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5

2001.10.18

의혹과 음모의 엘리베이터

  • 조용준기자

    입력2004-12-30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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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혹과 음모의 엘리베이터
    중학교 1학년 조카가 부탁해 왔다. 논술 숙제를 도와달라는 거였다. 제목은 ‘우리 사회에서 신뢰가 사라지는 까닭’.

    한동안 멍한 심정이 되었다. 중1 학생의 논술 숙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주제라서가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인가, 어디 그 이유가 한두 가지인가…. 실타래를 풀기가 매우 어려웠다. 곤혹스럽기도 했다. 세상을 장밋빛으로만 보고 있는 어린 조카에게 질문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추악한 실상을 말해 준다는 사실도 너무 참담한 일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신뢰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

    대통령을 위시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정치인들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건국 이래 최대의 부패 스캔들’이 생겨나는 참으로 희한하고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순환구조 때문에? 세상이 온통 ‘조폭(組暴) 천지’라서? 떼거리로 ‘가리지 않고 해처먹는’ 저 이리 떼의 게걸스런 탐욕 때문에? 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느 한 곳 빠질 것 없이 이리 떼와 영합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권력기관들 때문에? 일개 사기꾼의 ‘머니 게임’에 금융시장의 모든 업종이 가담하는, 한심하다 못해 할복자살해도 시원치 않을 금융계 수준 때문에? 분노만 하다 시간 지나면 슬그머니 주저앉아 또 엉뚱한 곳에 표를 주고 마는, 자조 속에 소주 판매량만 늘리는 ‘엽기적인 유권자’들 때문에? 아니면 ‘빅 브라더’가 정말 내 귓속에 도청장치를 달아놓고 머릿속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놓아서?

    자업자득의 ‘황폐한 불신’은 높아만 가고



    지금 이 사회에는 거대한 엘리베이터가 한 대 존재한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와도 같은 엘리베이터다. 어쩌면 모든 국민의 머릿속에도 똑같이 한 대씩 들어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의혹과 음모라는 이름의 엘리베이터다.

    야당 관계자들은 이렇게 속삭인다. “우리에게 들어오는 각종 제보 중 발표하는 것은 사실 2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를 다 발표하면 정권이 아니라 그야말로 나라가 망해버릴까봐 차마 발표하지 못한다.” ‘대통령만 절딴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말 나라 자체가 절딴날 것을 우려한’ 야당 총재가 대여 공격의 수위 조절을 지시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고양이 쥐 걱정하는 모습일 수도 있지만, 이런 야당 주장은 그 과장에도 불구하고 턱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이용호 게이트’만 해도 검찰의 일부 인사들이 야당에 정보를 흘려 사건의 불씨를 지폈으며, 구속된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단장 사건 역시 검찰에서부터 정보가 흘러나갔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이 때문에 민주당 이해찬 의원은 국회 정무위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썩어빠진 검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악다구니를 쓰기도 했다.

    청와대와 여당에서 들으면 펄펄 뛸지 모르겠지만, 레임덕은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됐다. 기실 레임덕이라는 단어 자체를 꺼리는 것 자체가 레임덕의 징후다. 이미 검찰이며 국정원, 금감원 등에서 내부 정보가 줄줄이 새고 있는데 레임덕이 아니라고 우긴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의혹지수’를 숫자로 표시했을 때 사실이 10이라고 한다면, 권력 집단에서 ‘자기들끼리만 해먹는 데 열받은’ 제보자가 이를 야당에 흘릴 때 대개는 자기가 아는 사실에 보태 50쯤으로 과장한다. 야당 발표는 더 부풀려져 “이용호 게이트는 저리 가라 할 깜짝 놀랄 만한 비리를 더 확보하고 있다”고 100의 수준에 도달한다. 그러면 이를 받아들이는 국민은 자신들의 상상력까지 보태 “안 드러나서 그렇지 이용호 같은 놈이 어디 한둘이겠어?” 하는 식으로 200의 수준으로 훌쩍 증폭된다.

    물론 은폐되는 스캔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의혹과 음모 없이는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의혹의 엘리베이터는 갈수록 올라만 가지 좀처럼 내려오지 못한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X파일’의 진실만이 진실이 된다. 온 국민의 눈이 사시(斜視)가 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다. 대부분 권력집단의 요직들이 ‘동네 잔치’가 되지 않도록 철저한 탕평책을 썼더라면, 그래서 “그거 하나는 YS와 다르네”라는 말을 들었더라면, 권력기관 내부에서 먼저 등돌리는 시기는 한참 늦췄을지 모른다. 의혹과 음모의 엘리베이터가 너무 올라간 탓에 이제는 무슨 말을 해도 믿지 못하는 ‘황폐한 불신감’도 꽤 줄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신뢰가 사라지는 정확한 이유를 자식들에게 차마, 제대로 말해 주지 못하는 이 땅의 아버지들만 그저 불쌍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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