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앙라이 커피 나무(왼쪽)와 드립커피 도구들. GETTYIMAGES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커피 산지
치앙라이는 1262년 란나 왕국의 왕 멩라이가 건설한 도시다. 그는 북부 전략 요충지에 수도를 세워 왕국 영토를 확장하고 무역과 문화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이후 중심지가 치앙마이로 옮겨지면서 란나 왕국의 첫 수도였던 이곳은 조용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서 도시는 고유의 품격과 정서를 지켜왔다. 오래된 사원과 고대 건축물,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 속에 남아 있는 란나 왕국의 흔적은 치앙라이가 단순한 소도시가 아님을 보여준다.치앙라이의 아침은 커피 향으로 시작된다. 이른 아침 안개가 걷히는 골목을 따라 퍼져 나가는 커피 내음은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처럼 포근하다. 태국 북부지역은 고원지대에 위치한 커피 농장으로 유명하다. 도이창과 도이퉁 지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커피 산지로, 20세기 후반 라마 9세 국왕이 아편 대체 작물로 커피 재배를 장려하면서 성장했다. 이 배경이 오늘날 치앙라이의 세련된 로스터리 문화로 이어졌다.
근교에 소규모 커피 농장이 많아 여행자는 원두가 자라는 과정을 보고 농부와 대화하면서 커피 향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시내 곳곳에 자리한 카페에서는 갓 볶은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다. 견고하고 진한 풍미는 이 도시의 공기처럼 부드럽고 깊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고 골목을 거닐다 보면 여행의 속도는 자연스레 느려진다. 이동도 간편하다. 시내에서는 그랩이나 볼트 같은 차량 호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오토바이를 빌려 주요 관광지를 도는 것도 좋다. 주요 명소는 도심과 가까워 도보 여행으로도 충분하다.
치앙라이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명소들은 도시 중심부에 자리한다. 그중 왓롱쿤, 일명 화이트 템플은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순백의 사원은 불교 전통과 현대 예술이 만난 걸작으로, 예술가 찰름차이 코싯피팟이 설계했다. 햇살이 반사되는 하얀 벽과 섬세한 조각들은 선과 악,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완공된 사원이지만 그 안에는 란나 왕국 시절부터 이어져온 태국 북부의 종교적 상징이 스며 있다.
또 다른 명소인 왓롱수아텐, 즉 블루 템플은 푸른 외관과 정교한 장식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공간이다. 맑은 하늘 아래서 빛나는 푸른 사원의 곡선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차분히 가라앉힌다. 이 지역은 란나 왕국 시절 신앙의 중심지였던 터전으로, 지금의 사원이 그 전통을 잇고 있다.
화이트 템플과 블루 템플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 전혀 다른 세계가 여행자를 기다린다. 바로 블랙 하우스(반담 뮤지엄)다. 태국의 국민 예술가 타완 두차니가 설계한 이 공간은 흑단 목재로 지은 건물 안에 동물의 뼈, 가죽, 전통 악기 등을 전시해놓아 인간과 자연, 생과 사의 경계를 탐구하게 한다.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에서 존재의 근원을 사유하게 만드는 이곳은 화이트 템플의 순수함, 블루 템플의 신비로움과 대비되는 예술의 또 다른 깊이를 보여준다.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의 철학적 대화가 공존하는 곳, 치앙라이는 이 세 곳을 통해 ‘빛과 어둠, 삶과 예술의 대화’를 완성한다.
치앙라이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건축과 예술을 넘어 일상의 풍경 속에도 있다. 해가 지면 도심 속 나이트바자는 활기를 띠고, 전통춤과 라이브 음악이 어우러진 시장은 여행자를 유혹한다. 여행자는 저렴한 물가 덕에 향신료 가득한 현지 음식과 디저트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주말 토요 야시장에서는 수공예품, 길거리 음식, 전통 의상 등을 둘러보면서 지역 문화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푸른 외관과 정교한 장식이 어우러진 블루 템플. GETTYIMAGES
예술가와 디지털 노마드의 정착지
북부 특유의 색이 담긴 카오소이 국수는 코코넛 카레와 바삭한 면이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선사한다. 잘게 썬 파파야에 고추와 라임을 듬뿍 넣은 매콤하고 상큼한 솜땀, 구운 고기 요리, 열대과일 주스, 코코넛 아이스크림, 구운 바나나와 사탕수수 음료는 여행자의 피로를 녹인다. 여기에 곁들여지는 친절한 현지인들의 미소는 하루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최근에는 예술가와 디지털 노마드가 치앙라이에 정착하며 새로운 문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오래된 도시 위에 젊은 창작 에너지가 덮이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느긋한 오후,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예술과 역사, 철학이 교차하는 공간들을 거닐다 보면 치앙라이가 왜 이토록 많은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