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강화군 마니산 참성단. 33개 계단을 오르면 높이 6m 크기의 돌들로 이뤄진 제단이 보인다. 강화군 제공
한반도의 배꼽 강화도
신라 수도 경주는 글로벌 도시였다. 해상 및 육상 교역로를 통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및 유럽 여러 나라와 교류했다. 당대 국제 경제와 세계 문화 교류의 중심이었다고 할 만하다. 반면 강화도는 국제 정치와 안보의 핵심 기지 구실을 했다. 특히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존재한 해양강국의 중요 거점이었을 뿐 아니라, 한반도 안보를 좌우하는 군사 해상기지이기도 했다.오늘날 한국 국민은 강화도를 외세의 거센 침략에 맞서 싸운 민족 항쟁의 성지로 인식한다. 13세기 유라시아를 제패한 ‘세계 제국’ 원나라가 고려를 삼키려 했을 때 강화도는 임시 수도로서 결사 항전의 보루 역할을 했다. 19세기에는 배와 함포를 앞세워 조선을 침탈하려는 강대국들에 맞서 최전선 기지로 기능하기도 했다. 프랑스 함대의 침략으로 발생한 병인양요(1866), 미국 함대가 일으킨 신미양요(1871), 일본의 운양호 사건(1875) 모두 강화도에서 벌어졌다. 이 섬의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이다.
강화도는 물길을 통해 고려 수도 개경과 조선 수도 한양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한반도에 진출하려는 외세로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군사 요충지였던 셈이다. 달리 말하면 강화도는 한반도를 지키는 서해 수문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강화도의 상징은 마니산(472m)이다. 산 높이나 규모로 보면 그다지 특별한 게 없는데도 이 산의 옛 이름 ‘마리산’에는 ‘머리’ 또는 ‘우두머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마니산은 위치도 남다르다. 북녘 백두산 천지에서 직선거리로 500㎞ 남짓, 남녘 한라산 백록담에서도 똑같이 500㎞ 남짓 떨어져 있다. 그래서 강화도를 한반도의 배꼽이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다. 강화도의 지정학적·지형적 조건을 고려할 때 마니산에 단군시대를 상징하는 참성단이 설치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참성단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으로, 높이 6m 크기의 돌로 이뤄져 있다. 아래 제단은 둥근 원형으로 하늘을 상징하고, 위쪽 제단은 네모반듯한 형태로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참성단은 ‘전국에서 기(氣)가 가장 센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하늘 기운과 바다 기운이 불기둥처럼 뿜어져 나오는 명당터로 알려져 있다. 공중으로 치솟듯 뻗어 있는 주변 기암괴석들도 마치 이 일대가 하늘로 통하는 관문임을 상징하는 듯하다. 참성단에 흐르는 기운은 맑으면서도 강력해 이곳에 가면 평범한 사람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기(天氣)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한민족 역사가 서려 있는 마니산 참성단에서 지난해 10월 3일 ‘제4356주년 개천대제’와 ‘제105회 전국체전 채화식’이 열렸다. 강화군 제공
천기(天氣) 흐르는 명당터
옛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듯하다.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1328~1396)은 1358년(공민왕 7년) 가을, 참성단에서 천제(天祭)를 지내며 고려 중흥과 정치 개혁을 염원했다. 그는 마니산을 자동(紫洞), 즉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규정했고 산 정상의 참성단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天壇)이라고 했다.이색은 한반도 지리를 깊이 연구한 풍수 실력자이기도 했다. 그는 공민왕으로부터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지은 풍수 도참서를 살펴보라는 명을 받은 후 오랫동안 비서(秘書)를 연구한 끝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광대한 온 세상이 한 하늘을 함께 이고 있는데, 뭇 용이 꿈틀꿈틀 나타났다 숨었다 하네. 동으로 달려와서는 예부터 정신(精神)이 다 모였으니, 우리 강토를 받들어 억만 년을 누리리라.”
풍수에서는 땅의 기운이 흐르는 곳을 용맥(龍脈)이라고 한다. 위 시에 등장하는 ‘뭇 용’은 여러 용맥을 가리킨다. 그중 하나가 한반도, 즉 해동(海東) 땅으로 흘러왔는데 범상치 않게도 천하의 정기를 다 품고 있어 우리 땅의 운수가 영원히 번성할 것이라는 의미다. 바로 그 한반도 운수의 키를 쥔 곳 가운데 하나가 마니산 참성단인 것이다.
고려와 조선 두 왕조를 섬긴 성리학자 권근(1352∼1409) 역시 참성단에 대해 “제단 한복판은 하늘과 가까워 신령의 하강을 맞이할 만하다”고 평한 바 있다. 참성단이 천기가 곧장 내려오는 명당이라는 뜻이다.
참성단이 제단 역할만 했던 건 아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제강점기 미국 상원 등에 보낸 외교문서(‘국무원 문서’ 1921년 9월 8일자)에서 참성단을 “최고(最古) 점성천문(占星天文)의 유적”이라고 설명하며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국의 천문대라고 강조했다. 조선 정조 시기 발간된 기상관측서 ‘서운관지(書雲觀志)’에는 천문 관측을 위해 참성단에 관상감 관원을 파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천문지리학자인 임정규는 최근 ‘고천문 관점에서 바라본 참성단의 성격’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참성단이 해와 달, 별이 뜨고 지는 것을 관찰하고 계산하는 천문대 역할을 해왔음을 밝혀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매년 동짓날이 되면 새벽 해가 참성단 상단 제단으로 이어지는 돌계단 중앙으로 떠올라 제단 한가운데를 정확히 관통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실측 결과 참성단 돌계단 방향이 남북 자오선에서 119~120도 기울어져 있는데, 이는 이 지역의 동지일출 방향인 119.4도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밝혔다. 동지나 하지일출 방향은 일력(日曆)을 계산하는 기준이다. 참성단의 제단 역시 영국 스톤헨지처럼 이에 맞춰 조성됐다는 의미다.

참성단에서 바라본 일출. 참성단은 맑고 강력한 천기(天氣)가 흐르는 명당터다. 안영배 제공
명예운과 경제운의 보고
참성단은 주변 지표 지형을 이용해 춘분과 추분 때의 일출·일몰까지 잡아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춘분과 추분 시기에 참성단의 방형 제단 중심을 관측 기점으로 삼을 경우 동쪽의 서울 북악산과 서쪽의 소연평도에서 진행되는 일출·일몰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참성단은 한반도에서 천문 관측과 천제단이라는 두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온 유일한 성소인 점은 분명하다. 단군 시기에 조성돼 하늘에 한반도 개국(開國)을 알렸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마니산 참성단은 풍수적으로도 태백산과 함께 최고 명예 기운을 얻을 수 있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꼽히는 곳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대 왕들이 자신의 무병장수가 아닌, 강력한 국운을 기원하는 천제를 지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확인되듯이 이곳은 국가의 명예운과 경제운을 담고 있는 보고(寶庫)다. 대격변기를 겪고 있는 현 세계 정세에서 한국에 꼭 필요한 운이라고 할 것이다.
앞으로 서해안 시대가 열려 마니산 기운이 만개하면 대한민국은 최고 전성기를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참성단에 올라 나라의 발전을 기원한 후 승진과 능력 발휘 등 자신의 소원을 덤으로 비는 것쯤은 마니산도 ‘애교’로 봐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