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중개업소에 월세 매물을 알리는 시세표만 잔뜩 붙어 있다.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 방법이다. 전세제도가 일반화한 것은 1960년대 말~70년대 초 도시화와 이농현상으로 주택 수요가 급증하면서부터다. 당시 집을 빌리는 사람은 논 등을 팔아 마련한 목돈으로 매달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보다 일시에 전셋값을 내는 게 더 유리했다. 집주인 처지에서도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금리가 연 10% 이상인 고금리 시대였던 만큼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반(半)월세 혹은 월세로 급속히 전환되면서 전세제도에 균열이 생겼다.
반월세 또는 월세 전환의 일차적 이유는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 생각하면 사람들은 전세를 끼고서라도 주택 투자를 늘릴 것이다. 반대로 가격이 오를 것 같지 않으면 ‘투자와 소유’보다 ‘사용과 거주’ 관점에서 주택을 바라볼 것이다.
부동산 자산 달라진 패러다임
집주인 처지에선 가격이 오르지 않는 마당에 세금까지 내야 한다면, 그야말로 주택은 애물단지다. 따라서 주택이라는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수요자의 ‘사용과 거주’ 개념에 상응하는 이용료(임대료)를 받는 게 현실적이다. 주택은 은행 예금에 비해 리스크가 있는 자산이므로 은행 금리 이상의 임대료가 형성된다. 이런 현상이 주택시장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저성장 추세가 구조화되면서 자산시장에서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저변에선 강력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산에 대한 평가 패러다임이 달라진 것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의 가치는 크게 자산가치, 수익가치, 성장가치로 나눌 수 있다. 자산가치는 이미 벌어놓은 돈을 의미한다. 주식으로 얘기하면, 그동안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놓은 부동산이나 예금 같은 현금성 자산을 가리킨다. 수익가치는 현재 벌어들이는 돈이다. 부동산은 월세, 기업은 현금흐름이 이에 해당한다. 성장가치는 미래가치다. 미래에 얼마나 돈을 많이 벌 것인지, 가격이 더 오를 것인지를 따진다.
성장가치가 부각되는 시점은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이 일어나는 때다. 흔히 버블 시대는 ‘성장의 꿈’을 꾸는 시대였다. 자동차, 철도, 인터넷 등 새로운 혁신은 투자자가 성장가치에 대한 프리미엄을 지불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골디록스 경제도 투자자로 하여금 새로운 성장에 대한 꿈을 꾸게 했다. 골디록스는 ‘골디록스와 곰 세 마리’라는 영국 전래동화 속 주인공인 금발 소녀의 이름이다. 골디록스는 동화에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먹기에 적당한 수프’를 먹는다. 여기서 유래한 골디록스 경제란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이 경제가 성장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통상 경제가 성장하면 물가는 오르게 마련이다.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상태, 즉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자산시장엔 큰 호재였다. 여기에 중국을 필두로 한 브릭스 국가의 성장 스토리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꿈이 영글었다.
역사적으로 자산시장에 최선인 경제구조는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과 저금리’고, 최악의 구조는 ‘디플레이션과 최악의 부채가 만나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골디록스로 상징되던 최선의 경제구조가 마감되는 변곡점이었다. 그 후부터 아직까지도 세계경제는 디플레이션과 부채를 더 걱정한다.
수익가치가 가치평가 중심
당연한 얘기지만 성장 시대에는 성장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국내 주식시장을 예로 들면, 중국의 성장 스토리에 맞물려 중국 관련 수혜주,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등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성장에 대한 꿈이 사라지면 사람은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 기준은 과거와 현재다. 과거에 벌어놓은 돈을 따지고, 현재 얼마를 버는지를 묻는다. 미래는 불확실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과정에서 자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특히 현재 얼마의 돈을 버는지 혹은 돈을 벌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현금만큼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수익가치가 부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차원에서 인컴형 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배경이다.
‘인컴(income)’의 사전적 의미는 ‘소득, 수입’이다. 인컴이란 단어는 ‘자신이 일한 대가로 벌거나 받는 돈’이란 뜻을 내포한다. 인컴과 자산이란 단어가 만난 인컴형 자산은 사람이 아닌 ‘자산’이 벌어들이는 돈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산이 돈을 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먼저 부동산에서는 월세가 대표적이다. 앞으로는 주택가치를 평가할 때 반드시 월세 전환 시 수익률을 따져봐야 한다. 만일 은행 예금이나 채권과 비교해 낮다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고평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주택도 현금흐름 관점에서 다른 자산과 비교해 그 가치를 평가해야 하는 시대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주택시장에서 중대형 아파트의 약세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될 것이다.
월세 수익률은 주택을 향후 은퇴자산으로 활용할 때도 유용한 지표가 된다. 주택 크기나 가격을 줄여가는 다운사이징 과정에서 보유 주택에서 나오는 월세를 생활비 재원으로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에서는 배당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배당금을 꾸준히 주는 기업은 성숙기에 접어든 경우가 많다. 이렇게 배당금을 꾸준히 지급한다는 것은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많거나 현재도 돈을 잘 번다는 얘기다. 배당주는 굳이 국내에만 국한해 바라볼 필요가 없다. 글로벌 차원으로 시야를 확대해 글로벌 배당주 펀드나 인컴형 펀드 같은 상품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면 분산투자와 배당투자의 효과를 동시에 노릴 수 있다.
배당금을 잘 주지 않거나 액수가 적어도 현금흐름이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 또한 한 방법이다.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기업이란 실체의 일부를 소유하는 것과 같다. 기업도 하나의 자산이므로, 현금흐름을 꾸준히 창출하는 기업은 크게 보면 인컴형 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성장과 꿈의 시대가 가고 현실 시대가 왔다. 현실 시대에는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수익을 내는 자산이 대접받는다. 다시 사람들이 성장과 꿈에 대해 논할 시기가 언제일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최근 몇 년간 수익가치가 가치평가의 중심이었고, 이런 흐름이 상당 기간 이어지리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