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열풍이 거세다. 브라운관은 ‘마이걸’(SBS), ‘궁’(MBC), ‘별난 남자 별난 여자’(KBS) 등 코믹멜로 드라마가 점령하다시피 했고, 광고도 개그 코드 일색이다. ‘세대공감 올드앤뉴’(KBS), ‘야심만만’(SBS) 등 TV쇼 코믹 게스트들의 인기 또한 하늘을 찌른다. 인터넷 세상은 더 말할 나위 없어 이제 웃기지 않으면 시청자도, 누리꾼도, 소비자들도 사로잡지 못하는 분위기가 됐다. 기업들 또한 마찬가지여서, 저마다 ‘웃음 경영’ ‘펀(Fun) 경영’ 등의 기치를 내걸고 ‘직원과 소비자 모두 즐거운 세상 만들기’로 바쁘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천성이 안 웃긴 걸 어쩌냐”며 굳은 얼굴을 풀지 않는 이들이 있다. 유머가 신개념 성공 코드라 해 기를 쓰고 웃기려 드는 모습도 우습지만, “성격대로 살겠다”며 바뀌어가는 세상에 코웃음만 날리는 것도 현명치는 않다. 어린 시절부터 유머와 친하고 ‘좋은 연설은 유머러스한 연설’이란 등식이 자연스레 통용되는 것이 선진국의 일반적 특징이고 보면,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나라 또한 풍토 자체가 달라질 날이 멀지 않은 때문이다.
학자들은 유머엔 크게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타인과 함께 웃고 긴장을 풀 수 있는 ‘긍정적 유머’, 또 하나는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들거나 비꼼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부정적 유머’다. 어느 쪽이건 유머는 사람살이를 원활하게 하고 당장의 힘겨운 현실을 한결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마법이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깬 부시 미국 대통령 앞에 조지 워싱턴의 망령이 나타났다. “어떻게 하면 나라에 도움이 될까요?” 부시의 물음에 워싱턴은 “나처럼 정직의 본을 보여주라”고 했다. 이튿날 밤 부시는 토머스 제퍼슨의 망령과 만났다. 제퍼슨은 “세금을 낮추고 정부를 줄이라”고 충고했다. 그 다음 날 밤 나타난 링컨의 망령에게도 부시는 같은 질문을 했다. 링컨이 답했다. “연극을 보러 가시오.”(링컨은 극장에서 저격당해 숨졌다.)
뉴욕시 ‘유머 프로젝트’(유머를 통해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하는 프로그램) 디렉터인 조엘 굿맨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실패나 결점에 대해 웃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자신을 더 사랑하고 제반 상황을 즐겁게 다룰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분명 그러하며, 유머에는 그 이상의 크고 강한 힘이 숨어 있다.
유머는 웰빙이다
1979년, 병원에서도 포기한 악성 척추염 환자였던 미국 작가 노먼 커슨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웃으면 통증이 사라지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 그에 착안해 낸 책 ‘환자가 느끼는 병의 해부’는 유머의 질병 치료 효과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책에서 유머를 “해로운 감정으로 인한 질병을 예방하는 방탄조끼”라 불렀다.
사람의 뇌는 한 번 크게 웃을 때마다 엔도르핀을 포함한 21가지 쾌감 호르몬을 쏟아낸다. 그중 엔케팔린이란 호르몬은 진통제로 잘 알려진 모르핀보다 300배나 강한 통증완화 효과를 낸다. 1분간 웃으면 10분 동안 에어로빅을 한 것과 같다. 혈압이 떨어지며 심장혈관과 폐 기능은 활성화된다. 국내 웃음치료사 1호인 한광일 한국웃음센터 소장은 “웃으면 스트레스와 관련 있는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분비가 억제돼 노화의 주범인 활성산소 발생이 줄고, 대신 암세포를 막는 자연살해세포(NK 세포)가 늘어난다”고 설명한다.
1981년 3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피격을 당했다. 총에 맞은 와중에도 레이건은 아내 낸시에게 농담을 했다. “여보, 총알이 날아올 때 납작 엎드리는 걸 깜빡했어. 영화에선 잘했는데 말야.” 몰려든 의사들에겐 또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소.” 한 의사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각하, 오늘만은 우리 모두 공화당원입니다.”
유머는 청량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으로 있을 때다. 어느 날 정 회장이 눈에 안대를 하고 회의에 참석했다. 누군가가 “회장님, 거 많이 불편하시겠습니다” 했다. 정 회장이 답했다. “아니, 오히려 일목요연하게 보이는데?”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은 재계에서 알아주는 유머리스트다. 조 회장은 그룹 인사들이 두루 모인 ‘엄숙한’ 행사에서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스스럼없이 유머를 구사한다. 그렇다고 조 부회장이 타고난 재담꾼인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얘기를 들으면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놓고 완벽하게 암기한 뒤 적재적소에 풀어놓는 것. 늘 ‘나’를 먼저 낮추는 겸손함도 큰 미덕. 술을 한 잔도 못 한다는 조 부회장이 어떤 자리에서나 환영받는 이유다.
미국 코미디언 케이트 로저스는 “유머란 긴장을 풀고, 근심을 잊고, 상대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법”이라 했다. 유머는 윤활유다.
유머는 교양이다
개그맨 박준형 씨는 신문을 여섯 종류나 구독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생활밀착형 웃음의 소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유머감각 뛰어난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다. 소재가 다양해야 많은 사람의 기호에 맞는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
남을 웃길 줄 아는 이는 대체로 겸손하다. 물론 ‘내가 말하는데 감히 안 웃어?’ 하는 식의 오만함도 갖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온 높은 사람이 기분이 좋아 직원들을 방으로 부르더니 밖에서 들은 농담 몇 가지를 해주었다. 다들 왁자지껄 웃어댔지만 여직원 하나만은 조용했다. “웬일이야? 유머감각도 없나?” 높은 사람은 투덜거렸다. “저야 웃을 것 없잖아요. 금요일에 그만두거든요.”
유머 고수들은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안다. 모 그룹 홍보실장인 A 씨는 이른바 ‘Y담’에 능하다. 문제는 그가 처음 만난 여기자 앞에서도 ‘19세 이상 청취가’ 우스개를 풀어놓는다는 점.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몰라 난처해하는 여기자들의 심정을 모르는 걸까.
유머는 맞장구다
유머가 풍부한 이들은 의외로 말이 많지 않다. 오히려 다른 사람 얘기를 매우 열심히, 잘 듣는다. 그러다 결정적 순간이 오면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로 폭소를 자아낸다. 김웅래 인덕대 교수(방송연예) 역시 “평소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온몸을 ‘듣기 모드’로 전환해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를 들어준다”고 말한다.
진정 유머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머에 기꺼이 웃을 줄 안다. 당대의 유머리스트인 가수 조영남 씨는 ‘추임새’의 대가다. 조 씨는 “듣고 웃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유머가 어디 유머냐”며 “간혹 남 잘 웃기는 자신이 우위에 있다, 대단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 했다. “웃기는 사람과 그 얘기를 듣고 웃을 줄 아는 사람은 동격”이란 것이다.
이런 조 씨도 두 손 바짝 드는 대단한 ‘맞장구의 달인’이 있다. 카피라이터 최윤희(사진) 씨다. 그 자신 강연과 방송을 통해 청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입심이 있으면서도, 최 씨는 지인들과의 모임에선 좀체 화제의 주도권을 쥐지 않는다. 하는 말은 주로 “맞아 맞아, 너무 재밌다, 기절하겠네, 최고 최고” 이런 것들이다. 진심으로 재미있어하고 감탄하는 그의 반응은 대화에 활력과 재미를 불어넣는다.
유머는 휴머니즘이다
개그작가 전영호 씨는 “유머는 남을 위한 배려”라 했다. 그런 만큼 상대의 신체적 약점 등을 화제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진정한 유머리스트는 불쾌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기보다는 유머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유머감각 뛰어나기로 유명한 링컨 대통령(사진). 정적이 자신을 이중인격자라 비판하자 정색을 하고 이렇게 답했다. “아니, 얼굴이 두 개였다면 이런 중요한 자리에 왜 하필 이 얼굴을 갖고 나왔겠습니까.”
정도가 심한 독설에 독설로 답할 때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처칠의 정치적 라이벌인 한 여성이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윈스턴 씨, 만일 당신이 제 남편이라면 전 당신의 커피에 독약을 넣을 거예요.” 처칠이 웃으며 답했다. “부인, 만일 제가 당신 남편이라면 전 기꺼이 그 커피를 마실 겁니다.”
유머러스한 상사는 부하직원을 꾸짖을 때도 칼 대신 꽃을 내민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자네, 혹시 부활이란 걸 믿나?” “아뇨!” “지난주에 장모님 돌아가셨다고 결근했지? 장모께서 부활하셨네. 자, 장모님 전활세.”
고 정주영 회장은 모 씨가 “이러저러한 문제로 전경련 빌딩 완공이 몇 달 늦어지겠다” 했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다. “자네 참 공부 많이 했구먼. 그만큼 더 연구해 되는 방향으로 하세나.”
에세이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서문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에 대해 어리석게 반응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 씨실과 날실의 미묘한 짜임새를 음미하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유머는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는 자세다. 조영남 씨는 “유머는 머리 좋은 사람이 잘 구사한다. 그런데 한 수 위가 있다. 바로 착한 사람”이라 말했다. “아주 착하고 순진하고, 양보 잘하는 사람은 자칫 푼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 유머러스할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머란 성공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말한다. ‘얼굴과 낙하산은 펴져야 살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신분석의인 빅터 프랭클 박사의 명저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유대인인 저자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3년의 삶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프랭클 박사는 그곳에서 부모·형제·아내를 잃었고, 모든 소유물을 빼앗겼으며,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핍박 속에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야 했다. 남은 것이라곤 오로지 ‘인간이 가진 자유 중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 그럼에도 그는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외형적 운명을 초월하는 능력을 보여준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을 지탱한 몇 안 되는 실존적 ‘기적’ 중 하나가 바로 유머였다. 그는 “유머는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에서 또 다른 영혼의 무기였다”며 “단 몇 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도 인간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초연함과 능력을 부여해주었다”고 회상했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역시 고통 앞에서 더욱 위대한 유머의 힘을 보여준다. 주인공 ‘귀도’는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아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의식해 장난감 병정처럼 신나게 걸어간다. 환한 미소를 지었음은 물론이다. 비극적 상황에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대처함으로써 아내와 아들에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희망을 보여준 것이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가 모금운동을 위해 오랜만에 고향에 들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마중하려 역에 나왔다. 그가 1등칸이나 2등칸에서 나오리라 생각했던 마중객들의 예상과 달리 슈바이처 박사는 3등칸에서 나타났다. 사람들이 “왜 편안한 자리를 마다하고 굳이 3등칸이냐”고 묻자 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 열차엔 4등칸이 없더군요.”
유머는 불굴의 정신이다
‘유머의 대스승 린위탕 일대기’에는 린위탕(林語堂)의 이런 술회가 담겨 있다. “나의 문학상의 성취와 자아의 품격은 온전히 국민당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가혹한 검열을 피하기 위해 ‘뛰는 놈은 뛰는 놈, 기는 놈은 기는 놈이라고 직접 지목하지 않고서도 그 뉘앙스를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사세부득이 필묵의 기교와 상황의 경중을 저울질하는 기법을 발전시켰고, 그것은 독자들에게 풍자문학이라는 호칭을 받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웃음 속에 눈물이, 눈물 속에 웃음이 있다”는 평을 듣는 린위탕의 문학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독일군의 포격으로 버킹엄궁이 무너지자 엘리자베스 여왕(사진)이 말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독일의 포격 덕분에 그동안 왕실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얼굴을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유머를 낳는 것은 불굴의 정신이다.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유머의 원천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다. 천국에는 유머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천성이 안 웃긴 걸 어쩌냐”며 굳은 얼굴을 풀지 않는 이들이 있다. 유머가 신개념 성공 코드라 해 기를 쓰고 웃기려 드는 모습도 우습지만, “성격대로 살겠다”며 바뀌어가는 세상에 코웃음만 날리는 것도 현명치는 않다. 어린 시절부터 유머와 친하고 ‘좋은 연설은 유머러스한 연설’이란 등식이 자연스레 통용되는 것이 선진국의 일반적 특징이고 보면,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나라 또한 풍토 자체가 달라질 날이 멀지 않은 때문이다.
학자들은 유머엔 크게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타인과 함께 웃고 긴장을 풀 수 있는 ‘긍정적 유머’, 또 하나는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들거나 비꼼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부정적 유머’다. 어느 쪽이건 유머는 사람살이를 원활하게 하고 당장의 힘겨운 현실을 한결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마법이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깬 부시 미국 대통령 앞에 조지 워싱턴의 망령이 나타났다. “어떻게 하면 나라에 도움이 될까요?” 부시의 물음에 워싱턴은 “나처럼 정직의 본을 보여주라”고 했다. 이튿날 밤 부시는 토머스 제퍼슨의 망령과 만났다. 제퍼슨은 “세금을 낮추고 정부를 줄이라”고 충고했다. 그 다음 날 밤 나타난 링컨의 망령에게도 부시는 같은 질문을 했다. 링컨이 답했다. “연극을 보러 가시오.”(링컨은 극장에서 저격당해 숨졌다.)
뉴욕시 ‘유머 프로젝트’(유머를 통해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하는 프로그램) 디렉터인 조엘 굿맨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실패나 결점에 대해 웃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자신을 더 사랑하고 제반 상황을 즐겁게 다룰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분명 그러하며, 유머에는 그 이상의 크고 강한 힘이 숨어 있다.
유머는 웰빙이다
1979년, 병원에서도 포기한 악성 척추염 환자였던 미국 작가 노먼 커슨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웃으면 통증이 사라지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 그에 착안해 낸 책 ‘환자가 느끼는 병의 해부’는 유머의 질병 치료 효과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책에서 유머를 “해로운 감정으로 인한 질병을 예방하는 방탄조끼”라 불렀다.
사람의 뇌는 한 번 크게 웃을 때마다 엔도르핀을 포함한 21가지 쾌감 호르몬을 쏟아낸다. 그중 엔케팔린이란 호르몬은 진통제로 잘 알려진 모르핀보다 300배나 강한 통증완화 효과를 낸다. 1분간 웃으면 10분 동안 에어로빅을 한 것과 같다. 혈압이 떨어지며 심장혈관과 폐 기능은 활성화된다. 국내 웃음치료사 1호인 한광일 한국웃음센터 소장은 “웃으면 스트레스와 관련 있는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분비가 억제돼 노화의 주범인 활성산소 발생이 줄고, 대신 암세포를 막는 자연살해세포(NK 세포)가 늘어난다”고 설명한다.
1981년 3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피격을 당했다. 총에 맞은 와중에도 레이건은 아내 낸시에게 농담을 했다. “여보, 총알이 날아올 때 납작 엎드리는 걸 깜빡했어. 영화에선 잘했는데 말야.” 몰려든 의사들에겐 또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소.” 한 의사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각하, 오늘만은 우리 모두 공화당원입니다.”
유머는 청량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으로 있을 때다. 어느 날 정 회장이 눈에 안대를 하고 회의에 참석했다. 누군가가 “회장님, 거 많이 불편하시겠습니다” 했다. 정 회장이 답했다. “아니, 오히려 일목요연하게 보이는데?”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은 재계에서 알아주는 유머리스트다. 조 회장은 그룹 인사들이 두루 모인 ‘엄숙한’ 행사에서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스스럼없이 유머를 구사한다. 그렇다고 조 부회장이 타고난 재담꾼인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얘기를 들으면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놓고 완벽하게 암기한 뒤 적재적소에 풀어놓는 것. 늘 ‘나’를 먼저 낮추는 겸손함도 큰 미덕. 술을 한 잔도 못 한다는 조 부회장이 어떤 자리에서나 환영받는 이유다.
미국 코미디언 케이트 로저스는 “유머란 긴장을 풀고, 근심을 잊고, 상대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법”이라 했다. 유머는 윤활유다.
유머는 교양이다
개그맨 박준형 씨는 신문을 여섯 종류나 구독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생활밀착형 웃음의 소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유머감각 뛰어난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다. 소재가 다양해야 많은 사람의 기호에 맞는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
남을 웃길 줄 아는 이는 대체로 겸손하다. 물론 ‘내가 말하는데 감히 안 웃어?’ 하는 식의 오만함도 갖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온 높은 사람이 기분이 좋아 직원들을 방으로 부르더니 밖에서 들은 농담 몇 가지를 해주었다. 다들 왁자지껄 웃어댔지만 여직원 하나만은 조용했다. “웬일이야? 유머감각도 없나?” 높은 사람은 투덜거렸다. “저야 웃을 것 없잖아요. 금요일에 그만두거든요.”
유머 고수들은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안다. 모 그룹 홍보실장인 A 씨는 이른바 ‘Y담’에 능하다. 문제는 그가 처음 만난 여기자 앞에서도 ‘19세 이상 청취가’ 우스개를 풀어놓는다는 점.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몰라 난처해하는 여기자들의 심정을 모르는 걸까.
유머는 맞장구다
유머가 풍부한 이들은 의외로 말이 많지 않다. 오히려 다른 사람 얘기를 매우 열심히, 잘 듣는다. 그러다 결정적 순간이 오면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로 폭소를 자아낸다. 김웅래 인덕대 교수(방송연예) 역시 “평소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온몸을 ‘듣기 모드’로 전환해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를 들어준다”고 말한다.
진정 유머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머에 기꺼이 웃을 줄 안다. 당대의 유머리스트인 가수 조영남 씨는 ‘추임새’의 대가다. 조 씨는 “듣고 웃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유머가 어디 유머냐”며 “간혹 남 잘 웃기는 자신이 우위에 있다, 대단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 했다. “웃기는 사람과 그 얘기를 듣고 웃을 줄 아는 사람은 동격”이란 것이다.
이런 조 씨도 두 손 바짝 드는 대단한 ‘맞장구의 달인’이 있다. 카피라이터 최윤희(사진) 씨다. 그 자신 강연과 방송을 통해 청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입심이 있으면서도, 최 씨는 지인들과의 모임에선 좀체 화제의 주도권을 쥐지 않는다. 하는 말은 주로 “맞아 맞아, 너무 재밌다, 기절하겠네, 최고 최고” 이런 것들이다. 진심으로 재미있어하고 감탄하는 그의 반응은 대화에 활력과 재미를 불어넣는다.
유머는 휴머니즘이다
개그작가 전영호 씨는 “유머는 남을 위한 배려”라 했다. 그런 만큼 상대의 신체적 약점 등을 화제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진정한 유머리스트는 불쾌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기보다는 유머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유머감각 뛰어나기로 유명한 링컨 대통령(사진). 정적이 자신을 이중인격자라 비판하자 정색을 하고 이렇게 답했다. “아니, 얼굴이 두 개였다면 이런 중요한 자리에 왜 하필 이 얼굴을 갖고 나왔겠습니까.”
정도가 심한 독설에 독설로 답할 때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처칠의 정치적 라이벌인 한 여성이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윈스턴 씨, 만일 당신이 제 남편이라면 전 당신의 커피에 독약을 넣을 거예요.” 처칠이 웃으며 답했다. “부인, 만일 제가 당신 남편이라면 전 기꺼이 그 커피를 마실 겁니다.”
유머러스한 상사는 부하직원을 꾸짖을 때도 칼 대신 꽃을 내민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자네, 혹시 부활이란 걸 믿나?” “아뇨!” “지난주에 장모님 돌아가셨다고 결근했지? 장모께서 부활하셨네. 자, 장모님 전활세.”
고 정주영 회장은 모 씨가 “이러저러한 문제로 전경련 빌딩 완공이 몇 달 늦어지겠다” 했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다. “자네 참 공부 많이 했구먼. 그만큼 더 연구해 되는 방향으로 하세나.”
에세이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의 서문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에 대해 어리석게 반응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 씨실과 날실의 미묘한 짜임새를 음미하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유머는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는 자세다. 조영남 씨는 “유머는 머리 좋은 사람이 잘 구사한다. 그런데 한 수 위가 있다. 바로 착한 사람”이라 말했다. “아주 착하고 순진하고, 양보 잘하는 사람은 자칫 푼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 유머러스할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머란 성공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말한다. ‘얼굴과 낙하산은 펴져야 살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신분석의인 빅터 프랭클 박사의 명저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유대인인 저자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3년의 삶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프랭클 박사는 그곳에서 부모·형제·아내를 잃었고, 모든 소유물을 빼앗겼으며,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핍박 속에 몰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야 했다. 남은 것이라곤 오로지 ‘인간이 가진 자유 중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 그럼에도 그는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외형적 운명을 초월하는 능력을 보여준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을 지탱한 몇 안 되는 실존적 ‘기적’ 중 하나가 바로 유머였다. 그는 “유머는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에서 또 다른 영혼의 무기였다”며 “단 몇 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도 인간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초연함과 능력을 부여해주었다”고 회상했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역시 고통 앞에서 더욱 위대한 유머의 힘을 보여준다. 주인공 ‘귀도’는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아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의식해 장난감 병정처럼 신나게 걸어간다. 환한 미소를 지었음은 물론이다. 비극적 상황에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대처함으로써 아내와 아들에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희망을 보여준 것이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가 모금운동을 위해 오랜만에 고향에 들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마중하려 역에 나왔다. 그가 1등칸이나 2등칸에서 나오리라 생각했던 마중객들의 예상과 달리 슈바이처 박사는 3등칸에서 나타났다. 사람들이 “왜 편안한 자리를 마다하고 굳이 3등칸이냐”고 묻자 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 열차엔 4등칸이 없더군요.”
유머는 불굴의 정신이다
‘유머의 대스승 린위탕 일대기’에는 린위탕(林語堂)의 이런 술회가 담겨 있다. “나의 문학상의 성취와 자아의 품격은 온전히 국민당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가혹한 검열을 피하기 위해 ‘뛰는 놈은 뛰는 놈, 기는 놈은 기는 놈이라고 직접 지목하지 않고서도 그 뉘앙스를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사세부득이 필묵의 기교와 상황의 경중을 저울질하는 기법을 발전시켰고, 그것은 독자들에게 풍자문학이라는 호칭을 받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웃음 속에 눈물이, 눈물 속에 웃음이 있다”는 평을 듣는 린위탕의 문학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독일군의 포격으로 버킹엄궁이 무너지자 엘리자베스 여왕(사진)이 말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독일의 포격 덕분에 그동안 왕실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얼굴을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유머를 낳는 것은 불굴의 정신이다.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유머의 원천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다. 천국에는 유머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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