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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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도 사랑 듬뿍 마음의 메신저

연말연시 선물

  • 남훈 The Alan Company 대표 alann1971@gmail.com

    입력2013-12-23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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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아도 사랑 듬뿍 마음의 메신저
    우리는 해마다 열심히 살아도 이 무렵이 되면 뿌듯함과 아쉬움 사이에서 미묘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 못한 일들이 생각나고, 자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뭔가를 결심해 대대적인 일을 벌이기도 한다.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고, 집 안에서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을 화끈하게 버리며, 가족과 동료에게 친절하겠다는 맹세도 한다.

    무엇보다 늦은 밤까지 즐겼던 ‘치맥’(치킨 안주에 맥주)을 잠시 미뤄두고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작으나마 선물을 하려는 이가 많아진다. 물질이 곧 마음이랄 수야 없겠지만 마음만의 선물이라는 말은 사실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는 타인의 배려, 감사, 존경, 축하, 사과, 공유 같은 감정을 100% 그대로 느낄 마법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도 제대로 대화하지 않으면 속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첫째 대화를 들 수 있지만, 선물도 아주 인상적인 방법이다. 포장지에 싸인 선물은 누군가의 감정을 담은 상징이며, 그것을 선택하고 준비하는 과정의 마음까지 섬세히 전달되는 커뮤니케이션의 총체다.

    선물의 경우 가격이 절대 문제되지 않는다는 점은 백번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좋은 선물이란 받는 사람의 필요나 기호에 얼마나 부합하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드러내면 된다. 그럴 때 선물은 서로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매듭처럼 꼬인 일을 부드럽게 풀어주며, 심지어 숨겨온 진심을 고백하는 메신저 구실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선물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곤 하지만, 어떤 물건이든 다 의미를 전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다 통용되는 절대적인 선물 리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타인에게 좋은 의미를 전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상대와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송년에 선물할 상대로 먼저 떠올리면 좋을 사람은 함께 일하는 동료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하직원이나 상사, 혹은 사무실을 말끔히 청소해주는 분일 수도 있다. 올 한 해 중요한 사업을 함께 일군 비즈니스 파트너나 무리 없이 자금이 집행되도록 신경 써준 자금관리팀원이 될 수도 있겠다. 한 해 동안 나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움을 줬는지를 생각하면서 작으나마 정성이 담긴 선물을 준비하는 건 사실 꽤 괜찮은 투자다.



    선물 주고받으며 상대와 소통

    상대가 1년 동안 한 말을 곰곰이 되새기다 보면 선물 종류에 대한 실마리가 어느 정도 잡힌다. 지나치게 비싸지 않으면서도 사려 깊은 선물은 상대 기분을 한 달쯤 상승하게 만들 것이다. 흔히 화려한 컬러의 넥타이, 로고가 커다랗게 박힌 벨트와 지갑을 떠올리겠지만 올해만큼은 색다른 시도를 해보길 바란다. 정장을 주로 입는 사람에겐 오히려 캐주얼을 입을 때 필요한 부담스럽지 않은 시계를 선물하면 좋고, 맞춤복을 즐겨 입는 사람에겐 근대 영국 신사의 흔적이 밴 서스펜더도 의외로 매력적인 선물이 될 것이다. 어떤 옷에 매야 할지 모를 정도로 부담스러운 화려한 핑크나 오렌지 계열 타이보다 12월 하늘 같은 그레이나 영원한 스테디셀러인 네이비 컬러 타이가 오래도록 좋아할 만한 실용적인 선물이다.

    그렇게 사회적 위신을 위한 의무를 다하고 좀 홀가분해지면 정말 중요한 사람에게 줄 선물에 집중할 수 있다. 대화가 줄어든 가족, 티격태격하는 친구, 지지고 볶는 연인, 새삼스레 고마운 배우자, 짝사랑 상대, 헤어졌지만 여전히 주변을 맴도는 상대…. 이 경우 마음과 감동이 동시에 담긴 선물 외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도 필요하기 때문에 준비가 더 중요해진다.

    새것만 고집할 필요는 없어

    작아도 사랑 듬뿍 마음의 메신저
    물론 이런 상황에 대비해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오가는 선물이 있긴 하다.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상품권, 얼굴의 반을 덮는 선글라스, 로고가 디자인의 전부인 가방, 절대 사용하지 않는 기묘한 향수, 쥐는 느낌은 나쁜데 브랜드는 유명한 펜이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신제품을 소모하도록 강요받는, 그토록 숭배하던 유행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짧다.

    남자에게 선물한다면, 품위와 절제라는 미덕을 모두 가지면서 남자에게 허용되는 유일한 보석인 커프링크스가 좋을 것이다. 19세기에 등장한 커프링크스는 정장이나 턱시도 같은 격식 있는 의상에 주로 갖추던 액세서리였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손목 뒤편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과시하는 프렌치 커프스(소맷부리가 이중으로 접히는 커프스를 가진 셔츠)야말로 남자의 손을 돋보이게 하는 정교하고 매력적인 소품이다. 특히 광택이 나지 않는 은 소재 커프링크스는 단아한 신사의 상징이다. 여성에게 섹시함을 더해주는 소품처럼 커프링크스는 남자의 매력을 더한다.

    키를 좀 더 크게 보이게 해줄 차콜그레이 스리피스 슈트, 한 번 사두면 10년은 거뜬할 것 같은 캐시미어 타이, 1930년대 의사가 들고 다니던 왕진가방 모양을 닮은 마호가니 컬러의 가죽 브리프케이스, 그리고 크롬으로 만든 스페인제 연필깎이도 필자가 생각하는 멋진 선물 옵션이다.

    너무 새것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 내가 직접 쓰고 함께 세월을 보낸 어떤 물건, 상대만큼 나이를 먹은 빈티지 물건도 있다. 언제 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초침 소리가 5m 밖에서도 탁탁 청명하게 들리는 빈티지 오토매틱 시계, 근대 귀부인이 연미복을 입은 파트너 옆에서 들었을 게 분명한 가죽 클러치 백, 드라마틱한 느낌을 선사하는 모래시계, 그리고 누군가의 나이와 같은 빈티지 레드와인. 새로 장만해 길들이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하는 선물 대신, 이들은 받는 즉시 우리 삶의 영역으로 들어와 오래된 친구가 돼줄 것이다. 조금이라도 좋은 제품을 착한 가격에 구매하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겠지만, 기억은 오래갈 테고 그렇게 쓴 돈은 결코 허망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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