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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본 경제 이야기 | ‘쉘 위 댄스’와 일본

‘No’ 못하는 일본인 … “이보다 더 순종적일 순 없다”

  •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mjlee@donga.com

‘No’ 못하는 일본인 … “이보다 더 순종적일 순 없다”

‘No’ 못하는 일본인 …  “이보다 더 순종적일 순 없다”
인기작가 출신의 도쿄도 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망언으로 또 구설에 올랐다. 이번에 그는 “생식기능 없는 노파는 세상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여성 비하 발언으로 화려한(?) 설화 전력에 또 하나를 보탰지만 사실 그의 망언들은 대부분 군국주의적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잇따른 망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가 사그라들 줄 모른다는 점이다. 그 불가사의를 이해하는 것은 부드러운 파마 머리를 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의 고이즈미 총리가 전범 위패를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뜻을 굽히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무릇 어떤 문제든, 그 문제의 진상을 이해하려면 현상 뒤에 숨은 뿌리에 접근해야 한다. 일본의 군국주의에도 ‘잎’과 ‘뿌리’가 있다. 고이즈미나 이시하라 같은 사람은 수시로 출현했다 사라지는 군국주의라는 나무의 수많은 ‘잎’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 잎들을 재생산하는 뿌리, 혹은 토양은 일본사회 자체다. 즉 극우파적 시각, 역사왜곡이 정치의 주류가 되는 데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는 일본 시민사회의 취약성이 문제의 ‘뿌리’인 것이다. 서구사회의 근대사에서 보아왔듯이, 부조리와 불합리를 경계하고 비판하는 건 건전하고 탄탄한 시민사회다.

그러나 일본에는 이런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못했다. 2차대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점이 확연해진다. 두 나라는 같은 패전국이지만 과거 청산이나 역사 인식에서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독일은 최근 들어 나치즘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최소한 정부 당국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신나치주의자를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시선도 매우 냉담하다.

이렇게 대조를 이루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독일은 건전하고 탄탄한 시민사회가 형성돼 있는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한 탓이 크다. 독일에선 건전한 시민의식이 ‘시대착오적 기류가 주류화’되는 것을 막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은 흔히 ‘부국빈민(富國貧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부자 나라지만 국민은 가난하다’는 뜻이다. 대장성 통산성 주도하의 경제성장 모델은 거시 지표상으론 분명히 부국을 이뤘지만 그 과실은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선진국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국민들의 실상은 풍요로운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물가고에 시달리며 새장처럼 작은 집에 갇혀 사는 이들이 ‘선진 일본 국민들’이다. 선진국의 경우 부유한 부르주아가 성숙한 시민사회 형성의 바탕이 됐다. 그러나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고속성장한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 단지 경제면에서뿐만 아니라 의식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산층은 있을지 모르나 건강한 시민계급은 형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몇 년 전 개봉된 일본 영화로 ‘쉘 위 댄스(사진)’ ‘행복한 가족계획’이 있었다. 많은 이들은 이 두 영화를 유쾌하고 흐뭇한 웃음을 자아내는 영화로 평가했다. 그러나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고 영화 속 일본인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이 영화들은 일과 가족에 치여 고단한 일상을 사는 40대 가장이 사교춤, 혹은 방송국 경품 프로그램에 도전함으로써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일본 중산층, 평범한 일본인들의 삶과 의식을 보여준다. 40대인 중년의 주인공들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의 말이나 행동이 마치 초등학생의 그것처럼 미숙해 보인다. 회사에선 상사의 명령에 허리를 굽히던 이들이 댄스교습소에선 젊은 춤 선생의 지시에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순응한다. 굽히는 건 허리뿐만이 아니다. 의식도 일본 국민들이 제1 덕목으로 삼고 있는 ‘와(和)’의 정신에 충실하듯, 이보다 더 순종적일 순 없다.

이시하라는 어느 책에서 “일본인들이 이젠 국제사회에 대해 노(No)라고 말해야 한다”고 썼지만 진짜 문제는 “노”라고 말할 줄 모르는 일본 국민들이다. 총리의 잘못된 신사참배에, 역사 교과서 왜곡에 “노” 할 줄 모르는 것, 그것은 건강한 시민사회의 부재를 말한다.



주간동아 367호 (p78~79)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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