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는 신혼여행지였다. 2014년 배우 조인성, 소지섭, 하지원이 나와 히트한 TV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처럼 요즘도 커플티를 입은 쌍쌍의 허니무너들이 끊임없이 발리를 찾는다. 발리와 관련된 여행 안내책자도 10여 권. 촌구석 레스토랑의 할인가격까지 알고 찾아가는 블로거와 누리꾼들의 정보력이라면 공항에 달랑 혼자 남더라도 무서울 게 없다.
하지만 최근 발리는 한국 신혼족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비행기로 7시간. 그 정도 거리라면 요즘 ‘꽃보다 할배’로 뜬 동유럽, 즉 슬로베니아와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 헝가리를 돌아볼 수 있다. 발리는 단순히 섬 여행지이지만 유럽은 여러 나라를 주유하는 배낭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관광정책을 새로 짰다. 허니문에만 몰두하지 않고 서핑과 골프 같은 스포츠로 방향을 전환했다. 단순 관광보다 스포츠의 부가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 특히 골퍼는 갓 결혼한 젊은이들과는 돈 씀씀이가 다르다. 팁의 지폐 색깔부터 달라진다. 젊은이들은 ‘더 싸게’를 외치지만 골퍼들은 ‘퀄리티’를 먼저 따진다.
최근 발리의 골프장 4곳을 돌아봤다. 가장 오래된 코스는 1974년 해발 1398m 고지에 조성된 ‘한다라’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내로라하는 전 세계 톱 설계가들이 초빙돼 ‘발리’라는 조그만 섬 휴양지 캔버스에서 베스트 코스 설계 경연을 벌였다. 전 세계 코스평가사이트(www.top100golfcourses.co.uk)를 보면 인도네시아 코스 랭킹에서 6위에 오른 곳이 2007년 이곳에 개장한 뉴쿠타다. 2009~2010년 발리오픈과 인도네시아오픈을 개최했다. 해안 절벽을 따라 흐르는 후반 홀이 웅장하다. 인도네시아 코스 랭킹 4위인 발리내셔널은 1991년 개장한 코스로 유러피언투어 알프레드던힐챔피언십을 유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 압권은 세계 100대 코스(2014년 ‘골프다이제스트’ 선정 세계 52위)에 선정된 ‘니르바나 발리’다. 파72 6805야드(약 6222m) 코스로 호주 그레그 노먼이 설계해 1997년 개장했다. 니르바나는 불교 용어로 진리를 깨닫는 경지에 드는 ‘열반(涅槃)’이란 뜻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니르바나의 특징은 계단식 논들이 코스 전체에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재도 코스 안 논에선 농사를 짓는다. 1번 홀의 경우 블랙, 블루, 화이트, 레드 등 원형의 티잉그라운드 주변으로 층층이 계단식 논이 펼쳐진다. 말하자면 이승의 삶 사이에서 죽음의 골프를 치는 셈이다. 벼가 있는 논으로 공이 들어가면 1벌타를 받고 해저드 처리를 해야 한다.
이슬람 인구가 다수인 인도네시아에서 발리는 유일하게 힌두교도가 90%를 차지하는 섬이다. 발리 곳곳에 힌두교 사원이 있다. 그중 최고로 숭상받는 사원이 타나롯(Tanah Lot) 해상사원이다. 바다 가운데 불쑥 솟은 암반에 조성된 사원으로 썰물 때만 건너갈 수 있다. 니르바나 발리에는 7번 홀 그린 옆으로 보이는 타나롯 사원뿐 아니라 18개의 크고 작은 사원과 불당, 불상이 코스 곳곳에 깔려 있다. 3번 홀 큰 나무 밑에도 조그맣게 불당이 있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13번 홀 계곡 밑에도 사원이 있다.
성(聖)과 속(俗), 농사와 골프, 일과 휴식이 어우러진다. 논두렁 옆으로 페어웨이가 흐르고, 농부는 골퍼의 샷을 보면서 모내기를 한다. 골퍼는 사원을 보며 샷을 한다. 파도가 치는 계곡을 건너야 하는 7번 홀은 파3 194야드(약 177m)다. 어드레스하기 전 티잉그라운드 앞 불당에서 염을 하고, 피니시를 한 뒤에는 타나롯 사원을 향해 공이 그린까지 잘 날아가기를 기원하며 이렇게 외쳐야 한다. ‘니르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