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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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보복 … 피를 부르는 도심의 戰場

팔레스타인 도시 곳곳에 건물 잔해, 화약 냄새 진동 … 유대인 정착촌 확장으로 ‘反이’ 감정 극에 달해

  • 입력2005-02-01 1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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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 보복 … 피를 부르는 도심의 戰場
    7개월 만에 다시 간 중동의 상황은 더 악화해 있었다. F-16 전폭기와 체코제 AK-47 소총의 싸움, 망원경이 달린 저격용 라이플과 돌멩이의 싸움, 누가 봐도 승패가 뻔한 ‘현대판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희생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이다. 피가 피를 부르는 싸움이다. 이스라엘 쪽도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상태다.

    지난 5월18일 밤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 구리온 공항에 내리자마자 들은 소식은 이번 취재 길이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듯했다. 바로 그날 아침 이스라엘 북부도시 네타냐의 한 상가에서 팔레스타인 저항운동단체인 하마스(Hamas) 요원이 자살폭탄을 터뜨려 5명이 죽었고, 그 보복으로 이스라엘 F-16 전폭기가 팔레스타인 곳곳을 폭격해 팔레스타인 보안요원 12명이 숨졌다는 소식이다. 예루살렘 숙소에 짐을 풀고 TV를 켜자 현지 방송들은 밤 시간 내내 ‘자살폭탄 테러’와 ‘F-16 전폭기’ 소식을 되풀이했다. 1967년의 6일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전폭기를 동원해 팔레스타인 쪽을 공습한 것이 처음이어서인지, 그만큼 비중있게 다루고 있었다.

    지난 5월19일 아침 일찍 예루살렘을 벗어나 북쪽으로 향했다. F-16전폭기의 공습을 받은 라말라와 나블러스에 가보기 위해서였다. 인구 5만 명의 라말라는 인구 10만 명의 나블러스, 인구 12만 명의 헤브론과 함께 서안 지구(West Bank)의 중심도시다. 라말라는 인구는 적지만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lestinian Authority) 서안 지구의 행정 중심지이자 정치 중심지다. 라말라 시내로 들어서자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고 있었다. F-16 전폭기 공습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항의 표시였다. 공습 현장은 라말라 서쪽에 자리한 팔레스타인 보안군 건물이었다. 2층 콘크리트 건물이 완전히 내려앉은 상태였다. 폭격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20m 길 건너편 호텔의 유리창들이 박살나 있었다. 아라파트가 아끼는 정예부대인 ‘포스(Force)-17’ 요원 1명이 숨졌으며, 다른 1명은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마침 지난 번 10월 취재 길에 만난 적이 있는 마르완 바르구티(47)와 마주쳤다. 바르구티는 아라파트의 정치조직인 파타(Fatah)의 서안 지구 책임자로 아라파트의 뒤를 이을 차세대 지도자로 거론되는 인물이다(상자 기사 참조). 그와 오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북쪽 도시인 나블러스로 향했다. F-16 전폭기 공습으로 11명의 보안요원이 떼죽음을 당한 현장과 합동장례식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장례식을 놓쳤다.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도, 3시간이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라말라에서 나블러스로 가는 길목 곳곳에 이스라엘군이 검문소를 설치해 지나가는 차량을 돌려보냈다. 장례식에 다수의 군중이 모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50대 후반의 팔레스타인인 운전기사는 밭을 가로지르며 이리저리 샛길을 찾아 용케도 필자를 나블러스에 내려주었다.

    나블러스 감옥 겸 보안서로 쓰는 3층 콘크리트 건물은 절반이 폭삭 내려앉은 상태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폭격을 당한 지 20시간이 지났는데도 화약냄새가 코를 찔렀다. 문득 이스라엘군이 열화 우라늄탄을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아무튼 상당량의 폭탄이 떨어진 것임은 틀림없었다. 부상을 입어 붕대를 한 보안요원 간부는 “우리가 가진 것은 AK-47 소총인데 저들이 전폭기까지 동원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너무한 것 아니냐”고 두 손을 펴보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스라엘군, 전폭기 동원하고도 “전쟁은 아니다”



    이번 공습에 친구를 잃었다는 한 보안요원은 “복수하고 말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건물 안 감옥에는 하마스 요원들이 서너 명 갇혀 있었으나, 피폭 당시에는 다른 건물 안에 있어 무사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들을 죽이려고 공습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F-16 전폭기를 동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5월26일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외무부 건물에서 이스라엘군 전략여단장 기세라 에일랜드 준장을 만나 그 까닭을 물어봤다. 그는 “전폭기가 공격용 아파치 헬기보다 목표에 더 정확히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파괴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을 상대로 해선 이길 수 없다는 심리전을 노린 게 아니냐”고 묻자 “그런 전략적 결정은 내 소관사항이 아니다”고 입을 닫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요지.

    -공격용 아파치 헬기로도 가능했을 텐데 F-16까지 동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에 주공격 목표로 삼은 나블러스의 보안시설이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지은 건물이라 헬기 공격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F-16 공격은 전시상황에서나 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지금이 전쟁을 치르는 중인가 아니면 일반적인 충돌인가.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은 아니다. 상당한 정도의 충돌(high level of conflict)이다.”

    -지난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는 7년(87∼93년)을 끌었다. 군사전문가 입장에서 이 위기상황이 언제쯤 끝날 걸로 보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그때와의 큰 차이라면 지난 번엔 팔레스타인 쪽에 무기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엔 잘 무장했다는 것이다. 정보 판단 차원에서 우리가 한 가지 잘못한 게 있다. 지금의 사태가 금세 끝날 걸로 봤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일부 테러리스트들과 이에 가세한 일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봉기쯤으로 여겼는데, 팔레스타인 당국이 조직적으로 이를 지원한다는 게 문제다.”

    -F-16 전폭기 동원 결정은 누가 한 것인가.

    “그 부분은 내가 대답할 성질이 못 된다. 테러 행위에 대한 강한 응징 의사로 보면 된다.” 나블러스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지난 9월 말 이래 이어진 이스라엘 쪽과의 긴장상태에 지친 모습이었다. 지난해 10월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필자의 카메라 앞에서 V자를 그리며 천진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5월의 나블러스는 그런 여유를 잃은 듯 보였다. 피폭 현장에서 만난 샤반 베다위(18)는 깊은 절망감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테러… 보복 … 피를 부르는 도심의 戰場
    “두 달 전 내 바로 위의 형(23)이 시위 도중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가난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준 게 없지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조위금으로 1만달러를 보내줬다. 그리고 내게 전액 장학금 지급 조건으로 이라크 유학을 알선했다. 나는 그곳 대학에서 약학을 공부하고 싶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가 출국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밤마다 이라크 가는 꿈을 꾸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산을 넘어서라도 국경을 넘어 요르단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일까. 요르단으로 가기만 하면 이라크 행은 어렵지 않다. 베다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험준한 산길 곳곳에 이스라엘군 초소가 있어 사살되기 쉽고 잘못하면 지뢰를 밟아 죽는다”는 얘기다. 옆에서 이런 대화를 듣던 에마르 샤르(37·건축기술자)는 “우린 바로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 장기수들이나 다름없다”고 탄식한다. “이곳 사람들은 예전부터 가난해 돈 없이 사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문제는 돈이 아니다. 자유다.”

    샤르는 지난 9개월 동안의 인티파다로 인한 이스라엘의 봉쇄정책 때문에 이스라엘 쪽에 취업한 많은 나블러스 주민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그런 영향으로 팔레스타인 경기가 말이 아니라며 우울한 표정이다. 라말라에 본부를 둔 팔레스타인 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인티파다 이후 팔레스타인의 생산력은 지난 9월보다 36%로 떨어졌다. 많은 중소공장들이 원자재 공급이 끊겨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건축기술자 샤르도 “이즈음 할 일이 없어졌다”고 답답해한다.

    나블러스 시내의 병원들은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입은 부상자로 가득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나블러스 주변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에게서 공격을 받아 다친 사람들이었다. 일부 정착민들은 이스라엘 내부에서조차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이번 충돌과정에서 극단적으로 과격한 행동을 한 게 사실이다. 유대인 정착민들은 이스라엘 정부에게서 무기 소유를 허가받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정착촌 주변을 달리는 팔레스타인 차량들을 향해 돌을 던지거나, 총격을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를 나블러스까지 태워준 팔레스타인 운전기사도 지난해 12월 서너 명의 유대인 정착민들이 던진 돌에 맞아 사고를 당할 뻔했다고 밝힌다. 다행히 돌멩이들이 뒤트렁크에 맞고 튕겨 나갔지만, 앞 유리창에 제대로 맞았더라면 그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에서 동예루살렘 귀속문제, 난민 귀환문제와 함께 가장 뜨거운 주제다. 지난 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서안 지구와 가자(Gaza) 지구 곳곳에 세운 유대인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토착민들과 줄곧 갈등을 빚어왔다. 현재 정착민 숫자는 20만 명. 대부분 동구권과 러시아에서 옮겨온 유대인들이다.

    “문제는 93년 오슬로 평화협정 이후로도 꾸준히 정착촌 건설을 추진해 왔다는 점이다.” 나블러스의 라피디아 병원에서 만난 외과의사 무하마드 에드완(37)의 비판이다. 팔레스타인 난민 2세라 밝히는 에드완은 “유대인 정착민들이야말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협상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라고 못박았다. 팔레스타인 당국이 펴낸 한 자료에 따르면, 오슬로 평화협정 이후 이스라엘 정착촌이 52% 늘어났다. 특히 네탄야후 정권시절인 98년 한 해 동안에만 4200채의 정착촌을 새로 지었다는 것이다. 현재 아리엘 샤론 정권은 ‘인구 자연 증가’를 내세워 정착촌을 넓힐 태세지만, 최근 미국이 중동사태의 개입을 천명하며 해결 방안으로 발표한 ‘미첼 보고서’는 정착촌 건설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

    전임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중동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해온 부시 행정부가 뒤늦게 진화작업에 나서면서 내세운 게 바로 ‘미첼 보고서’다. 보고서의 핵심은 △무조건 폭력 중지 △ 신뢰 회복 △평화협상 재개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촌 건설과 비무장 시위대에 대한 과잉진압(살상)을 중지하고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공격’을 막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뼈대다. 지난 4월30일 작성해 5월21일 일반에 공개한 이 보고서에 대해 라말라-나블러스 현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샤론 총리와 페레스 외상을 백악관으로 부르고, 우리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에게 찬밥을 먹여온 부시 대통령은 중동사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나 자격이 없다”(마르완 바르구티 파타 서안 지구 사무총장 인터뷰 기사 참조)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5월21일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쪽에 뜻깊은 날이다. 이스라엘이 지난 67년 6일전쟁에서 동예루살렘을 점령해 이스라엘의 세력을 서안 지구는 물론, 멀리 시리아의 골란 고원까지 넓히는 발판을 마련한 날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치욕의 날이다. 그런 까닭에 동예루살렘에 몰려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날만큼은 하루종일 가게 문을 닫고 지낸다. 반면 유대인들은 이날을 ‘예루살렘의 날’이라 이름 붙여 자축한다. 그 때문인지 강경파 아리엘 샤론이 집권한 뒤 처음 맞은 금년 ‘예루살렘의 날’에 샤론 정권은 전에 없던 대규모 시가행진을 마련했다.

    ‘싸다’라고 하는 이 시가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곳곳에서 학생들과 유대인 정착민들이 단체로 버스를 타고 몰려와, 예루살렘 시내는 하루종일 어수선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구시가지 ‘통곡의 벽’ 광장에서 벌이는 야간행사.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 많은 유대인들이 다마스쿠스 문 앞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와 춤을 추었다. 이들 가운데 자동소총을 어깨에 멘 정착민들도 끼여 있었다. “아랍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이스라엘에는 100만 명의 아랍계 시민이 있다). 그는 “오늘은 우울한 날”이라고 내뱉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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