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은 국민 여동생이라 불린다. 우리 당에는 ‘국민 언니’ 박근혜가 있다” “황진이처럼 뼈대 있는 기생이 될 것” “감사원이 감사를 너무 오래 하는 것 같다” “우리도 낙하산 인사를 하긴 했지만 지금처럼은 안 했다”….
강재섭(58)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쏟아낸 위트 넘치는 말들이다. ‘줄기세포’ ‘맞춤형’ ‘원천기술’ 등이 유머코드로 유행하는 요즘 그는 지난해 6월 일찌감치 ‘줄기세포’를 유머의 재료로 사용했다. “정부 여당은 줄기세포로 고칠 수 없나”라고.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도 강 의원은 “내가 좋아하는 서부영화 주인공처럼 석양 속에서 말없이 사라지겠다” “나 그만두고 나면 YTN ‘돌발영상’이 재미없어질 거야”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강 의원은 이렇듯 한두 단어를 활용해 상황에 맞고 뜻이 잘 전달되는 ‘비유를 통한 유머’에 능통하다. 그는 본인을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쑥스럽다”고 하면서도 “정치인은 말이 반”이라며 유머 활용을 강조했다.
“온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것이 정치인의 기본입니다. 길면 지루하니까 짧게 핵심만 말해야 하고, 단어도 듣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을 선택해야 하고요.”
강 의원은 즉흥적으로 유머를 구사하는 타입. 상황에 맞는 비유가 그때그때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한다. 이는 평소 주변에서 듣거나 접하는 것들 중 ‘나중에 활용할 만하다’ 싶은 것들을 기억해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찬서리가 내렸다’는 뉴스가 보도된 날엔 냉각된 정치상황을 찬서리에 비유하는 식. 이동 중에는 차 안에서 책을 즐겨 읽으며 좋은 구절을 외우거나 메모해두기도 한다.
하지만 강 의원은 중·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은 특별히 유머감각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고 한다. 그의 아내는 신혼시절 모이기만 하면 서로 웃기고 웃느라 정신없는 그의 친구들을 보고 “이렇게 재미있는 모임은 처음이다”고 했을 정도란다. 강 의원은 “친구들과 모였을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배운다”고 한다.
“부친도 유머감각이 뛰어나신 분이었습니다. 평생 교직에 몸담았는데, 교장선생님 시절엔 다른 선생님들이 ‘교장선생님 때문에 웃겨 죽겠다’고 말할 정도였죠. 부친으로부터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유머감각을 배운 것 같아요.”
지난해 6월 강 의원은 YTN 돌발영상 카메라에 잡혔다. 한 강연에서 “우리나라 말은 중요한 것은 모두 한 글자인데 남자, 여자의 중요 부위까지도 순수 우리말로는 한 글자”라고 말한 것이 전파를 타 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한 글자’를 언급한 것은 ‘옷, 밥, 집, 일, 돈, 몸 등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는 정치를 하자’고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강 의원은 “가끔 유머 때문에 오해받는 일도 생겨 좀 섭섭하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1993년 민자당 대변인직에서 물러났을 때 강 의원은 정당 출입기자들로부터 기념패를 받았다. 이 기념패에는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말을 아끼고 순화시켜 오히려 더 빛을 발한 대변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단다. 그는 “성격이 밝고 핵심을 찌르는 정치력이 있다고 평가받는데, 유머를 잘 활용한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 강지남 기자 larya@donga.com
매일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MBC FM에 다이얼을 맞춰놓은 청취자들은 미소와 실소, 홍소와 폭소, 앙천대소(仰天大笑)와 파안대소까지 온갖 종류의 웃음을 두루 경험하게 된다. ‘정오의 희망곡’ DJ인 개그우먼 정선희(34) 씨 덕분이다.
정 씨는 탁월한 입심과 순발력을 자랑한다. 그러면서 천박하거나 유치하지 않다. ‘위임’ ‘천착’ ‘한계효용’ ‘네오콘’ 같은 ‘시사적’ 용어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한편으론 재기 넘치는 언어 유희, 게스트들과의 빛나는 ‘수다 배틀(battle)’로 주변 온도를 3도쯤 올려놓는다. 그의 이런 해파리 촉수처럼 예민한 유머감각은 끊임없이 읽고 보고 공부하는 생활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제가 원래 활자중독증이에요. 화장실 가도 문에 붙어 있는 ‘휴지는 휴지통에’ 같은 문구를 하염없이 째려보고, 잡지도 표지부터 맨 뒷장 광고까지 샅샅이 훑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그러면서 온갖 정보들을 머릿속에 주워담는 거죠.”
정상급 개그맨들이 항용 그렇듯, 그 역시 극도로 외향적이면서 한편으론 매우 내성적이다. “어릴 땐 오히려 남 앞에 서길 두려워하는 쪽이었어요. 중·고교 시절 매해 학교 대표로 영어이야기 대회에 나가면서 조금씩 바뀌었죠. 실전 대비를 한다고 대회 무렵이면 쉬는 시간마다 한 반씩 돌며 연습을 했는데, 그러면서 주목받는 즐거움, 무대에 서는 재미 같은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동덕여대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1992년 우연한 계기로 SBS 공채 1기 개그맨이 됐다. 5~6년의 무명 생활을 거쳐 90년대 후반부터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됐지만 속은 계속 헛헛했다. “그때는 죽어도 웃겨야겠다, 개그우먼이라고 우습게 보여선 안 되겠다, 그렇게 매사 너무 용심(用心)을 쓰는 바람에 오히려 잘 안 됐지 싶어요. 몸에서 힘을 빼면 뺄수록 대중과 교감이 더 잘 되더라고요.”
그는 “유머감각은 DNA 반 노력 반이지만, 둘 중 더 중요한 건 후자”라고 말한다. “근데 그 노력이란 게 목표를 세워 악착같이 달려드는 게 아니라, 대화나 그런 전체 분위기의 리듬을 타는 거예요. 그러려면 우선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야죠.”
열심히 듣다 보면 상대편 이야기 중 재미있는 부분이 귀에 걸리고, 그에 맞춰 재치 있는 답변도 할 수 있게 된다. “입체적인 사고를 해야 되요. 그냥 대충 듣는 게 아니라, 지금 대화의 뭔가 숨겨진 측면, 복선, 서로 미처 깨닫지 못한 전혀 다른 시각 같은 걸 떠올리는 거죠.”
정 씨는 웃음을 끄집어내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자학’을 하곤 한다. “남 인신공격 안 해도 되니 그게 편하죠. 그리고 전 또 사물을 의인화하는 걸 즐겨요. 예를 들어 술을 마셔 속이 아프다, 그럼 위가 삐쳤어,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거죠.”
사회를 보거나 강연이나 연설을 할 때는 “솔직한 게 최고”란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데 나올 법한 멋진 일화로 감동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초급단계에선 최대한 솔직하게 임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해요. 지금 그 자리에서 자신이 느끼는 걸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거죠. 하지만 분위기가 좀 썰렁하다고 자기 입으로 ‘어, 왜 안 웃지, 분위기 안 뜨네’ 그런 말을 하는 건 금물이에요. 일단 상황을 그렇게 정의 내려 버리면 빼도 박도 못하게 되거든요.”
그는 “허위의식이야말로 유머의 최대 적”이라 거듭 강조했다. “개그맨들만 해도 내가 ‘웃기는 자’인가 ‘우스운 자’인가를 늘 고민하죠. 하지만 철저히 무너지길 주저하면 대중을 웃길 수 없어요. 그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우스운 자’가 되지 않는 길이죠.”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두 남녀가 영화관에 갔다. 여자가 “앞자리 남자의 이마를 한 대 치면 손을 잡게 해주겠다”고 했다. 남자는 “야, 봉수야!” 하며 앞사람을 쥐어박은 뒤 곧 “사람을 잘못 봤다”며 백배사죄했다. 여자는 이거 재밌다 싶어 “한 번 더 때리면 키스도 허락해주겠다”고 했다. 남자는 “야 임마, 너 정말 봉수 아니야!” 하며 한 대를 더 친 다음 길길이 뛰는 앞사람에게 “어쩌면 내 친구 봉수랑 그렇게 닮으셨냐”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여자가 마지막 제안을 했다. “한 번만 더 때리면 결혼도 해주겠다”고.
영화가 끝난 뒤, 호흡을 가다듬은 남자는 출구를 나서는 앞사람 머리를 냅다 치며 이렇게 말했다. “야 봉수야! 이 극장에 너하고 똑같은 놈 있다.”
임내규(60·현 가천길재단 경영지원본부장) 전 산업자원부 차관이 즐겨 쓰는 우스개 중 하나다. 국민의정부 마지막 차관들의 모임인 ‘국마차’ 출신 중에서도 그는 남다른 재치와 유머감각으로 단연 주목받는 존재였다. 덕분에 차관 시절 벌써, 월급은 집에 다 가져다주고 외부 강연료만으로 ‘품위 유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03년 공직생활을 마감한 다음에는 평생 모은 우스개 중 150편을 추려 ‘봉수야 그만 좀 웃겨!’라는 제목의 유머집을 냈다. 이 책 역시 3만권 이상 팔려나가 ‘관가 최고의 재담꾼’이라는 그의 명성을 재확인해주었다.
“제가 중·고등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전혀 웃기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유독 ‘스토리’를 잘 외우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죠.”
경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그는 사실 “똑똑한 척한다”는 평을 듣기 십상인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굳어 있는 표정, 심각하고 짜증 잘 내는 성격도 문제. 그런데 대학 입학 직후 새로 만난 친구들 앞에서 우연히 선보인 우스개 하나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친구들이 상당히 좋아하는 게, 무척 친해진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거다’ 싶어 새 농담을 들으면 잘 외워뒀다 써먹고, 나름대로 각색도 했지요.”
이렇게 닦은 유머감각은 그가 삶의 곱이곱이 난관에 처할 때마다 큰 힘이 돼주었다. “산자부 국장 말엽 주일본 한국대사관 상무참사관 발령이 났어요. 1급 승진을 앞두고 쫓겨난 꼴이니 많이 답답했죠.”
하지만 그는 웃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심각한 얘기는 전혀 안 하고 그저 웃기기만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자칫 말길을 잘못 들면 불평불만을 쏟아놓게 되거든요. 그럼 또 그게 인사권자 귀에 들어가 결국 제게 부메랑이 된단 말입니다. 하지만 우스개로 일관하니 그런 걱정 없어 좋고, 또 텃세 심하다는 대사관 생활에도 1, 2주일 만에 뚝딱 적응할 수 있었죠.”
그는 “유머에는 2등이 없다”고 말한다. “어떤 자리가 벌어지면 저마다 나름의 입담을 선보이지요. 하지만 초장에 금방 결판이 나요. ‘가장 웃기는 사람’은 하나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자리를 좌지우지하겠다 욕심 부려선 안 된다. “우선 잘 들어야죠. 그러다 뭔가 재미있는 키워드가 나오면 그와 관련한 재담을 풀어놓는 거예요. 중간 중간 짬도 줘야 하고, 다 같이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는 열심히 얘기하는데 분위기가 산만하고 잡담이 이어지면 시쳇말로 그건 ‘됐다, 많이 먹었다 아이가’ 하는 겁니다. 바로 입을 닫아야죠.”
그는 “나처럼 무뚝뚝한 사람도 노력하니 재미있는 사람이 되더라”며 “유머감각이 생기면 남이 날 불쾌하게 대해도 한 수 접어줄 줄 아는 여유가 생긴다. 그런 게 다 조직과 사람 사이에 행복을 불러오는 비결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숙명여대 신세돈(53·경제학) 교수의 외부강연 일정은 2월까지 꽉 차 있다. 그는 외부강연 없는 날이 드물 정도로 기업, 경제단체, 관공서 등이 즐겨 찾는 인기강사. 이해하기 어려운 경제현황이나 경제이론 등을 재미있고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유머감각을 ‘주간동아’에 알려온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 박모 씨는 “여러 강연에 의무적으로 참석할 때마다 졸기 일쑤였는데, 신 교수의 강연은 두 시간 내내 박장대소하며 즐겁게 들었다”고 했을 정도.
예를 들어 ‘경제정책의 시차’를 설명할 때 그는 먼저 자기 아버지의 ‘두더지 잡기 실력’을 언급한다. “아버지가 7개 구멍에서 튀어나오는 두더지를 단 한 마리도 망치로 때려잡지 못하기에 다른 건 다 포기하고 1개 구멍만 뚫어지게 쳐다보시라고 했다. 그런데 그 구멍에서 두더지가 두 번 나왔는데도 때려잡지 못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튀어나온 두더지를 눈으로 보고 뇌에 정보를 전달해 근육신경을 움직여 망치를 잡도록 하는 데 약 3초가 걸리기 때문이었다. 즉 시차 때문이다. 경제정책에도 시차가 있다. 정부가 내놓은 경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1984년 한국은행 특수연구실 전문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여러 곳에서 특강을 했는데, 강연 주제가 국제경제 동향, 환율, 한국경제의 현안 등이었어요. 강연 내용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하고 지루해하는 청중들을 보고 있는 게 그렇게 괴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청중의 관심을 끌고 어려운 강연 내용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유머와 강연의 접목을 연구했어요. 지금은 최소 10~15분에 한 번씩은 청중들을 웃게 만들지요.”
신 교수는 생활 주변에서 유머 소재를 찾는다. 문이 양쪽으로 두 개 달린 외제 냉장고가 갖고 싶어 손잡이가 각각 오른쪽 왼쪽에 달린 국산 냉장고를 두 개 사서 나란히 붙여놓은 친척집 이야기, 담뱃값이 오른다고 해서 담배를 끊었는데 가격인상이 취소된 바람에 다시 피울까 고민하는 자신 등이 모두 유머의 소재. 그는 “강연하기 전에 어떤 유머를 사용할지 대충 윤곽을 잡아놓고 상황에 맞게 조절해간다”고 말했다.
신 교수의 강연에는 의무사항이라서, 혹은 마지못해서 참가한 청중들이 많은 게 사실. 호텔이나 백화점 등 서비스 업종 회사들은 분위기가 밝지만 정부 부처나 공기업 등은 분위기가 무거운 편. 때문에 그는 “초반에 분위기를 사로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검찰청에서 강연할 때 참석자들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 정말 어려웠다. 그런데 오늘이 더 어렵겠네”라는 식으로 강연장 내 긴장을 해소시킨다.
98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그는 이경숙 총장의 요청으로 숙명여대 교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한국경제의 현황’에 대해 강연했다. 교수가 교수 앞에서 강연을 하다니. ‘니가 뭔데…’ 하는 듯한 마뜩찮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선배 교수들 앞에 선 그는 “내려오라고 하고 싶죠? 저도 내려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딱 한 시간만 말할게요. 한 시간 지난 뒤 한 시간만 더 이야기하자고 하지만 마십시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재치 있는 언변 덕분에 이 ‘난해한 강연’은 한 시간 더 연장됐고, 숙명여대 교수들 사이에 신 교수는 ‘정말 재밌게 말하는 동료 교수’로 정평이 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대학에서 국제경제정책론, 외환정책론, 국제수지론 등 경제학과 학생들이 ‘되도록 피하고 보자’는 어려운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강의는 매 학기 60~80명의 수강생이 몰릴 정도로 인기 수업. 비결은 학생들이 좋아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재미있는 예를 들어 경제이론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이 관심 많은 연애나 결혼은 그의 단골 유머 소재. 외모, 경제력, 성격 등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신랑을 만나기 어려울 때 두 가지 조건이라도 만족시키는 신랑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으로 경제학의 ‘차선의 법칙’을 설명하는 식이다.
신 교수는 자신을 ‘평소에는 전혀 안 웃기는 남자’라고 소개한다. 집에서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편이고, 술자리에서는 좌중을 압도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는 강단에만 서면 ‘돌변’한다. 다단계회사 직원 3만명이 모인 강연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고.
■ 강지남 기자 larya@donga.com
강재섭(58)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쏟아낸 위트 넘치는 말들이다. ‘줄기세포’ ‘맞춤형’ ‘원천기술’ 등이 유머코드로 유행하는 요즘 그는 지난해 6월 일찌감치 ‘줄기세포’를 유머의 재료로 사용했다. “정부 여당은 줄기세포로 고칠 수 없나”라고.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도 강 의원은 “내가 좋아하는 서부영화 주인공처럼 석양 속에서 말없이 사라지겠다” “나 그만두고 나면 YTN ‘돌발영상’이 재미없어질 거야”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강 의원은 이렇듯 한두 단어를 활용해 상황에 맞고 뜻이 잘 전달되는 ‘비유를 통한 유머’에 능통하다. 그는 본인을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쑥스럽다”고 하면서도 “정치인은 말이 반”이라며 유머 활용을 강조했다.
“온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것이 정치인의 기본입니다. 길면 지루하니까 짧게 핵심만 말해야 하고, 단어도 듣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을 선택해야 하고요.”
강 의원은 즉흥적으로 유머를 구사하는 타입. 상황에 맞는 비유가 그때그때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한다. 이는 평소 주변에서 듣거나 접하는 것들 중 ‘나중에 활용할 만하다’ 싶은 것들을 기억해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찬서리가 내렸다’는 뉴스가 보도된 날엔 냉각된 정치상황을 찬서리에 비유하는 식. 이동 중에는 차 안에서 책을 즐겨 읽으며 좋은 구절을 외우거나 메모해두기도 한다.
하지만 강 의원은 중·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은 특별히 유머감각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고 한다. 그의 아내는 신혼시절 모이기만 하면 서로 웃기고 웃느라 정신없는 그의 친구들을 보고 “이렇게 재미있는 모임은 처음이다”고 했을 정도란다. 강 의원은 “친구들과 모였을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배운다”고 한다.
“부친도 유머감각이 뛰어나신 분이었습니다. 평생 교직에 몸담았는데, 교장선생님 시절엔 다른 선생님들이 ‘교장선생님 때문에 웃겨 죽겠다’고 말할 정도였죠. 부친으로부터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유머감각을 배운 것 같아요.”
지난해 6월 강 의원은 YTN 돌발영상 카메라에 잡혔다. 한 강연에서 “우리나라 말은 중요한 것은 모두 한 글자인데 남자, 여자의 중요 부위까지도 순수 우리말로는 한 글자”라고 말한 것이 전파를 타 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한 글자’를 언급한 것은 ‘옷, 밥, 집, 일, 돈, 몸 등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는 정치를 하자’고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강 의원은 “가끔 유머 때문에 오해받는 일도 생겨 좀 섭섭하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1993년 민자당 대변인직에서 물러났을 때 강 의원은 정당 출입기자들로부터 기념패를 받았다. 이 기념패에는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말을 아끼고 순화시켜 오히려 더 빛을 발한 대변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단다. 그는 “성격이 밝고 핵심을 찌르는 정치력이 있다고 평가받는데, 유머를 잘 활용한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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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남 기자 larya@donga.com
매일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MBC FM에 다이얼을 맞춰놓은 청취자들은 미소와 실소, 홍소와 폭소, 앙천대소(仰天大笑)와 파안대소까지 온갖 종류의 웃음을 두루 경험하게 된다. ‘정오의 희망곡’ DJ인 개그우먼 정선희(34) 씨 덕분이다.
정 씨는 탁월한 입심과 순발력을 자랑한다. 그러면서 천박하거나 유치하지 않다. ‘위임’ ‘천착’ ‘한계효용’ ‘네오콘’ 같은 ‘시사적’ 용어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한편으론 재기 넘치는 언어 유희, 게스트들과의 빛나는 ‘수다 배틀(battle)’로 주변 온도를 3도쯤 올려놓는다. 그의 이런 해파리 촉수처럼 예민한 유머감각은 끊임없이 읽고 보고 공부하는 생활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제가 원래 활자중독증이에요. 화장실 가도 문에 붙어 있는 ‘휴지는 휴지통에’ 같은 문구를 하염없이 째려보고, 잡지도 표지부터 맨 뒷장 광고까지 샅샅이 훑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그러면서 온갖 정보들을 머릿속에 주워담는 거죠.”
정상급 개그맨들이 항용 그렇듯, 그 역시 극도로 외향적이면서 한편으론 매우 내성적이다. “어릴 땐 오히려 남 앞에 서길 두려워하는 쪽이었어요. 중·고교 시절 매해 학교 대표로 영어이야기 대회에 나가면서 조금씩 바뀌었죠. 실전 대비를 한다고 대회 무렵이면 쉬는 시간마다 한 반씩 돌며 연습을 했는데, 그러면서 주목받는 즐거움, 무대에 서는 재미 같은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동덕여대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1992년 우연한 계기로 SBS 공채 1기 개그맨이 됐다. 5~6년의 무명 생활을 거쳐 90년대 후반부터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됐지만 속은 계속 헛헛했다. “그때는 죽어도 웃겨야겠다, 개그우먼이라고 우습게 보여선 안 되겠다, 그렇게 매사 너무 용심(用心)을 쓰는 바람에 오히려 잘 안 됐지 싶어요. 몸에서 힘을 빼면 뺄수록 대중과 교감이 더 잘 되더라고요.”
그는 “유머감각은 DNA 반 노력 반이지만, 둘 중 더 중요한 건 후자”라고 말한다. “근데 그 노력이란 게 목표를 세워 악착같이 달려드는 게 아니라, 대화나 그런 전체 분위기의 리듬을 타는 거예요. 그러려면 우선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야죠.”
열심히 듣다 보면 상대편 이야기 중 재미있는 부분이 귀에 걸리고, 그에 맞춰 재치 있는 답변도 할 수 있게 된다. “입체적인 사고를 해야 되요. 그냥 대충 듣는 게 아니라, 지금 대화의 뭔가 숨겨진 측면, 복선, 서로 미처 깨닫지 못한 전혀 다른 시각 같은 걸 떠올리는 거죠.”
정 씨는 웃음을 끄집어내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자학’을 하곤 한다. “남 인신공격 안 해도 되니 그게 편하죠. 그리고 전 또 사물을 의인화하는 걸 즐겨요. 예를 들어 술을 마셔 속이 아프다, 그럼 위가 삐쳤어,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거죠.”
사회를 보거나 강연이나 연설을 할 때는 “솔직한 게 최고”란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데 나올 법한 멋진 일화로 감동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초급단계에선 최대한 솔직하게 임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해요. 지금 그 자리에서 자신이 느끼는 걸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거죠. 하지만 분위기가 좀 썰렁하다고 자기 입으로 ‘어, 왜 안 웃지, 분위기 안 뜨네’ 그런 말을 하는 건 금물이에요. 일단 상황을 그렇게 정의 내려 버리면 빼도 박도 못하게 되거든요.”
그는 “허위의식이야말로 유머의 최대 적”이라 거듭 강조했다. “개그맨들만 해도 내가 ‘웃기는 자’인가 ‘우스운 자’인가를 늘 고민하죠. 하지만 철저히 무너지길 주저하면 대중을 웃길 수 없어요. 그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우스운 자’가 되지 않는 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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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두 남녀가 영화관에 갔다. 여자가 “앞자리 남자의 이마를 한 대 치면 손을 잡게 해주겠다”고 했다. 남자는 “야, 봉수야!” 하며 앞사람을 쥐어박은 뒤 곧 “사람을 잘못 봤다”며 백배사죄했다. 여자는 이거 재밌다 싶어 “한 번 더 때리면 키스도 허락해주겠다”고 했다. 남자는 “야 임마, 너 정말 봉수 아니야!” 하며 한 대를 더 친 다음 길길이 뛰는 앞사람에게 “어쩌면 내 친구 봉수랑 그렇게 닮으셨냐”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여자가 마지막 제안을 했다. “한 번만 더 때리면 결혼도 해주겠다”고.
영화가 끝난 뒤, 호흡을 가다듬은 남자는 출구를 나서는 앞사람 머리를 냅다 치며 이렇게 말했다. “야 봉수야! 이 극장에 너하고 똑같은 놈 있다.”
임내규(60·현 가천길재단 경영지원본부장) 전 산업자원부 차관이 즐겨 쓰는 우스개 중 하나다. 국민의정부 마지막 차관들의 모임인 ‘국마차’ 출신 중에서도 그는 남다른 재치와 유머감각으로 단연 주목받는 존재였다. 덕분에 차관 시절 벌써, 월급은 집에 다 가져다주고 외부 강연료만으로 ‘품위 유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03년 공직생활을 마감한 다음에는 평생 모은 우스개 중 150편을 추려 ‘봉수야 그만 좀 웃겨!’라는 제목의 유머집을 냈다. 이 책 역시 3만권 이상 팔려나가 ‘관가 최고의 재담꾼’이라는 그의 명성을 재확인해주었다.
“제가 중·고등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전혀 웃기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유독 ‘스토리’를 잘 외우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죠.”
경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그는 사실 “똑똑한 척한다”는 평을 듣기 십상인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굳어 있는 표정, 심각하고 짜증 잘 내는 성격도 문제. 그런데 대학 입학 직후 새로 만난 친구들 앞에서 우연히 선보인 우스개 하나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친구들이 상당히 좋아하는 게, 무척 친해진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거다’ 싶어 새 농담을 들으면 잘 외워뒀다 써먹고, 나름대로 각색도 했지요.”
이렇게 닦은 유머감각은 그가 삶의 곱이곱이 난관에 처할 때마다 큰 힘이 돼주었다. “산자부 국장 말엽 주일본 한국대사관 상무참사관 발령이 났어요. 1급 승진을 앞두고 쫓겨난 꼴이니 많이 답답했죠.”
하지만 그는 웃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심각한 얘기는 전혀 안 하고 그저 웃기기만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자칫 말길을 잘못 들면 불평불만을 쏟아놓게 되거든요. 그럼 또 그게 인사권자 귀에 들어가 결국 제게 부메랑이 된단 말입니다. 하지만 우스개로 일관하니 그런 걱정 없어 좋고, 또 텃세 심하다는 대사관 생활에도 1, 2주일 만에 뚝딱 적응할 수 있었죠.”
그는 “유머에는 2등이 없다”고 말한다. “어떤 자리가 벌어지면 저마다 나름의 입담을 선보이지요. 하지만 초장에 금방 결판이 나요. ‘가장 웃기는 사람’은 하나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자리를 좌지우지하겠다 욕심 부려선 안 된다. “우선 잘 들어야죠. 그러다 뭔가 재미있는 키워드가 나오면 그와 관련한 재담을 풀어놓는 거예요. 중간 중간 짬도 줘야 하고, 다 같이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는 열심히 얘기하는데 분위기가 산만하고 잡담이 이어지면 시쳇말로 그건 ‘됐다, 많이 먹었다 아이가’ 하는 겁니다. 바로 입을 닫아야죠.”
그는 “나처럼 무뚝뚝한 사람도 노력하니 재미있는 사람이 되더라”며 “유머감각이 생기면 남이 날 불쾌하게 대해도 한 수 접어줄 줄 아는 여유가 생긴다. 그런 게 다 조직과 사람 사이에 행복을 불러오는 비결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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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숙명여대 신세돈(53·경제학) 교수의 외부강연 일정은 2월까지 꽉 차 있다. 그는 외부강연 없는 날이 드물 정도로 기업, 경제단체, 관공서 등이 즐겨 찾는 인기강사. 이해하기 어려운 경제현황이나 경제이론 등을 재미있고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유머감각을 ‘주간동아’에 알려온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 박모 씨는 “여러 강연에 의무적으로 참석할 때마다 졸기 일쑤였는데, 신 교수의 강연은 두 시간 내내 박장대소하며 즐겁게 들었다”고 했을 정도.
예를 들어 ‘경제정책의 시차’를 설명할 때 그는 먼저 자기 아버지의 ‘두더지 잡기 실력’을 언급한다. “아버지가 7개 구멍에서 튀어나오는 두더지를 단 한 마리도 망치로 때려잡지 못하기에 다른 건 다 포기하고 1개 구멍만 뚫어지게 쳐다보시라고 했다. 그런데 그 구멍에서 두더지가 두 번 나왔는데도 때려잡지 못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튀어나온 두더지를 눈으로 보고 뇌에 정보를 전달해 근육신경을 움직여 망치를 잡도록 하는 데 약 3초가 걸리기 때문이었다. 즉 시차 때문이다. 경제정책에도 시차가 있다. 정부가 내놓은 경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1984년 한국은행 특수연구실 전문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여러 곳에서 특강을 했는데, 강연 주제가 국제경제 동향, 환율, 한국경제의 현안 등이었어요. 강연 내용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하고 지루해하는 청중들을 보고 있는 게 그렇게 괴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청중의 관심을 끌고 어려운 강연 내용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유머와 강연의 접목을 연구했어요. 지금은 최소 10~15분에 한 번씩은 청중들을 웃게 만들지요.”
신 교수는 생활 주변에서 유머 소재를 찾는다. 문이 양쪽으로 두 개 달린 외제 냉장고가 갖고 싶어 손잡이가 각각 오른쪽 왼쪽에 달린 국산 냉장고를 두 개 사서 나란히 붙여놓은 친척집 이야기, 담뱃값이 오른다고 해서 담배를 끊었는데 가격인상이 취소된 바람에 다시 피울까 고민하는 자신 등이 모두 유머의 소재. 그는 “강연하기 전에 어떤 유머를 사용할지 대충 윤곽을 잡아놓고 상황에 맞게 조절해간다”고 말했다.
신 교수의 강연에는 의무사항이라서, 혹은 마지못해서 참가한 청중들이 많은 게 사실. 호텔이나 백화점 등 서비스 업종 회사들은 분위기가 밝지만 정부 부처나 공기업 등은 분위기가 무거운 편. 때문에 그는 “초반에 분위기를 사로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검찰청에서 강연할 때 참석자들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 정말 어려웠다. 그런데 오늘이 더 어렵겠네”라는 식으로 강연장 내 긴장을 해소시킨다.
98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그는 이경숙 총장의 요청으로 숙명여대 교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한국경제의 현황’에 대해 강연했다. 교수가 교수 앞에서 강연을 하다니. ‘니가 뭔데…’ 하는 듯한 마뜩찮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선배 교수들 앞에 선 그는 “내려오라고 하고 싶죠? 저도 내려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딱 한 시간만 말할게요. 한 시간 지난 뒤 한 시간만 더 이야기하자고 하지만 마십시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재치 있는 언변 덕분에 이 ‘난해한 강연’은 한 시간 더 연장됐고, 숙명여대 교수들 사이에 신 교수는 ‘정말 재밌게 말하는 동료 교수’로 정평이 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대학에서 국제경제정책론, 외환정책론, 국제수지론 등 경제학과 학생들이 ‘되도록 피하고 보자’는 어려운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강의는 매 학기 60~80명의 수강생이 몰릴 정도로 인기 수업. 비결은 학생들이 좋아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재미있는 예를 들어 경제이론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이 관심 많은 연애나 결혼은 그의 단골 유머 소재. 외모, 경제력, 성격 등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신랑을 만나기 어려울 때 두 가지 조건이라도 만족시키는 신랑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으로 경제학의 ‘차선의 법칙’을 설명하는 식이다.
신 교수는 자신을 ‘평소에는 전혀 안 웃기는 남자’라고 소개한다. 집에서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편이고, 술자리에서는 좌중을 압도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는 강단에만 서면 ‘돌변’한다. 다단계회사 직원 3만명이 모인 강연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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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남 기자 lar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