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금리와 고령화 시대에는 왜 투자에 눈을 돌려야 할까.
- 주식 투자는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할까.
- 인기 만점의 ‘펀드 전도사’ 2명이 들려주는 실전 투자 노하우.
투자교육 수강 등 발품을 많이 팔수록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있다.
2004년 188회, 2005년 292회의 강연을 통해 투자교육에 나선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은 “투자교육은 재테크 강의가 아니다”라고 못 박는다. “청중으로 하여금 당연한 얘기를 경청하도록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도록 하는 게 투자교육의 핵심”이라는 것. 실제 그의 강의를 듣다 보면 “뻔한 얘기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저금리와 고령화를 동시에 맞고 있어 자산운용 계획은 생애 설계와 함께 세워야 한다. 30년이 될지도 모르는 은퇴 이후 노후생활에 대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가장 큰 투자의 엔진은 자신의 직업이다. 직업으로부터 얻는 소득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 주식 투자에 열중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적어도 30대 중반까지는 자기 계발을 위한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부동산 불패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나라 가계는 지나치게 부동산 편중 자산구조를 갖고 있다.”
“은행이 책임지고 돈을 불려주는 저축과 자기 책임으로 하는 투자는 다르다. 보통 샐러리맨들이 투자를 하려면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도 펀드 투자가 좋다. 그것도 소액으로 시작할 때는 적립식이 좋고, 목돈을 투자할 때는 한곳에 집중하지 말고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
그가 처음 투자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98년 현대투신운용 대표를 역임하면서부터. 그 이전 대우증권 재직 시절에는 외국의 기관투자가들만 상대했으나 98년부터 개미 투자자들을 상대하면서 투신사 영업 차원에서라도 투자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 2002년 굿모닝투신운용 사장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투자교육에 나섰다. 그런 그도 투자교육이 이렇게 빨리 붐을 이룰지 몰랐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중학교 과정에서 이미 저축과 투자의 차이를 가르치고, 성인들을 대상으로는 NPO(비영리기관)가 투자교육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을 졸업한 사람 중에도 저축과 투자의 차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
그는 투자교육이 이처럼 붐을 이루는 것은 한마디로 투자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은퇴 이후 한 푼의 수입도 없이 살아가야 할 20~30년에 대비하기 위해서나 저금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나 투자가 필수적인데, 투자는 본인 책임으로 해야 하므로 투자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반면 과거 고금리 시대에는 웬만한 목돈을 은행에 맡기기만 해도 노후 생활이 보장됐다. 전설적인 펀드매니저들이나 올린다는 평균 수익률(10%대의 수익률)과 비슷한 금리가 보장됐기 때문.
그는 요즘 하루에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강연하는 날이 많을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다. 그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금융기관의 재무설계사(FP)와 각급 학교 교사, 일반 투자자, 기업의 최고경영자 등이다. 그는 “몸은 피곤하지만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른다”고 말한다. 주변에서는 이런 그를 “‘평생 현역’이 가장 훌륭한 노후대책인데, 투자교육 시장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를 이룰 수 있게 됐다”고 부러워한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도 투자교육은 중요하다. 위험을 부담할 각오가 돼 있는 투자 자산이 많이 모여야 지금 당장은 보잘것없지만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싹이 보이는 벤처기업 등에 돈이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
그가 펀드평가회사를 설립했다는 것은 그만큼 펀드의 미래를 밝게 봤다는 얘기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기업연금은 적립식으로 펀드에 투자한다. 정부는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이를 지원할 정도로 펀드 투자 보급에 힘쓰고 있다. 회사 설립 당시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펀드 투자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 2004년 말부터 붐이 일기 시작한 적립식 펀드가 한국 증시의 체질을 바꾼다는 평가도 받고 있지만, 작년 말 도입된 기업연금이 한국 증시에 미칠 영향은 현재로선 예측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회사를 설립한 직후만 해도 펀드는 불신의 대상이었다. 그동안 주식 펀드 가입자들이 손실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나치게 단기적으로 시장을 쫓아다니는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경향과 관련이 있다. 주가가 많이 올랐을 때에야 주식 펀드에 가입하기 때문에 ‘상투’를 잡을 확률이 그만큼 높았던 것. 그는 2000년 무렵부터 각종 언론 기고나 강연 등을 통해 새로운 간접투자 방법을 소개하면서 종전의 투자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단기적인 증권 가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자산관리의 기본으로 정액분할 투자 또는 적립식 투자라는 방법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증권 가격의 바닥과 상투를 예측할 수 없으니 월, 분기, 연간 단위로 자금을 계속해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나가는 방법이다.”(동아일보, 2001년 3월 칼럼 기고)
그의 이런 주장은 초기엔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금융기관 FP들을 상대로 이런 내용을 강의하면 “우리가 매월 20만~30만원짜리 고객을 상대해야 한단 말이냐”는 반발이 나올 정도로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작년에 130회의 강연을 다닐 정도로 바쁜 몸이 됐다.
그는 청중이 100명 이상 모여야 강의하러 간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주 강의 대상은 금융기관 FP. 이들이 일선 창구에서 일반 투자자들을 상대로 펀드를 직접 판매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교육이 파급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가 강의에서 가장 강조하는 점은 ‘세일즈맨보다는 컨설턴트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일즈맨은 ‘이 상품의 수익률이 이렇게 좋다’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고객에게 상품을 밀어내기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컨설턴트는 고객의 재무 상태를 먼저 진단한 다음 ‘은퇴 이후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투자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요즘 고객들이 흔히 ‘자녀 사교육비 때문에 투자할 엄두를 못 낸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도 인생 상담을 통해 사교육비를 줄이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줘야 한다.”
그는 FP들을 자주 상대하다 보니 그들의 고민도 이해하게 됐다. 언론 등에서 일선 창구의 FP들이 펀드를 판매하면서 고객들에게 펀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고, 약관을 읽어보라고 제대로 권유하지 않는다고 지적할 때마다 그들을 변명해준다. “그들 역시 그렇게 하고 싶지만 펀드뿐 아니라 대출 및 예금 실적, 보험 상품 판매 등 다양한 형태의 상품에 대한 할당량이 워낙 많다 보니 고객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것.
그는 궁극적으로 특정 금융기관에 소속되지 않는 독립 FP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전문지식으로 무장해 다양한 금융 상품 가운데 고객의 재무설계에 가장 적합한 상품을 선택해 권유한다. 이렇게 되면 고객이 금융기관의 마케팅 전술에 의해 펀드에 충동 가입하는 일은 사라지게 된다.
그가 펀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89년 대한투신 입사 직후부터였다. 당시 펀드 전문가가 드물어 이 분야에 승부를 걸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후 펀드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등 펀드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94년엔 펀드 평가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펀드 붐이 일면서 그가 설립한 한국펀드평가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직원도 설립 당시 5명에서 40명으로 늘었고, 연·기금도 투자하기 전에 한국펀드평가에 자문을 구할 정도가 됐다.
“99년 10월 무렵 펀드 평가를 위해 투신운용사를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펀드 평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였는지 아예 문을 열어주지도 않는 투신운용사도 일부 있었다. 또 초기에는 펀드 평가 결과가 언론을 통해 발표되면 수익률이 좋지 않은 것으로 나온 투신운용사 측에서는 ‘당신이 무슨 근거로 평가를 했는데, 수익률이 그렇게 나오느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반 투자자들도 펀드평가회사의 평가 자료를 보고 투자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