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근무하는 연방정부 공무원은 전체 공무원의 48%에 불과하다. 베를린에 있는 의회건물.
현재 독일의 공식 수도는 동북부에 위치한 베를린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서부의 본이 제2의 수도 구실을 하고 있다. 당초 각각 동독과 서독의 수도였던 베를린과 본은 1990년 독일 통일과 함께 ‘어느 도시를 통일 독일의 수도로 할 것인가’라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본 지지자’들은 동독 붕괴에 따른 흡수 통일인 만큼 서독의 수도인 본이 통일 독일의 수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베를린에 히틀러 정권의 부정적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반면 ‘베를린 지지자’들은 베를린이 수도로서의 역사적 정통성을 갖고 있다는 점, 49년 서독 건설 당시 향후 통일이 되면 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긴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같은 본-베를린 수도 논쟁은 91년 6월20일 연방의회에서 337대 320의 근소한 차이로 베를린이 통일 독일의 수도로 결정됨으로써 종식됐다. 당시 국민 여론은 베를린을 지지했다.
비행기를 대중교통 삼아 출근
베를린 시내 전경.
하지만 베를린으로 이전하거나 본에 남은 부처들은 각각 본과 베를린에 ‘제2 청사’ 격인 부속사무실을 두었다. 사실상 14개 부처 모두가 베를린과 본에 나뉘어 소재하게 된 것. 이로써 독일은 ‘두 개의 수도체제’를 갖게 됐다.
건설교통부의 예를 들자면, 베를린에는 장관실, 총무국, 홍보부, 내각 및 의회와의 협의 관련 부서, 주택·건설국 등이 있고, 본에는 도로철도국, 수운국, 항공국 등이 배치됐다. 건설교통부 공무원 중 약 33%는 베를린에, 67%는 본에 거주한다. 장관은 주로 베를린에 머물고, 베를린과 본의 업무 협조는 인터넷이나 화상회의 등을 통해 이뤄진다. 국방부의 경우 소속 공무원 90%는 본에, 10%는 베를린에 상주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연방정부 전체 공무원 중 8800명(48%)은 베를린에, 1만200명(52%)은 본에서 근무한다.
본이 속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는 잔류 정부 부처의 베를린 이전을 용납하지 않을 분위기다. 본에 있는 정부 청사(왼쪽)와 본 시내 전경.
앙겔라 메르켈 신임 총리의 비서실장 토마스 드 메지에르는 최근 “모든 행정부처가 조속한 시일 내에 베를린으로 이전하는 것이 좋겠다”고 발언했다. 통일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굳이 고비용을 치르면서 두 개의 수도 체제를 유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도 ‘하나의 수도’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슈피겔’지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47%가 이전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본을 중심으로 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반발. 베를린 수도 이전으로 8000개 이상의 연방정부 일자리를 잃은 본으로서는 더 이상의 양보를 허용하지 않을 태세다. 본은 현재 독일에서 실업률도 가장 낮고 여러 특권을 누리며 잘사는 도시이지만, 남은 정부 부처들이 빠져나가면 경제가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그 파장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전체에 미칠 것이다. 그런 탓에 이 지역 출신의 유력 정치인들이 부처 이전을 가만히 지켜볼 리 만무하다. 현직 부총재인 사민당의 프란츠 뮌터페링, 기민련의 위르겐 뤼티거즈 주지사, 자민당 당수 기도 베스터벨레 등은 평소 대립각을 세우다가도 자기 고향의 이익이 걸린 문제가 등장하면 급속도로 한마음이 된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상원의원 6명, 하원의원의 20%를 차지한 유력 주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단과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 두 개의 수도 체제. 그 비효율성이 거듭 거론되고 ‘하나의 수도 체제’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는데도 개혁은 쉽지 않다. 2005년 말 의욕적으로 출범한 메르켈 정부는 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연립정부의 한 축인 기독사회연합의 당수 슈토이버는 최근 새겨들을 만한 발언을 했다. “모든 개혁의 어머니는 현재의 난맥을 푸는 일이다. 그것은 경직된 공화국을 깨부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유연한 국가를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