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수도 헬싱키 서북쪽 20km에 위치한 에스푸 시. 우리나라로 치면 수도 서울과 가까운 경기 성남시 분당 신도시쯤 되는 위치에 북유럽 최고의 혁신 클러스터인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가 있다. 넓은 대지에 들어선 건물 29개 동에 정보기술(IT) 분야 글로벌 기업 800여 개, 국가 연구소, 대학, 벤처 등이 입주해 산학연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오타니에미는 핀란드 내 20여 개 산학연 클러스터 가운데 대표 클러스터로, 핀란드 연구개발(R·D) 투자의 50%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핀란드만이 아니다. 바이킹의 나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북서쪽에 위치한 시스타 사이언스시티 또한 IT 분야 중심의 산학연 클러스터로, 클러스터 내 종사자만 3만여 명에 이른다. 특히 통신장비 분야와 관련한 특허 기술만 350여 개나 개발했다.
경쟁력 있는 산업 선택 집중 육성
흔히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국가라고 하면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이상의 부유한 복지국가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그 부강함의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국가 경쟁력 지표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인구수만 봐도 핀란드 500만 명, 스웨덴 900만 명 정도로 우리나라 서울시 인구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2011년 프랑스 인시아드(INSEAD·유럽경영대학원)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지수 2011에 따르면,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는 스위스에 이어 각각 세계 2, 5위를 차지했다(표 참조). 즉, 혁신을 지속적인 부 창출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6위에 머물렀지만 같은 조사에서 발표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비율은 이스라엘, 스웨덴, 핀란드, 일본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세계 최상위권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혁신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과거 북유럽국가의 고투자, 저성과를 비판하던 ‘스웨덴의 역설(Swedish Paradox)’ 상황을 우리가 맞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글로벌 혁신지수 상위 국가들은 고스란히 R·D 산학협력 수준 지표에서도 상위권에 올랐다는 점이다. 결국 국가 혁신 동력은 양이 아닌 질에서 나오며, 이는 곧 국가 기술혁신 시스템의 핵심인 산학연 협력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즉 북유럽 강소국의 성장에는 경쟁력 있는 산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선택이 필수불가결한 전략이었으며, 산학연 클러스터는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그들의 맞춤형 전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핀란드의 오타니에미, 스웨덴의 시스타 산학연 클러스터가 성공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첫째, 물리적 인접성을 활용해 산학연의 건전 생태계를 조성했다는 점이다. 스웨덴 정부가 산학연 클러스터 조성에 집중하는 목적은 산업체, 대학, 연구기관, 정부 간 네트워킹을 원활히 해 신규 아이디어와 신사업 창출을 유도하는 데 있다. 가까운 곳에서 설비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정부나 기업의 프로젝트에 다양한 출신의 구성원이 포함된다. 대부분 발주자와 수행자의 폐쇄적 관계에서 R·D가 이뤄지는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문화와 달리, 아이디어와 관심사로 엮어지는 개방형 프로젝트가 흔하다. 연구원, 교수, 학생, 기업가 누구든 자유롭게 만나 정보를 교환한다. 이를 위해 포럼, 콘퍼런스 같은 개방형 커뮤니티와 건물마다 갖춰진 개방형 공간을 적극 활용한다. 오타니에미의 이노폴리스, 시스타의 일렉턴 시설이 바로 그 예다. 이러한 개방형 건전 생태계 조성 효과는 클러스터 내 수백 개 창업기업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둘째, 훌륭한 하이테크 인력의 선순환 체계가 구축돼 있다는 점이다. 두 나라의 산학연 클러스터는 지역 거점이 되는 종합대학을 포함한다. 오타니에미는 알토대 경영·경제, 디자인·예술, 공학 등 단과대학이 포진해 있으며, 시스타의 경우 스웨덴 왕립공대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산업 변화에 따라 학과 간, 학제 간 융합이 신속히 이뤄진다.
인프라는 국가 및 지역에서, 인적자원은 대학에서 풍부하게 제공하다 보니, 기업이 해당 클러스터에 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방에 특정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고자 할 때 기업과 기관의 희생을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그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유럽인은 한 직장에 5년 이상 머무르면 “왜 한곳에만 있느냐”고 할 정도로 이직이나 전업에 매우 관대한 점, 공동 가치와 성과가 개인 욕심보다 우선시되는 성향을 지녔다는 점도 인력 간 교류와 협력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프레임보다 콘텐츠 배워야
셋째, 북유럽인은 혁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장기적’이며 임무 분배도 명확하다는 점이다. 산학연을 통해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혁신 혹은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수 있는 기술과 사업을 찾는 데 주력한다. 일반적으로 산학연 협력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산업계의 현실적 니즈와 학계의 기초연구 간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간자인 ‘연’의 구실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핀란드의 VTT(국가기술연구센터) 같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은 대학과 벤처기업 등 소규모 연구집단의 기술과 정보 허브로서 대기업과의 소통에서 창구 임무를 수행한다. VTT는 유럽 최대 규모의 출연연인 데다, 전체 연구인력 3200여 명 가운데 2200여 명이 오타니에미에 상주한다는 점만 봐도 이를 위해 얼마나 적극적인 활약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북유럽 3개국(핀란드, 스웨덴, 덴마크)의 경제를 분석하면서, 과거 큰 정부 중심의 복지강국에서 이제는 실용적 관점의 작은 정부와 자율경제 체제를 적절히 활용하는 다음 세대의 ‘슈퍼모델’이 됐다고 평가했다. 과거 노무현, 이명박 정권 때도 북유럽 벤치마킹 붐이 일면서 1년에 200개 이상의 한국 기관에서 방문 의뢰가 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는 오타니에미 실무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의 발전을 위해 남의 장점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프레임(형태)’이 아닌 ‘콘텐츠(내용)’를 배워야 한다. 그들의 모양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배워 와야 한다. 북유럽 산학연 클러스터와 유사한 형태의 지역 클러스터는 국내에도 여러 개 있으며, 신규 조성을 위한 시도 또한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어떤 구조를 갖춰야 하는지가 아닌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의 문제다.
핀란드만이 아니다. 바이킹의 나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북서쪽에 위치한 시스타 사이언스시티 또한 IT 분야 중심의 산학연 클러스터로, 클러스터 내 종사자만 3만여 명에 이른다. 특히 통신장비 분야와 관련한 특허 기술만 350여 개나 개발했다.
경쟁력 있는 산업 선택 집중 육성
핀란드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의 알토대 공과대 전경.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6위에 머물렀지만 같은 조사에서 발표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비율은 이스라엘, 스웨덴, 핀란드, 일본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세계 최상위권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혁신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과거 북유럽국가의 고투자, 저성과를 비판하던 ‘스웨덴의 역설(Swedish Paradox)’ 상황을 우리가 맞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글로벌 혁신지수 상위 국가들은 고스란히 R·D 산학협력 수준 지표에서도 상위권에 올랐다는 점이다. 결국 국가 혁신 동력은 양이 아닌 질에서 나오며, 이는 곧 국가 기술혁신 시스템의 핵심인 산학연 협력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즉 북유럽 강소국의 성장에는 경쟁력 있는 산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선택이 필수불가결한 전략이었으며, 산학연 클러스터는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그들의 맞춤형 전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핀란드의 오타니에미, 스웨덴의 시스타 산학연 클러스터가 성공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첫째, 물리적 인접성을 활용해 산학연의 건전 생태계를 조성했다는 점이다. 스웨덴 정부가 산학연 클러스터 조성에 집중하는 목적은 산업체, 대학, 연구기관, 정부 간 네트워킹을 원활히 해 신규 아이디어와 신사업 창출을 유도하는 데 있다. 가까운 곳에서 설비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정부나 기업의 프로젝트에 다양한 출신의 구성원이 포함된다. 대부분 발주자와 수행자의 폐쇄적 관계에서 R·D가 이뤄지는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문화와 달리, 아이디어와 관심사로 엮어지는 개방형 프로젝트가 흔하다. 연구원, 교수, 학생, 기업가 누구든 자유롭게 만나 정보를 교환한다. 이를 위해 포럼, 콘퍼런스 같은 개방형 커뮤니티와 건물마다 갖춰진 개방형 공간을 적극 활용한다. 오타니에미의 이노폴리스, 시스타의 일렉턴 시설이 바로 그 예다. 이러한 개방형 건전 생태계 조성 효과는 클러스터 내 수백 개 창업기업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둘째, 훌륭한 하이테크 인력의 선순환 체계가 구축돼 있다는 점이다. 두 나라의 산학연 클러스터는 지역 거점이 되는 종합대학을 포함한다. 오타니에미는 알토대 경영·경제, 디자인·예술, 공학 등 단과대학이 포진해 있으며, 시스타의 경우 스웨덴 왕립공대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산업 변화에 따라 학과 간, 학제 간 융합이 신속히 이뤄진다.
인프라는 국가 및 지역에서, 인적자원은 대학에서 풍부하게 제공하다 보니, 기업이 해당 클러스터에 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방에 특정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고자 할 때 기업과 기관의 희생을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그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유럽인은 한 직장에 5년 이상 머무르면 “왜 한곳에만 있느냐”고 할 정도로 이직이나 전업에 매우 관대한 점, 공동 가치와 성과가 개인 욕심보다 우선시되는 성향을 지녔다는 점도 인력 간 교류와 협력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프레임보다 콘텐츠 배워야
핀란드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의 벤처센터 이노폴리스(오른쪽).
얼마 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북유럽 3개국(핀란드, 스웨덴, 덴마크)의 경제를 분석하면서, 과거 큰 정부 중심의 복지강국에서 이제는 실용적 관점의 작은 정부와 자율경제 체제를 적절히 활용하는 다음 세대의 ‘슈퍼모델’이 됐다고 평가했다. 과거 노무현, 이명박 정권 때도 북유럽 벤치마킹 붐이 일면서 1년에 200개 이상의 한국 기관에서 방문 의뢰가 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는 오타니에미 실무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의 발전을 위해 남의 장점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프레임(형태)’이 아닌 ‘콘텐츠(내용)’를 배워야 한다. 그들의 모양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배워 와야 한다. 북유럽 산학연 클러스터와 유사한 형태의 지역 클러스터는 국내에도 여러 개 있으며, 신규 조성을 위한 시도 또한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어떤 구조를 갖춰야 하는지가 아닌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