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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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낭만이 머문 하얀 꽃망울

마르크 샤갈 ‘Bouquet dans la Campagne’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10-02-24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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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낭만이 머문 하얀 꽃망울

    ‘Bouquet dans la Campagne’, oil and gouache on paper laid down on canvas, 61.5×47.5cm, 1959~69년

    꽃이 피기엔 조금 이른 계절입니다. 하지만 졸업과 입학이 맞물린 요즘, 설레는 기대감과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인생의 한 지점을 통과하는 학생들의 가슴에 안긴 꽃다발만큼은 계절을 잊은 채 화려합니다. 꽃다발은 학생들의 미래 역시 활짝 핀 꽃만큼이나 만개할 것이라 주문을 거는 듯합니다. 탄생, 입학, 졸업, 죽음 등 인간이면 누구나 거쳐야 할 통과의례에는 꽃이 늘 함께합니다.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작품 ‘Bouquet dans la Campagne(시골의 꽃다발)’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화폭의 절반 이상을 채운 꽃다발입니다. 이 꽃다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삶을 잠깐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1887년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98세로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혁명과 전쟁, 결혼과 이별, 삶과 죽음이라는 긴 여정을 온몸으로 겪어냈습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로 귀화했지만 2차 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뉴욕으로 건너갔다가 1947년 프랑스로 돌아와 지중해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의 초기작은 색채가 한없이 우울하고 어둡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가 등장하고, 러시아에서 스탈린이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자행하던 시점에 그린 까닭이죠.

    하지만 ‘Bouquet dans la Campagne’는 샤갈이 그를 둘러싼 암울한 정치적 상황이나 아내 벨라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1960년대 그린 것입니다. 이때는 특히 캔버스라는 틀을 벗어나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 도자기, 벽화 등 다양한 매체로 관심을 넓혀가던 시기였죠. 샤갈에게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은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나 다름없었는데요. 그는 “‘하늘이 쏟아내는 빛’을 발견했고, 내게 컬러를 선사한 것은 바로 그 빛”이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발견한 짙푸른 하늘빛, 그 위로 달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하얀 꽃망울들입니다.

    벨라와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 평생 그린 꽃다발이 처음 작품에 등장한 때는 1924년, 그가 프랑스 툴롱에 머무를 때였습니다. 러시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우아한 프랑스식 부케는 샤갈에게 곧 프랑스의 상징이 돼버렸습니다. 그는 마치 낯선 프랑스의 풍경을 그리듯 프랑스식 부케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는데요. 그는 작은 꽃이 섞여 어우러지는 미묘한 색깔의 조화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이 만들어내는 꽃잎의 다양한 질감을 열정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색채주의자로서 자신의 풍부한 색채 감각을 실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가 바로 꽃다발이었죠.

    이 작품에서 그의 색채는 만개한 꽃처럼 폭발적인 효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샤갈이 활동할 당시 미술계에서는 입체파, 야수파, 추상주의, 초현실주의 등 새로운 사조가 마구 쏟아져나왔지만, 그는 많은 작가와 교류하면서도 특정 사조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적 환상과 유대인적 신비를 프랑스식 낭만으로 풀어낸 그는 어느 사조에서도 찾기 힘든 ‘꿈의 서정’이란 꽃다발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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