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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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뺀 3국, 조2위 놓고 도토리 키재기

일본 지코 감독 조국과의 승부, 명장 히딩크의 돌풍 재연 여부 ‘흥밋거리’

  • 박문성 SBS 해설위원 mspark13@naver.com

    입력2006-05-22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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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뺀 3국, 조2위 놓고 도토리 키재기

    F조의 사령탑. 왼쪽부터 거스 히딩크(호주), 파레이라(브라질), 즐라트코 크란카르(크로아티아), 지코(일본) 감독.

    우승 후보 브라질이 버티고 있는 F조는 감독들과 관련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일본을 이끄는 지코 감독은 모국인 브라질과 피할 수 없는 일전을 벌여야 한다. 우리와 너무나 친숙한 거스 히딩크 감독은 32년 만에 본선에 오른 호주의 돌풍을 자신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독일 땅을 밟는다. 아버지 즐라트코 크란카르는 감독으로, 아들 니코 크란카르는 선수로 지구촌 축구축제에 나선다. 브라질은 그냥 지켜보는 것 자체도 즐거움이다. 득점왕 2연패를 노리는 호나우두(레알 마드리드), 현존하는 최고의 테크니션 호나우디뉴(바르셀로나), 조각 같은 외모만큼이나 빼어난 기량을 지닌 카카(AC밀란) 등 브라질 선수들의 개인기는 빼놓을 수 없는 F조의 관전 포인트다.

    속마음은 어떨까. 지코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생각해보라. 자신이 나고 자란 조국과 숙명의 승부를 벌여야 하니 얼마나 얄궂겠는가. 지코는 1970~80년대 브라질 축구를 대표한 별 중의 별이다. 예술의 경지에 오른 프리킥, 예측하기 어려운 창조적 플레이, 골키퍼의 두 발을 얼어붙게 만드는 고감도 골 결정력 등 찬란한 재능으로 ‘하얀 펠레’라는 애칭을 얻었다.

    스타군단 브라질의 화려한 개인기 볼 만

    그는 브라질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 무대만도 3차례나 밟았다.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을 시작으로 82년 스페인월드컵, 86년 멕시코월드컵에 출전했다. 86년 대회는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브라질은 8강전에서 미셸 플라티니가 이끌던 프랑스와 격돌했다.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는데, 지코는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었던 페널티킥을 놓치며 브라질의 4강 진출 실패를 맛봐야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지코의 존재감을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세계 최우수선수에 올랐고, 남미 최우수선수는 세 번이나 차지했다. A매치 89경기에서 86골을 기록한 그는 축구왕국 브라질의 스타플레이어 계보를 이은 영웅임이 분명하다.

    지코가 일본 축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의 일이다. 브라질 플라멩고, 이탈리아 우디네세 등에서 활약했던 지코는 90년 은퇴를 선언했다가 이듬해 일본 프로축구팀 가시마 앤틀러스의 전신인 스미토모금속에 입단하면서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독보적 존재감과 발군의 기량을 뽐낸 지코는 92년 일본 프로리그인 J리그 출범 원년에 가시마 앤틀러스를 챔피언에 올려놨다. 현역 은퇴 뒤 지도자로 일본 축구와 연을 잇던 지코는 마침내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트루시에에게 배턴을 넘겨받아 일본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父子가 감독·선수로 출전

    지코는 일본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삶을 의탁해왔으니 과할 것도 없는 표현이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일본은 근래 이 문제로 지코를 비난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일본문화를 익히기는커녕 의사소통조차 수월치 않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평가전 성적이 신통치 않자 4년 전 프랑스 출신의 트루시에가 간단한 일본어 대화를 구사했던 것과 견주며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저런 문제가 겹치자 일본축구협회는 2006년 월드컵 성적과는 무관하게 그를 해임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선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코의 심정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과연 ‘지코 재팬’은 브라질을 만나 어떠한 결과를 남길 것인가. 6월23일 일본과 브라질이 맞붙는다.

    호주가 월드컵 본선에 나선 건 1974년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32년 만의 외출이니 설레는 건 당연하다. 호주는 주전 대다수가 잉글랜드 등 유럽무대에서 뛰고 있으면서도 조직력 및 리더십 부재, 타 대륙과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제도상의 불리함 때문에 그동안 지구촌 축제에 초대받지 못했다.

    오랜 갈증을 해갈해준 주인공은 다름 아닌 히딩크다. 우리에게 설명이 더 필요할까.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를 4강에 올려놨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호의 선장으로 다시금 4강 신화를 일궈낸 그다. 다른 국가를 이끌며 연속해서 월드컵 4강에 오른 최초의 지도자가 바로 히딩크다. 호주는 우루과이와의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조직력과 리더십 부재라는 단점을 치유하고자 히딩크를 전격 영입했고, ‘히딩크의 마법’은 간절한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놨다.

    일본은 호주와의 경기를 16강 진출의 분수령으로 본다. 검증된 지도력을 갖춘 히딩크가 아시아 축구까지 꿰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다. 스승이자 토털사커의 창시자인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전술을 이어받아 전원이 공격하고 수비에 가담하는 역동적인 스타일을 중시한다. 공격은 중앙에서의 침투보다는 좌우 공간으로 벌려 크로스 한 뒤 문전에서 마무리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무엇보다도 히딩크의 마법은 전술의 전개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는 데서 나온다. 과연 일본이 히딩크의 마법을 풀 수 있을까.

    장-유리 조르카예프, 체자레-파올로 말디니, 차범근-두리 부자. 이들의 공통점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 월드컵 무대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차범근은 1986년 월드컵에서는 선수로, 98년 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다. 차두리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팀 대표로 활약했다. 체자레-파올로 말디니 부자는 98년 월드컵에서 감독과 주장으로 나란히 본선 무대를 밟기도 했다. 이렇듯 지금껏 월드컵을 나란히 경험한 부자는 모두 10쌍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에는 1쌍이 더 늘어난다. 크로아티아의 즐라트코-니코 크란카르 부자 때문이다.

    아버지 즐라트코 크란카르는 옛 유고의 최고 인기선수였고, 분리 독립 이후엔 크로아티아 초대 대표팀 주장을 지낸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그는 1998년 월드컵 4강 돌풍의 재현을 자신하고 있다. 자신감의 한가운데에 아들 니코(하이두크 스플릿)가 있다. 크로아티아 축구의 영웅 즈보니미르 보반의 후계자로 불릴 만큼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는 니코는 탁월한 발기술과 수비진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놀라운 패싱력을 갖춘 선수다. 이번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10경기 중 9경기에 나서며 크로아티아의 본선행을 이끌었다. 데이비드 베컴(레알 마드리드)을 울고 가게 만들 외모로 뭇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꽃미남이기도 하다. 한 자리를 놓고 다투는 호주, 일본, 크로아티아의 대결에서 즐라트코-니코 부자는 어떤 성과를 거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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