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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검문 성지순례는 ‘고난의 길’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여전히 숨죽인 평화…연초에 몰려든 순례자들 발목 잡기 일쑤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kimsphoto@hanmail.net

살벌한 검문 성지순례는 ‘고난의 길’

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베들레헴과 처형되기 직전까지 활동했던 예루살렘, 두 도시는 역사의 숨결이 스민 곳이다. 지난 2000년 동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선지자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종교와 신화가 서린 이런 도시를 누가 지배하느냐였다. 정복자는 피지배자들의 신전을 허물고, 그 폐허 위에 그들이 믿는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웠다. 피지배자들은 허물어진 신전을 언젠가 다시 세우겠다고 맹세했고, 피가 피를 부르는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11~13세기 무려 8차에 걸쳐 벌어진 십자군전쟁, 그리고 20세기의 잇단 중동 전쟁은 궁극적으로 예루살렘 지배권을 둘러싼 전쟁이었다.

유혈충돌 줄자 방문객 급증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해마다 연말연시에 순례자로 붐빈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베들레헴에는 호텔 방이 모자라 10km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가서 숙박을 해결할 정도다. 2010년 성탄절 주간에는 모두 9만여 명의 방문객이 몰려들어 베들레헴에 있는 호텔의 객실 2750개 중 빈방이 없다는 소식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사람의 발길이 줄어드는 연초에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찾아 새해 소망을 기리는 순례자도 적지 않다.

2000년 9월 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군사적 통치에 맞서 싸우는 인티파다(intifada·봉기)가 벌어진 뒤 두 도시는 엄청난 불경기를 맞았다. 순례자와 관광객이 뜸해져 일부 호텔이 문을 닫을 정도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긴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유혈충돌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자 상황은 나아졌다. 전보다 훨씬 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이 두 도시를 찾아오고 있다. 베들레헴시 당국은 2010년 예수 탄생지인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140만 명을 웃돌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는 서기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베들레헴을 방문하면서 세웠다. 방문객이 교회 에 들어가려면 1.2m 높이의 작은 문을 지나야 한다. 중세 십자군전쟁 때 예루살렘을 점령한 기사들이 문을 그렇게 작게 고친 까닭은 이교도들이 말이나 마차를 타고 교회를 짓밟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진다. 2002년 4월엔 이스라엘군과 교전하던 팔레스타인 무장대원 수백 명이 이 교회로 피신하는 바람에 엄청난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교회를 완전히 둘러싸고 교회 외벽에다 무차별 사격을 해 비난을 샀다. 지금도 벽에는 그날의 총격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베들레헴의 상주인구 3만 명 중 80%가 이슬람교도이고, 기독교도는 20%인데 대부분 구교 쪽이다. 시 행정은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이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따라 199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출범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베들레헴과 동예루살렘을 오가려면 8m 높이의 거대한 장벽 사이에 세워진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이스라엘은 2002년부터 예루살렘 외곽에 높이 8m의 콘크리트 분리장벽을 건설하고 있으며, 2012년 장벽이 완공되면 전체 길이가 790㎞에 이른다). 그러나 검문소를 통과하는 것은 쉽지 않다. 팔레스타인 현지 취재 때, 그 검문소에서 몇 시간씩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은 “우린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들을 제때 보내고 안 보내고는 그날그날의 치안 상황, 그리고 검문소를 지키는 이스라엘 젊은 병사들의 변덕스러운 기분에 따라 결정된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어디선가 유혈충돌이 벌어지면 검문소 자체가 폐쇄되기도 한다. 모처럼 성지순례길에 나섰어도 운이 없으면 검문소에서 기다리는 데 귀한 시간을 다 쓴다.

동예루살렘 포위한 유대인 뉴타운

베들레헴과 동예루살렘은 사실상 맞닿아 있다. 두 도시의 경계선에 거대한 분리장벽과 검문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스카이라인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예수가 설교를 했을 법한 언덕, 양치기들이 양떼를 몰고 다녔을 언덕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런 주택단지를 ‘뉴타운’이라 부르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서안지구 곳곳에 들어서는 유대인 정착촌과 다를 바 없다. 현재 약 20만 명의 유대인이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주변의 뉴타운에 입주했다. 언젠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로 동예루살렘이 정해지면 당장 유대인 뉴타운이 골칫거리가 된다. 이를테면 동서울을 수도로 점찍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 지역인 광주, 하남, 판교, 분당에 유대인 정착촌이 들어서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돌이켜보면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유혈분쟁을 거듭했던 도시다. 11~13세기에 일어났던 십자군전쟁이 예루살렘의 특성을 잘 말해준다. 20세기 들어와 예루살렘은 다시금 분쟁의 도시로 떠올랐다. 1947년 11월 유엔총회는 ‘결의안 181’을 통해 예루살렘을 유엔 신탁통치 아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쪽에 모두 개방된 국제도시로 두기로 했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 독립과정에서 터진 1차 중동전쟁을 거치며 이스라엘은 서예루살렘을, 요르단은 동예루살렘을 차지했다. 그리고 1967년의 이른바 ‘6일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까지 점령했다.

예루살렘을 동서로 다시 나누자는 논의가 나온 것은 오슬로 평화협정에서 이스라엘과 미래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뜻하는 ‘두 국가 해결안(two-state solution)’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즉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은 미래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통치한다는 구도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강경파가 “예루살렘은 결코 분할되거나 공유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여기는 데 있다. 2009년 3월 정권을 잡은 강경우파 정치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도 기회 있을 때마다 공개적으로 그런 발언을 해왔다. 그는 “통합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다. 예루살렘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우리의 것이고, 결코 분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지금 이스라엘 대통령인 시몬 페레스도 네타냐후 총리와 같은 주장을 편다. 페레스는 오슬로 평화협정에 이스라엘 외무장관으로 참여해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과 함께 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인물이다. 2000년 말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서 페레스 당시 지역개발장관을 만났을 때 그는 “2000년 여름 에후드 바라크 당시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 아래 미국에서 캠프 데이비드 중동평화협상을 할 때 동예루살렘 같은 어려운 주제는 뒤로 미루고 쉬운 것부터 풀어나갔어야 했다”고 말했다. ‘뜨거운 감자’인 동예루살렘이 협상의 큰 걸림돌이 됐다는 지적이다. 페레스는 “바라크 총리가 모든 문제를 일괄 타결하려고 서두르다 그만 협상을 그르쳤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런 페레스의 ‘예루살렘 분할 불가론’에 대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열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지배권 둘러싸고 유혈충돌 되풀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아랍어로 ‘알 쿠즈’라 부른다. 앞으로 언젠가는 세워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가 바로 알 쿠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1948년 독립을 선언할 당시 행정수도는 텔아비브였으나, 1950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서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다고 선포했다. 그래도 미국 대사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외교공관은 텔아비브에 있다. 절대다수의 유대인은 “예루살렘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중심도시로 남아야 한다”는 믿음을 지녔다. 따라서 지금처럼 도시 전체가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에 영원히 묶어두기 위해 2009년 ‘예루살렘의 경계를 변경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을 담은 법률을 통과시켰다.

동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유대인 구역, 기독교도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 이슬람교도 구역 등 크게 4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지금 그곳에선 부동산 매매를 둘러싼 은밀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중이다. 유대인들이 돈뭉치를 들고 야금야금 부동산을 사들여 그들의 구역을 넓히려 들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만난 한 치과 의사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이 집을 사려는 유대인들이 ‘값을 후하게 치를 테니 팔라’고 조르지만 팔지 않고 있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유대인들이 대리인을 앞세워 팔레스타인 부동산을 사들이는 것을 몹시 경계하고 있다. 만일 어떤 팔레스타인 사람이 유대인에게 땅이나 집을 팔았다면 그를 ‘반역죄’로 다스릴 정도다. 2009년 4월 헤브론의 팔레스타인 법원은 이스라엘 회사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땅을 팔아넘긴 혐의로 기소된 팔레스타인 부동산 중개인에게 교수형을 내렸다.

동예루살렘의 8개 성문 가운데 가장 크고 잘 보존된 것이 동예루살렘 구시가지 북문인 다마스쿠스 문이다. 멀리 시리아 다마스쿠스 쪽을 바라본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따르면, 이름을 바오로로 바꾸기 전 사울이 기독교도들을 잡아 죽이려고 그 문을 드나들었다. 바로 가까이에 시장과 시외버스 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어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문이다. 성문 위에는 저격수들이 쓰는 조준경 달린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있다. 21세기 초 예루살렘의 살벌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순간, 2000년 전 예수가 살아 있을 당시 예루살렘을 지배했던 로마 군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은 동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에서 기도를 드릴 때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지켜보는 살벌한 분위기 아래, 때로는 군홧발에 엉덩이를 차이는 수모를 당하면서 예배를 드린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을 내몰고 싶다며 간절하게 기도한다. 이렇듯 예루살렘은 정복과 피지배가 되풀이됐던 유혈의 과거사를 지녔고 지금도 ‘평화의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잊을 만하면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무장헬기가 하늘에서 기관총과 로켓을 쏴댄다. 지금은 교착상태에 빠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 언젠가 원만하게 타결되는 날, 예루살렘은 말 그대로 ‘평화의 도시’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럴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동의 기상도는 오늘도, 내일도 ‘흐림’이다.



주간동아 2011.01.03 769호 (p48~50)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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