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은 맛 칼럼니스트로서의 내 미각을 의심한다.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을 가려낼 줄은 알고 쓰느냐는 것이다. 나를 설핏 아는 사람들은 더 그런다. 거의 매일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사람이 어떻게 음식을 감별하는지 의아해한다.
나는 음식을 가려 먹는 미식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뛰어난 미각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10년 넘게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남달리 특출난 뭔가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뭐가 잘나서 맛칼럼니스트인가. 지금까지 공부해온 음식 맛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애초에 나는 배추, 무, 마늘, 사과 등이 품종과 재배방법, 재배지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유통과정까지 아우르는 전문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때 ‘농민신문’을 다녔는데, 3년 정도 전국을 돌았더니 스스로 농산물 전문기자라고 여길 만큼 지식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농산물로 만드는 최종 결과물인 음식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관련 서적을 훑었다. 당시엔 음식 전문필자 두서너 명이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는 책이 전부였다. 그 책을 들고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몇 달도 안 되어 나는 이 책들을 버렸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음식이 맛있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집들이 절반을 넘었던 것이다. 보통의 입맛을 지니고 있을 뿐인 내 입에 이러니….
그때부터 내가 공부하는 장소는 책상이 아니라 식탁으로 바뀌었다. 음식을 그냥 먹지 않고, 소 되새김질하듯이 콩나물 하나도 꼬장꼬장 맛의 포인트를 찾아나갔다.
까탈스럽게 최상의 맛 따지다 욕도 많이 먹어
예를 들어 김치찌개가 있다 치자. 먼저 머릿속에 최상의 김치찌개를 떠올린다. 김치의 발효와 익힘 정도에 따른 아삭함과 물렁함의 조화, 유산균의 상큼함과 육수 및 각종 양념의 어울림, 두부의 촉감과 익힘 정도…. 최상의 김치찌개가 그려졌으면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잘되었는지가 아니다) 따진다. 맛이 최상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원인이 재료에 있는지, 조리방법에 있는지를 따진 뒤 어떻게 하면 최상의 맛이 날지에 대해 궁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감도 잘 오지 않는 데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런 짓거리를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때 제일 확실히 효과를 거두는 방법은 맛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과 그 자리에서 토론하는 것이었다. 그럼 “이거 두부 간수를 안 빼서 텁텁한 거야” “두부는 찌개 다 끓고 난 다음, 내기 바로 전에 넣어야 안 흩어지고 국물이 탁해지지 않지” 등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생각만큼 쉬운 공부는 아니다. 맛을 본답시고 김치찌개 국물을 연거푸 떠먹는 것만으로도 동석한 이들의 핀잔을 들을 수 있다. “사람이 까탈스럽기는, 쯧쯧.”
그러나 공부의 효과는 엄청났다. 실제로 이렇게 해보면 여러분도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는지 말이다.
나와 함께 한정식집에 갔다고 생각해보자. 식탁에 앉자마자 나는 이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할 것이다.
“아, 여기는 코스로 나오는 한정식집이군요. 요즘은 한상차림이 거의 없어졌죠. 초반 음식은 밥과 같이 먹을 일이 없다 보니 간이 많이 약해졌어요. 전채요리로 탕평채가 나왔네요. 탕평채 맛과 모양을 내는 일은 참 어려워요. 청포묵의 은은한 때깔을 살리려면 간장을 많이 넣어서는 안 돼요. 그렇다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 쓴맛이 나고요. 그래서 어중간한 맛이 나는 게 보통이죠. 한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장맛이에요. 그런데 한정식집 가운데 직접 장을 담그는 곳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니 식초 담그는 집은 아예 생각도 못해요. 자, 이제 음식 재료도 따져볼까요. 사실 좋은 재료만 확보해도 음식 맛은 확연히 달라져요. 여기 돼지고기수육이 있네요. 어떤 집들은 자신만의 비법 양념을 넣고 끓였다면서 자랑하지만, 돼지고기 자체의 풍미는 느낄 수 없을 때가 많아요. 좋지 못한 돼지고기 냄새를 잡으려니 잡다한 양념이 들어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집에서 최상급의 돼지고기 목살을 사다가 된장, 생강만 넣고 끓여보세요. 얼마나 맛있는지. 이건 도라지인데 향이 없네요. 시장에서 깐도라지를 사다가 물에 담가놓으니 향이 다 달아난 거예요. 식당에서 생도라지 사다가 까서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아무리 때깔을 내고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도 재료 그 자체가 시원찮으면 맛이 날 리가 없어요. 너무 까다롭게 군다고요?”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와 음식을 먹을 때 되도록 음식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입맛 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맛 칼럼니스트 행세를 하고 다니면 이래저래 욕먹을 일이 많다.
나는 음식을 가려 먹는 미식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뛰어난 미각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10년 넘게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남달리 특출난 뭔가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뭐가 잘나서 맛칼럼니스트인가. 지금까지 공부해온 음식 맛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애초에 나는 배추, 무, 마늘, 사과 등이 품종과 재배방법, 재배지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유통과정까지 아우르는 전문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때 ‘농민신문’을 다녔는데, 3년 정도 전국을 돌았더니 스스로 농산물 전문기자라고 여길 만큼 지식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농산물로 만드는 최종 결과물인 음식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관련 서적을 훑었다. 당시엔 음식 전문필자 두서너 명이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는 책이 전부였다. 그 책을 들고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몇 달도 안 되어 나는 이 책들을 버렸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음식이 맛있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집들이 절반을 넘었던 것이다. 보통의 입맛을 지니고 있을 뿐인 내 입에 이러니….
그때부터 내가 공부하는 장소는 책상이 아니라 식탁으로 바뀌었다. 음식을 그냥 먹지 않고, 소 되새김질하듯이 콩나물 하나도 꼬장꼬장 맛의 포인트를 찾아나갔다.
까탈스럽게 최상의 맛 따지다 욕도 많이 먹어
예를 들어 김치찌개가 있다 치자. 먼저 머릿속에 최상의 김치찌개를 떠올린다. 김치의 발효와 익힘 정도에 따른 아삭함과 물렁함의 조화, 유산균의 상큼함과 육수 및 각종 양념의 어울림, 두부의 촉감과 익힘 정도…. 최상의 김치찌개가 그려졌으면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잘되었는지가 아니다) 따진다. 맛이 최상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원인이 재료에 있는지, 조리방법에 있는지를 따진 뒤 어떻게 하면 최상의 맛이 날지에 대해 궁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감도 잘 오지 않는 데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런 짓거리를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때 제일 확실히 효과를 거두는 방법은 맛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과 그 자리에서 토론하는 것이었다. 그럼 “이거 두부 간수를 안 빼서 텁텁한 거야” “두부는 찌개 다 끓고 난 다음, 내기 바로 전에 넣어야 안 흩어지고 국물이 탁해지지 않지” 등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생각만큼 쉬운 공부는 아니다. 맛을 본답시고 김치찌개 국물을 연거푸 떠먹는 것만으로도 동석한 이들의 핀잔을 들을 수 있다. “사람이 까탈스럽기는, 쯧쯧.”
그러나 공부의 효과는 엄청났다. 실제로 이렇게 해보면 여러분도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는지 말이다.
나와 함께 한정식집에 갔다고 생각해보자. 식탁에 앉자마자 나는 이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할 것이다.
“아, 여기는 코스로 나오는 한정식집이군요. 요즘은 한상차림이 거의 없어졌죠. 초반 음식은 밥과 같이 먹을 일이 없다 보니 간이 많이 약해졌어요. 전채요리로 탕평채가 나왔네요. 탕평채 맛과 모양을 내는 일은 참 어려워요. 청포묵의 은은한 때깔을 살리려면 간장을 많이 넣어서는 안 돼요. 그렇다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 쓴맛이 나고요. 그래서 어중간한 맛이 나는 게 보통이죠. 한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장맛이에요. 그런데 한정식집 가운데 직접 장을 담그는 곳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니 식초 담그는 집은 아예 생각도 못해요. 자, 이제 음식 재료도 따져볼까요. 사실 좋은 재료만 확보해도 음식 맛은 확연히 달라져요. 여기 돼지고기수육이 있네요. 어떤 집들은 자신만의 비법 양념을 넣고 끓였다면서 자랑하지만, 돼지고기 자체의 풍미는 느낄 수 없을 때가 많아요. 좋지 못한 돼지고기 냄새를 잡으려니 잡다한 양념이 들어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집에서 최상급의 돼지고기 목살을 사다가 된장, 생강만 넣고 끓여보세요. 얼마나 맛있는지. 이건 도라지인데 향이 없네요. 시장에서 깐도라지를 사다가 물에 담가놓으니 향이 다 달아난 거예요. 식당에서 생도라지 사다가 까서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아무리 때깔을 내고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도 재료 그 자체가 시원찮으면 맛이 날 리가 없어요. 너무 까다롭게 군다고요?”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와 음식을 먹을 때 되도록 음식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입맛 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맛 칼럼니스트 행세를 하고 다니면 이래저래 욕먹을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