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밤 9시 26분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6.4 강진이 발생하면서 우리나라 부산과 울산, 포항 시민들도 지반의 흔들림을 감지했다. 일부 시민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집 안 창문이 떨린다’ ‘옷걸이에서 옷이 떨어졌다’ ‘큰 지진이 날까 봐 무서운데 집에 있어도 되느냐’ 등의 글을 남기며 한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각 우리 정부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번 일로 정부의 ‘긴급재난문자’에 대한 신뢰가 다시 한 번 바닥으로 떨어졌다. 긴급재난문자는 태풍이나 홍수, 폭설, 해일 등 각종 재난 발생 시 신속한 대피를 위해 국민안전처에서 이동통신사를 통해 휴대전화로 보내는 긴급 문자메시지를 말한다. 2006년 처음 도입했을 당시에는 2세대(2G) 휴대전화 방식에 맞춰 개발돼 3세대(3G) 휴대전화 가입자는 서비스를 받지 못하다 2013년부터 출시된 4세대(4G) 휴대전화에는 수신기능이 의무적으로 탑재됐다.
어느덧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국민서비스임에도 여전히 시스템에 ‘구멍’이 있다는 점에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지진이야말로 긴급재난문자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물론 대피까지 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현재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던 시민들은 오랜 시간 불안에 떨어야 했다.
“지진은 서비스 대상 아니다”
더욱이 한반도가 더는 지진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관측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점도 무시해선 안 된다. 기상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은 총 527건으로 점차 증가 추세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발생한 지진은 235건인 데 비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발생한 지진은 292건으로 60건가량 늘었다.이번 구마모토현 지진과 관련해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되지 않은 이유는 정부의 긴급재난문자 발송 대상에 지진이 아예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긴급재난문자 발송 대상에 자연재해 가운데 태풍, 폭우, 폭염, 안개 등은 포함됐지만 지진은 빠져 있다는 것.
이에 대해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지진은 예측이 불가능한 재해다. 현재 긴급재난문자는 기상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토대로 날씨, 기후와 관련해 해당 지역민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형태인데 지진은 감지 자체가 힘들다는 점 때문에 예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예보가 힘들다면 지진 발생 후 주민 행동 요령 등에 대한 안내라도 있어야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지진은 CBS(Cell Broadcasting Service·긴급재난문자서비스)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국민안전처는 지진 발생 사흘 뒤인 4월 17일 뒤늦게 관계부처(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원자력안전위원회, 기상청 등) 및 지진 관련 전문가들을 소집해 회의를 개최했다. 이후 국민안전처는 지진방재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5월 중 개선안을 내놓기로 했다. 각 부처에 분산된 지진방재제도 및 정책, 연구개발(R&D)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범정부 차원의 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한 것.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지진방재대책 개선추진단(TF)’도 꾸려 4월 26일 첫 회의를 열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내구 연한이 초과된 지진 관측 장비를 교체하고 지진 및 해일 발생에 대비해 자동음성시스템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은 물론, 민간 건축물의 내진 보강을 위한 세제 감면비율 확대와 보험요율 차등 적용, 건축물의 내진 설계 여부를 표시하는 지진 안전성 표시제 의무화 등을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긴급재난문자와 관련한 논의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 특성상 예측이 어려운 만큼 미리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인근 국가 또는 해역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피 및 대응이 가능하도록 사후 발송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차라리 수신거부 설정하고 싶다”
정부의 긴급재난문자 발송은 국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시스템이지만 국민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문자메시지 남발, 즉 시의적절성이 늘 문제가 됐다. 긴급 상황일 때 문자메시지가 오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긴급재난 상황이 아닌데도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문자메시지도 골칫거리다. 뜬금없는 시간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안개주의보나 폭염주의보 관련 문자메시지를 받거나, 명절 연휴에 발송되는 ‘안전운전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면 과연 긴급재난에 해당될 만한 사안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지난해에는 메르스 예방수칙을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17일 만에 문자를 보낸 데다, 내용도 ‘손 자주 씻기’ 등 익히 알려진 내용이어서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았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긴급재난문자’만 쳐도 수신거부 설정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묻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긴급재난문자 사이렌 소리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리겠다’ ‘토요일 이른 아침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더니 안개 조심하라는 문자였다’고 적으며 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결국 국민안전처는 올해 초 긴급재난문자를 3단계로 나눠 발송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긴급재난문자의 수신음은 60dB(데시벨) 이상의 큰 사이렌 소리였는데, 이를 재난 위급성에 따라 ‘안전안내’ ‘긴급재난’ ‘위급재난’ 3개로 구분해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것.
먼저 폭염이나 황사 같은 안전 주의 알림 수준인 안전안내문자메시지는 수신자가 무음이나 진동, 벨소리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벨소리로 설정할 경우 종류와 음량을 바꿀 수 있다. 주민 대피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와 전쟁 상황을 알리는 위급재난문자는 민방위 사이렌음과 비슷한 경보음이다. 다만 긴급재난문자는 40dB, 위급재난문자는 60dB 이상을 적용해 위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게 했다. 또 안전안내문자와 긴급재난문자는 수신을 원치 않는 경우 거부할 수 있지만, 위급재난문자는 수신거부를 하지 못한다.
바뀐 시스템에 따르면 안개주의보 등 날씨와 관련한 문자메시지는 ‘안전안내’라는 제목으로 발송돼야 하지만, 여전히 이를 ‘긴급재난문자’로 받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올해 초부터 출시된 휴대전화 기기에만 이 시스템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민안전처 자연재난대응과 관계자는 “긴급재난문자는 휴대전화에 탑재된 프로그램에 따라 구현 형태가 다르다. 지난해 8월 삼성, LG, 애플과 운영협의회를 거쳐 올해부터 출시되는 휴대전화에는 긴급재난문자를 3가지로 구분해 수신하게끔 했다. 단 애플과는 협의가 끝나지 않아 아이폰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방식의 긴급재난문자를 받을 수 없다. 삼성·LG 휴대전화도 올해 전에 출시된 제품은 여전히 모든 안내 문자메시지가 ‘긴급재난문자’로 수신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