 막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의 측근이자 브레인격인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디지털미디어학부)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고, 김 교수의 반응은 이랬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상득 의원을 걸고 넘어가라. 그리고 보수 대 혁신을 전제로 깔아라. 자기희생과 백의종군이 전제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상득 사람’ 박영준 비서관 낙마

    정 의원은 김 교수의 조언을 따랐다. 정 의원은 6월10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인사가 만사다. 인사 실패가 무능 및 부도덕 인사로 이어져 결국 국정 실패까지 초래했다. 그런데 인사를 쇄신한다면서 인사 실패 책임자는 그대로 있고 실패한 인사의 결과만 바꾸고 있다. 인사 실패를 초래한 사람들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대통령이 책임지라는 얘기다. 이래 가지고 쇄신이 제대로 되겠는가. 그렇게 하면 국정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겠는가.”

    정 의원의 세 번째 거사 때 ‘이상득의 집사’로 불리는 박 전 비서관이 옷을 벗었다. 그는 ‘직’을 떠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후보일 때’ 공적 직함이 없던 그는 소장그룹 의원들을 상대하면서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청와대 입성’보다 ‘총선 출마’를 원했다고 한다. 그는 4·9 총선 때 곽성문 전 의원(자유선진당)의 한나라당 탈당으로 ‘무주공산’이 된 대구 중·남구 출마를 기정사실화했으나 이 대통령이 잡는 바람에 청와대로 유턴했다. 이 대통령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자리(국회의원)보다 이 자리(대통령비서관)가 할 일이 훨씬 많다. 그리고 네 역할을 메울 사람이 없다.”

    박 전 비서관과 가까운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박 비서관은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권력의 핵이라고 불리는데 내가 볼 때는 그렇지 않다. 그는 말 그대로 집사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는 억울하다.”

    박 비서관의 낙마로 여권의 권력투쟁은 4라운드에 접어들었다. 헤게모니를 쥔 원로그룹은 박 전 비서관을 ‘희생양’으로 여기는 듯하다. 청와대 안의 기류는 엇갈린다. 원로그룹에 가까운 인사들은 “박 비서관을 향한 이 대통령의 신뢰는 변함이 없다”고 믿는다. 반면 소장그룹과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은 “사필귀정”이라고 본다.

    3라운드는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조금 다르게 소장그룹이 판정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완패당한 앞선 거사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정두언 죽이는 쪽으로 나오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반응이 수도권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헤게모니를 쥔 원로그룹은 정 의원의 ‘약점’을 쥐고 있다고 한다. 소장그룹 안에선 “이상득 의원은 당분간 건드리지 않는다. 그가 무너지면 대통령이 심리적으로 무너진다”는 반응도 나왔으나 이 의원을 공격할 태세다.

    정 의원을 선봉으로 한 소장그룹이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님’을 통하면 된다)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여권의 헤게모니 다툼이 4라운드에서 어떻게 귀결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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