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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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감수성’으로의 회귀

  • 입력2005-02-01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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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날로그 감수성’으로의 회귀
    광고는 바람에 민감하다. 언제는 신나는 테크노 춤바람을 한바탕 몰고 오더니 뽕짝풍 복고바람에서 엽기바람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영상과 자극적 소재의 광고는 시간이 갈수록 부담스러워지고 곧 식상하게 한다. 사람들은 이제 현기증 나는 이미지의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오고 싶어한다. 그래서일까. 엽기나 키치 같은 별난 문화적 조류의 기세가 한풀 꺾인 광고계에 일상성과 휴머니즘이 인기 테마로 자리를 잡아간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푸근하고 넉넉한 ‘아날로그적’ 광고들에 다시 사람들의 따뜻한 눈길이 모이는 것이다.

    그런 광고의 따뜻한 바람 한가운데는 언제나 가족의 웃음이 있고 사랑과 행복이라는 불변의 가치가 있다. 기괴한 이미지의 난무 대신 브라운관을 가득 채우는 아기들의 해맑은 웃음이 가슴의 빗장을 풀게 한다. 아기(Baby)는 인간의 본능에 깃들인 부드러움과 편안함, 천진난만함 등을 표현하는 감수성의 코드다. 미인(Beauty), 동물(Beast)과 함께, 누구나 좋아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이를 모델로 쓰는 광고는 비교적 성공률이 높다는 것이 광고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아날로그 감수성’으로의 회귀
    요즘 부쩍 아기모델이 등장하는 광고가 늘고 있다. 광고계에 ‘베이비붐’이 도래했다고나 할까.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기 모델은 유아용품뿐 아니라 전방위 제품군에서 위력을 떨친다. 특히 톱스타 김희선에 이어 생후 7개월 된 아기 모델을 등장시킨 최근의 파리바게트 광고는 빵 먹는 아기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따라잡은 간결한 화면만으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태어나서 처음 먹는 빵, 엄마 젖처럼 부드럽게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파리바게트는 빵을 만듭니다”라는 파리바게트의 메시지도 은근한 신뢰감을 전한다.

    천진난만한 눈망울로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빵을 먹는 아기, 꼼지락거리는 조막손…. 안방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어쩜, 아기가 저런 표정과 동작을 지을 수 있을까”라고 감탄하지만 여기에는 제작진의 ‘악몽’과도 같은 고생이 숨어 있다. 모델이 촬영조건을 맞추는 게 아니라 스태프가 모델의 컨디션을 봐가며 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노련한 감독이 아니고서는 곧잘 인내력과 연출력의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아기와 함께 등장하는 진솔한 가족들의 모습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세종증권 광고는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평화로운 거실에서 아기 목욕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아빠(설경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수건, 파우더, 장난감 등을 세심하게 준비한 뒤 아이를 씻기기 시작한 아빠. 그러나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고 아빠는 아기를 달래느라 땀까지 뻘뻘 흘린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를 영상에 담으며 온 가족이 기뻐하는 모습을 그린 JVC 디지캠, 해맑은 아이의 표정을 통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기술’이라는 컨셉트를 전달한 신도리코의 기업 PR 광고 등을 들 수 있다. 모두가 아기 모델의 순수효과를 노린 것이다.

    ‘아날로그 감수성’으로의 회귀
    모두들 테크놀로지를 말하고 디지털을 화두로 올리는 시대. 국내 첨단산업을 이끌고 있는 인터넷, 이동통신, 가전, 컴퓨터 분야의 대표 기업들은 최근 금속성 느낌의 첨단 이미지성 광고 대신 부드러우면서도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휴머니즘 광고를 잇달아 내놓는다. 비구니와 수녀가 함께 자전거를 타며 아름다운 들녘을 지나는 SK텔레콤의 광고 등은 디지털화-정보화라는 거대한 물결에 압도되어 가는 사람들에게 인간 본연의 정서인 ‘정’을 일깨우며 따뜻한 감동과 기쁨을 선사한다.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한 CF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 이런 CF들은 특별한 모델 없이도 만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눈길을 끈다. 97년 이래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테마로 모두 13편의 광고를 제작한 삼성전자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광고를 통해 ‘사람의 마음까지 이어주는 진정한 디지털 기술’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흥미롭게 전달한다. 최근 선보인 ‘포장마차’ 편은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가족이 있어 행복할 수 있다는 소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40대 초반의 샐러리맨이 귀갓길에 들른 동네 포장마차. 고민에 빠진 얼굴로 소주잔을 마주하는 순간, 초등학교 딸이 IMT-2000 휴대폰 화면에 나타나 100점을 받았으니 빨리 집에 들어오시라고 애교를 떤다. 파안대소하는 아버지와 그 행복을 함께 나누는 주당들. 광고를 만든 제일기획은 이 광고의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캐릭터 모델로 삼성전자 홍보팀 조용우 대리를 캐스팅했다. 조대리는 콘티와 똑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찍었으며 촬영한 모델의 표정과 행동의 특징을 세밀하게 분석해 이를 그대로 인형에 접목한 것. 또 하나 예쁜 새댁 인형이 등장하는 ‘지펠 냉장고’ CF는 톱스타 이영애를 모델로 해 촬영한 것이라고. 이봉주-고종수 등도 이미 인형 모델로 등장해 사랑을 받았다.

    국내 최초로 해외 유명 캐릭터인 ‘월레스 & 그로밋’을 모델로 내세운 인터넷 쇼핑몰 ‘삼성몰’ 이후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제작하는 광고가 크게 늘었다. 애니매이션을 광고에 차용한 사례는 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미국의 메트라이프 생명보험회사는 스누피로 유명한 ‘찰리브라운과 그의 친구들’을 자사 캐릭터로 활용해 딱딱한 이미지를 벗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스터를 캐릭터로 활용한 전일항공(ANA)의 탑승률은 15% 이상 상승했다.

    ‘첨단 디지털 기술과 따뜻한 인간미의 결합’은 전자업계 광고의 가장 큰 화두다. LG전자의 ‘시장’편은 홈네트워크가 현실화하는 가상 상황을 설정해 ‘친근하고 따뜻한 디지털 기술’이라는 컨셉트를 전달하고 있다. 퇴근길 시장에 들러 싱싱한 생선을 골라 단말기로 집에 있는 아내에게 생선을 보여주는 남편과 ‘디지털’을 ‘돼지털’로 알아듣는 생선가게 할머니…. 결국 그것이 수백만 원짜리 인터넷 냉장고와 화상전화기를 선전하는 광고라 할지라도 광고를 보는 순간, 입가에 훈훈한 웃음이 도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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