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소문 명지빌딩 20층에 마련된 원로들의 문화 사랑방에서 첫 모임을 가진 태평관 기숙당 회원들. 학계·문화예술계 원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언뜻 보면 전직 총리와 장관들(정원식·이영덕·이현재 이상 총리, 조순 부총리, 서명원·권이혁·조완규 이상 교육부 장관, 이어령 문화부 장관)의 모임이거나, 학술원 회원 혹은 전직 대학총장들(김준엽 고려대, 고병익 서울대, 정범모 한림대, 이현재 서울대, 이영덕 명지대) 모임 같기도 하다. 그러나 분야별로 보면 문학(이우성·이어령·여석기), 역사학(고병익·김준엽·이기백·차하순), 철학(김태길), 한문학(조남권), 신학(최석우·한철하), 의학(권이혁), 경제학(조순), 자연과학(조완규), 교육학(이영덕·정원식·서명원·정범모), 환경(박영숙), 미술(권옥연), 음악(김동진·황병기), 연극(차범석), 영화(유현목), 무용(김백봉) 등 도통 종잡을 수 없는 게 이 모임의 특징이라면 특징. 게다가 1995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맞대결을 펼친 정원식 전 총리와 조순 전 부총리가 자리를 함께한 것도 눈에 띈다.
학계·문화계 거목 27명 한자리에
태평관 모임의 상견례가 있던 날 마침 해외로 연주여행을 떠난 황병기씨와 김준엽, 여석기, 이기백씨 등 4명을 뺀 23명이 마주했다. 모임을 주관한 고병익 교수는 “분야가 달라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된 분들도 있다”며 “명지대-LG연암문고가 희귀한 고서적만 모은 게 아니라 원로학자들이 은퇴 후에도 연구하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어령씨가 “어린 제가 심부름하는 뜻에서 나서게 됐습니다”라고 운을 떼 웃음을 자아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황병기씨(67)의 불참으로 새해 계미년에 예순아홉이 되는 이어령씨가 모임의 막내 노릇을 하게 됐다. 최고령자는 구순을 맞는 김동진 경희대 명예교수. 태평관 회원들의 평균연령이 77세니 60대라면 아직 젊은이다.
모임의 심부름꾼을 자청한 이어령씨와 명지대학의 인연은 6년 전 고서 한 권으로 시작됐다. 명지대는 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18~19세기 해외에서 출간된 한국 관계 고서 찾기 운동을 시작했고, LG연암문화재단이 매년 2억원씩 지원을 약속하면서 운동에 가속이 붙었다. 지금까지 명지대가 LG연암문고라는 이름으로 수집한 자료가 책, 지도, 삽화, 필름을 합쳐 1만여점에 이르는 데다 동주 이용희 선생이 기증한 동주문고(2만8000여점)와 독일 수집가가 기증한 기산 김준근(구한말 화가)의 풍속화 21점 등 해외로부터의 기증 사례도 늘고 있다.
그 가운데 이어령씨의 손에 들어온 책은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아돌프 탈라소가 펴낸 ‘아시아의 연시(戀詩) 시화집’이었다. 탈라소는 아시아 28개국의 연시를 골라 책으로 엮었는데 여기에 조선시대 가곡집 ‘남훈태평가’ 3편(꿈, 이별, 눈물)이 수록돼 있었다.
“책에 대한 해설을 의뢰받은 후 서양의 한국문학 수용과정을 연구하려면 우리 문학만큼이나 외국 문학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시야가 넓어야 한다는 것이죠. 당장 삼경을 사흘밤, 사경을 나흘밤으로 오역한 부분이 눈에 띄지만 오역 자체도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국 문학 번역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귀중한 이런 자료들을 자유롭게 열람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겁습니까.” 이어령씨의 말이다.
해외에서 출간된 한국 관계 고서 4만여점을 보유하고 있는 명지대-LG연암문고의 개가식 도서관.
한국 관계 고서 찾기 운동이 본궤도에 오르고 18개 언어, 4만여점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가 축적되면서 “수집에만 매달리지 말고 연구를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명지대-LG연암문고에는 박태근 상임연구위원(65·관동대 객원교수)과 기록과학대학원의 김찬규 교수(문화재보존관리학) 등 5명의 운영위원이 있으나 자료를 분류하고 목록과 목차를 정리하는 일로도 벅찼다. 박태근 위원은 “젊은 학자들의 경우 나무(전공)만 보지 숲을 보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이우성, 고병익 선생처럼 시야가 넓고 박식한 원로학자들의 힘을 빌려야 할 때”라고 말한다.
“학문의 중심은 ‘원전주의’입니다. 하지만 지난 세기 우리의 서지학적 능력으로는 원전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중역과 재인용에 만족해야 했죠. 일본에서 네덜란드어로 된 ‘하멜 표류기’가 출간된 것이 1970년대 일인데 우리는 아직까지 일어판, 영어판 중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저희 문고에서 17~18세기 유럽에서 출간된 ‘하멜 표류기’ 네덜란드어판, 프랑스어판, 독일어판, 영어판, 덴마크어판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땅에 원전주의 학문의 토양이 마련된 것입니다. 해외유학을 통해 외국어에 능통한 젊은 학자들과 원로학자들이 함께 연구하는 지적 재생산의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박태근 위원의 말이다.
서고 마련 연구와 휴식 접객까지
태평관 기숙당 모임을 이끈 고병익 전 서울대 총장(위)과 이어령 전 이화여대 교수.
교수에게는 정년이 있어도 학문에는 정년이 없다고 하듯, 태평관 회원 27명은 정년이란 말을 아예 잊고 지낸다. 구순의 1세대 작곡가 김동진 선생이 여전히 제자들과 함께 발표회를 가질 만큼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철학의 태두로 불리는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83)는 자신이 세운 철학문화연구소로 매일 출퇴근한다. 조남권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소장(75)은 지금도 현장에서 동양고전을 강의하며 고전 국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예순이 되니 사회에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그에게 은퇴 운운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올해도 무용가 최승희 기념사업으로 분주했던 김백봉 교수(76), 전시회 준비로 여념이 없는 권옥연 금곡박물관 관장(80), ‘한국사 시민강좌’를 만드는 이기백 서강대 명예교수(79), 세계역사학대회를 준비한 차하순 서강대 명예교수(74) 등 학문과 예술에 대한 원로들의 열정은 끝이 없다.
이들은 태평관 사랑방 모임이 안부 인사나 나누는 친목회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학자들은 가장 먼저 방대한 한국 관계 자료들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했고,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주제 발표와 토론을 하자, 이 내용을 녹음해서 테이프나 CD에 담아보자, 태평관 홈페이지를 만들어 원로학자들이 일반인과 접속할 기회를 갖자, 일반인을 위한 공개강좌를 열자 등등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이어령씨는 “재산만 사회에 환원할 게 아니라 마지막 지혜까지도 사회에 환원하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태평관 모임은 그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