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에서 ‘문제는 경제다’를 구호로 내건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이 제1당이 됐고, ‘문제는 정치다’를 외친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경제 관련 쟁점이 총선을 지배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치를 바꿔 경제를 일으키자는 열망만큼은 확인할 수 있는 선거였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선거(대선)에서 경제를 살릴 대통령을 뽑겠다는 의견은 응답자의 과반이었다. 여소야대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으나, 대선에서도 경제문제가 유권자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이 경제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을 두 가지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유권자가 갖고 있던 ‘보수는 경제, 진보는 민주주의’라는 고정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야당의 경제 이슈가 재분배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진보 정치권 역시 경제성장을 자신들의 강점으로 내세우고 나섰다.
이렇게 보면 2016년은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성장과 분배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던 담론에서 벗어나 ‘어떤 정치세력이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더 능력이 있는지’를 중심에 놓고 경쟁하기 시작한 첫해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어느 진영이 경제에 더 유능했는지 돌아보는 일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성적표는 진보 정부가 낫지만…
한국에서 보수가 경제에 유능하다는 이미지가 형성된 것은 박정희·전두환 정부 시기의 높은 경제성장률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을 통해 집권한 1962년부터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87년까지 연평균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4.2%에 달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성장률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연평균 14%대는 분명 훌륭한 성과다. 이 기간 한국의 1인당 GDP는 40배 성장했고, 우리나라는 1인당 소득이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경제후진국에서 3600달러(약 411만 원)가 넘는 탄탄한 중진국이 됐다(2005년 불변가격 기준).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성장률도 고도성장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이후를 놓고 보면, 두 진보성향 정부의 집권 기간에 연평균 1인당 소득 성장률은 10.4%였다. 외환위기 이후 8134달러(약 929만 원)로 떨어졌던 1인당 GDP는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에 2만3101달러(약 2610만 원)까지 올라 당당히 선진국에 진입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진보성향 정부의 이러한 성과는 박정희·전두환 정부 시기의 업적보다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민주화 이후만 놓고 보면 보수성향의 정부가 집권한 기간의 경제성장률은 진보성향 정부의 그것보다 낮았다.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정부 임기의 1인당 GDP 성장률을 모두 평균해 보면 연 6.0%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보다 4%p 낮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고도성장을 이루며 중진국으로 발전한 국가는 많다. 가깝게는 중국이 있고, 남미 국가들 역시 한때는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최근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경제성장률도 상당히 높다. 하지만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10년 이내 짧은 기간에 1인당 GDP 8000달러대 중진국이 2만 달러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한 사례는 역사를 통틀어 한국과 일본뿐이다. 진보성향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적잖은 언론이 지속적으로 ‘중진국 함정’을 언급하며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할 것처럼 우려했지만, 2005년 세계은행(World Bank)은 한국을 중진국 함정을 뚫고 선진국에 안착한 국가로 분류했다. 이후 아직까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사례는 없다.
다른 나라도 정권 성향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다르게 나타날까. 미국의 경우 보수성향 정부와 진보성향 정부 집권 기간의 경제성장률이 확연히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당 정권의 성장률은 연 4.33%였지만 공화당 집권기에는 2.54%에 불과했다. 경제 안정성도 민주당 정부 시절이 공화당 정부 시절보다 좋았다. 기술적으로 2분기 연속 경제가 후퇴하면 불황이라고 규정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총 11번의 불황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10번이 공화당 대통령 시절에 시작됐다.
경제성장의 열매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정권에 따라 달라질까.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자들이 진행한 관련 연구를 살펴보자. 경제가 1% 이상 성장했을 때 민주당 행정부 기간에는 일자리가 창출되고 실업률이 줄어드는 효과가 크게 나타난 반면, 공화당 행정부 시기에는 실업률이 줄기보다 주식시장이 활성화됐다고 이들은 평가한다. 그렇다고 공화당 행정부 기간 주식시장이 더 빠르게 성장한 것은 아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로 측정한 주식시장의 연간성장률은 민주당 집권기에 평균 8.35%, 공화당 집권기에 2.70%였다.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한 기간의 경제성장률이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진짜 정답은 ‘민주주의’뿐
이렇게 놓고 보면 ‘경제는 보수, 민주주의는 진보’라는 통념과 달리, 진보성향 정부가 경제적으로 더 유능한 것처럼 보인다. 진보성향 정당이 내놓은 특정 정책들이 더 나은 경제성장을 만들어낸 것일까. 그러나 사회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전혀 다르다. 허망하지만 미국 민주당 행정부의 경제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이유는 정책 덕분이 아니라, 단순히 운이 좋아서였을 따름이다. 미국 민주당의 경제정책이 성장에 더 유리하다는 증거는 없다. 우연히 이 시기 국제유가가 상대적으로 안정됐고, 기술 발전도 더 잘 이뤄졌으며, 국제적 여건도 좋았을 뿐이다. 반면 재정이나 통화 등 구체적인 정부 정책의 효과 측면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 의미 있는 격차는 없었다.
한국도 민주화 이후 보수 정부 집권 기간에 성장률이 낮았던 가장 큰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김영삼·이명박 정부 시기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프’에서 보듯 이들 두 차례 경제위기의 효과를 제거하면 민주화 이후 보수성향 정부와 진보성향 정부의 경제성장률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정치와 경제성장은 무관한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경제발전 초기에는 권위주의가 효율적인 듯 보여도 중진국이 된 이후에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가진 국가가 위기에 빠질 개연성이 낮아져 안정적 경제성장을 구가할 공산이 크다. 뒤집어 말해 중진국에서 벗어난 나라의 경제를 망치는 정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권위주의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야말로 경제성장에 가장 친화적이라는 의미다. 20대 총선 결과에서 경제성장의 희망을 읽을 수 있는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