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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북한을 너무 강하게 몰았다”

회고록 낸 장충식 단국대 명예총장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MB가 북한을 너무 강하게 몰았다”

“MB가 북한을 너무 강하게 몰았다”
“초고를 절반으로 줄였어요. 북한과 관련한 내용은 거의 싣지 못했죠. 아직 살아 숨 쉬는 사람이 많아서요. 내가 쓴 글 탓에 사람이 다쳐선 안 되잖아요.”

장충식 단국대 명예총장 겸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미소를 가득 머금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 나이로 여든을 맞은 그가 ‘시대를 넘어 미래를 열다’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냈다. 617쪽 분량의 회고록을 남겼다는 것은 삶이 파란만장(波瀾萬丈)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1932년 중국 톈진(天津)에서 태어났다. 1966년 단과대였던 단국대 학장에 취임해 이듬해 종합대 승격을 이뤘다. 1967년 단국대 총장에 취임해 36년간 단국대 발전을 이끌었다. 회고록은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비사(秘史)로 가득하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YS(김영삼 전 대통령) 쪽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는데,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해 거절했어요. 그 일로 괘씸죄에 걸려 YS정부 때 단국대가 손해를 봤죠.”

그는 또 “삼성이 단국대를 인수하려고 했는데 YS정부의 압력으로 좌절됐다”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을 퇴임 후 단국대 총장으로 영입하려 했고, 노 전 대통령도 긍정적이었으나 흐지부지된’ 일도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체육인으로서도 족적을 남겼다. 스포츠를 통한 동구권 외교에 발을 담갔고, 남북 단일팀 협상에 참여했다.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로 남북 단일팀(축구, 탁구) 구성을 성사시켰다. 탁구 단일팀은 1991년 3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축구 단일팀은 1991년 5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단일팀 단기인 한반도기, 단가인 아리랑을 탄생시킨 것도 그다.



“1989년 루마니아 시민들이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처단해요. 차우셰스쿠와 김일성이 가깝지 않았습니까. 북한에선 루마니아 전 국민이 차우셰스쿠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김일성도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해요. 북한은 그때 통일 분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동유럽의 붕괴 영향이 북한에 들어오려는 걸 막으려 했어요. 그래서 단일팀 구성이 성사될 수 있었죠.”

그는 2000년 8월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취임했다. 취임 직후인 그해 8월 15일 분단사의 새 장을 연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 적십자사 주관으로 이뤄졌다. 그를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추천한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였다고 한다.

“선친께서 이희호 여사의 미국 유학 경비를 댔다고 해요. 그 일로 인연을 맺었어요.”

그는 다수의 남북회담에 참여한 북한 전문가다. 6장(章)으로 이뤄진 회고록의 한 장을 남북관계 비화에 할애했다. 그간의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기조를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해결책은 명확해요. 북한 주민이 먹고살도록 도와줘야 해요. 달래면서 협상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북한에 대해 자극적으로 언급해서는 안 돼요. 북한 사람도 달래면 양보할 줄 알아요. 대결 의식을 갖고 접근하면 안 됩니다. 이번 정부는 초기에 너무 강하게 나갔어요. 정부 출범 직후 했던 것의 절반 정도로만 강하게 했어야 해요.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쥐를 궁지에 몰았습니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사람을 문다고 하지 않습니까. 북한이 의지할 곳이 사실 우리밖에 없어요. 북한을 잘 아는 사람이 ‘정치 고수’예요. 군인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도 남북관계가 싸우지 않는 쪽으로 나가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했어요. 하지만 이 대통령은 지나치게 강하게 나갔어요.”



주간동아 2011.10.31 810호 (p78~78)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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