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4

2008.12.09

영부인은 스타일을 입는다 Michelle OBAMA

뉴욕 패션계가 사랑하는 검은 피부의 ‘재클린 케네디’

  • 뉴욕=조엘 김벡 Joel Kimbeck 광고기획자·칼럼니스트

    입력2008-12-01 16:4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영부인은 스타일을 입는다 Michelle OBAMA

    인생 최고의 순간 나르시소 로드리게즈의 컬렉션을 선택한 미셸 오바마(위). 모델의 런웨이 모습에 결코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과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2008년6월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경선 승리를 선언했다. 민주당 경선은 폭스, NBC 등 기존 채널의 뉴스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뉴스 전문 채널 CNN을 다시 살려냈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치열한 승부였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오바마가 결정되자 많은 힐러리 지지자들은 당연히 허탈감에 빠졌다. 그사이 공화당의 대선후보 존 매케인은 러닝메이트로 알래스카 주지사인 사라 페일린을 내정, 선거 전면에 내세웠다. 페일린이 ‘화이트 노이즈(형세를 유리하게 만드는 잡음)’를 만들고 쇼맨십을 발휘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자, 실의에 빠져 있던 힐러리 지지자들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이들에게는 공화당에게 다시 정권을 맡길 수 없다는 공통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힐러리의 지지자였다가 오바마 캠프로 들어온 인물들 중에는 할리우드의 지성파 배우 맷 데이먼 등 스타들이 있다. 그들의 빛에 가려지긴 했지만 이때 세계 패션계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자들도 대거 오바마 지지로 전향했다. 그중에는 캘빈 클라인을 비롯해 도나 카란, 톰 포드, 마크 제이콥스, 베라 왕 같은 디자이너들과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미국판 ‘보그’의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 에디터 앙드레 레온 탤리 등도 포함돼 있다.

    그들은 공화당 부통령 후보 페일린의 선정적인 캠페인에 반감과 함께 위기감을 느끼며 오바마 후보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캘빈 클라인이 오바마를 위한 기금 모금 파티를 열었다. 마크 제이콥스는 웨스트 빌리지에 자리한 그의 브랜드 ‘마크 by 마크 제이콥스’ 매장을 뒤덮고 있던 힐러리의 얼굴이 프린트된 아이템들을 정리하고, 대신 ‘OBAMA’라고 프린트된 모자와 티셔츠들을 쇼윈도에 전시했다.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 바비 브라운은 오바마 후보의 부인 미셸 오바마를 위한 메이크업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세계 패션계 실력자들 오바마 지지

    한국에서도 유명한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라 제시카 파커와 안나 윈투어는 ‘변화의 패션쇼(Runway for Change)’라는 슬로건의 오바마 후원 파티를 공동 주최했다. 이 행사에는 뉴욕 사교계 인사들이 몽땅 참석해 ‘뉴욕 컬렉션’을 방불케 했다. 유명 디자이너들이 미니 패션쇼를 선보였고,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를 비롯한 몇몇 디자이너들은 의상과 가방 등을 별도 제작해 판매한 돈을 오바마 캠프에 기부하기도 했다.

    미국의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힐러리에게 열화 같은 지지를 보냈던 패션계가 버락 오바마와 특히 그의 부인 미셸 오바마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미셸 오바마는 프린스턴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에서 법학박사를 받은 뒤, 정치적 근거지인 시카고에서 대학병원의 부원장을 맡고 있다. 뿐만 아니라 두 딸을 키우는 가정적인 면도 갖고 있어 언론은 그들 부부를 ‘존 F. 케네디와 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재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미셸은 180cm의 큰 키로 연단 위에서나 거리유세에서나 돋보였다. 패션계의 많은 이들이 애정을 쏟아붓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이에 비해 페일린은 트레이드마크인 올림머리가 정숙하게 보이려고 억지로 연출한 것 같다는 여론의 반감을 샀을 뿐 아니라 ‘경박하면서도 촌스러운 스타일을 창출하는 놀라운 패션 센스를 지녔다’는 악평을 받기도 했다.

    영부인은 스타일을 입는다 Michelle OBAMA

    토크쇼에 중저가 브랜드 옷을 입고 출연해 ‘아메리칸 트래드’ 스타일을 보여준 미셸.

    180cm 큰 키의 매력적 캐릭터

    특히 8월 말에 열린 전당대회에서 미셸은 뉴욕 패션계의 샛별 중 한 사람인 ‘타쿤(Thakoon)’의 2009년 봄 컬렉션의 플로럴 프린트 드레스를 입고 나와 뉴욕의 패션피플을 감동시켰고, 그날 이후로 인기는 한층 높아졌다.

    이전에 미셸은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마리아 핀토(Maria Pinto)’의 의상을 즐겨 입었다. 마리아 핀토의 의상은 소재의 미를 최대한 살리는 담백한 디자인으로 정치가의 아내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기는 했지만, 미셸은 그 의상에 전위적인 프랑스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ia)의 블랙벨트를 하거나 록스타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얼리 디자이너 로리 로드킨(Loree Rodkin)의 형이상학적인 귀고리를 매치하는 등의 센스를 보여 패셔니스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리아 핀토가 화제의 브랜드가 된 것은 물론이다.

    페일린이 뉴욕의 대형 백화점 바니스 뉴욕, 삭스 피프스 애버뉴, 버그도르프 굿맨 등을 돌며 15만 달러어치의 명품 의상을 쇼핑했다는 소위 ‘15만불 사건’으로 세간의 뭇매를 맞고 있을 때, 미셸은 미국의 대표적인 중저가 의류브랜드 체인 제이크루(J. Crew)의 니트 카디건과 스커트 차림으로 NBC의 간판 토크쇼 ‘제이 르노의 투나잇쇼’에 출연했다. 그가 그날 입었던 옷은 페일린의 15만 달러 명품보다 더 세련된 느낌과 컬러 매치로, 브랜드 관계자는 방송 이후 매출이 급신장했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트래드(American Trad) 스타일의 요즘 트렌드가 하버드 출신인 그와 잘 맞아떨어진 데 비해, 우아함을 강조한 패일린의 클래식 스타일이 오히려 작위적으로 보인 것도 사실이다.

    영부인은 스타일을 입는다 Michelle OBAMA

    여러 라이프스타일지의 표지 모델이 된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 부부. 한국에선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대통령 선거 투표일 밤, 버락 오바마가 승리의 연설을 하고 있던 그때 미셸 오바마는 전 세계 인구가 지켜보는 자리에 나르시소 로드리게즈의 2009년 봄여름 컬렉션을 입었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강렬하게 대비를 이룬 미셸의 드레스는 세계인의 가슴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전 세계 백화점과 셀렉트 숍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의 패션 센스도 기존의 어떤 미국 대통령들과 비교되지 않는다. 매케인은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못한 남성 패션지 GQ, 맨즈 보그(Men’s Vogue) 등의 커버 모델로 등장했으며, 특히 흑인 남성지 ‘바이브(VIBE)’의 표지를 촬영할 때는 사진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유명 포토그래퍼 테리 리처드슨에게 직접 작업을 의뢰해 화제가 됐다.

    할리 베리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의상을 담당하는 스타일리스트 필립 블록은 “값비싼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지 않고, 자신의 나이에 걸맞고 품위 있으며 세련된 스타일을 창출했다”면서 오바마의 스타일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영부인 미셸이야말로 시대의 아이콘이던 재클린 케네디를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미셸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그의 남편과 더불어, 미국 패션계에 큰 영향을 줄 스타일리시한 영부인이 될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패션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