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9

2008.11.04

요란한 기적 소리마저 쇼핑몰이 집어삼켰나

108년 세월의 흔적 간 곳 없고 부속기관 같은 처량한 모습

  •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08-10-27 14:5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요란한 기적 소리마저 쇼핑몰이 집어삼켰나
    오늘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시 한 편 읽어보자. 오랜 풍상 다 겪은 시선으로 이 세상의 낮은 곳을 한없이 응시하는 고요한 목소리의 시인 김사인의 허공장경(虛空藏經)이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를 중퇴한 뒤/ 권투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공사판 막일꾼이 되었다/ 결혼을 하자 더욱 어려워/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떨어먹고 도로 서울로 와/ 다시 공사판/ 급성신부전이라 했다/ 삼남매 장학적금을 해약하고/ 두 달 밀린 외상 쌀값 뒤로/ 무허가 철거장이 날아왔다/ 산으로 가 목을 맸다/ 내려앉을 땅은 없어/ 재 한 줌으로 다시 허공에 뿌려졌다/ 나이 마흔둘.

    이 시 속에 나이 마흔둘 된 사내가 있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게 쓰인 시는 아닌, 더욱이 결코 쉬운 삶을 다룬 시가 아닌 이 시 속의 사내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공사판 전전하다 무허가 철거장 앞에 놓고 자살하여 한 줌 재가 되어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나이 마흔둘. 그 사내의 몸이 하얀 가루가 되어 온갖 망집과 고통과 힘겨움으로부터 이탈하여 허공에 흩날리고 마는 것은 오늘날의 젊은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나이에 이르렀거나 ‘다행히도’ 그 위험천만한 나이를 넘어선 독자들이라면 마흔둘 사내의 짧은 생애가 결코 저 먼 데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나이 마흔둘. 이 사내에게 ‘서울역’이란 무엇일까. 서울역은, 물론 동쪽에 청량리역이 있고 서쪽에 영등포역이 있지만, 그래도 한반도의 중앙이요 모든 삶의 수렴과 확산이 이뤄지는 곳이라면 역시 서울역인데, 이 서울역은 도대체 어떤 공간이 되는 것일까.

    지리와 교통 측면서 서울의 한복판 … 근현대사 주요 사건의 무대



    요란한 기적 소리마저 쇼핑몰이 집어삼켰나
    서울역은 108년의 역사를 살아왔다. 1900년에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일을 보았고, 1905년 남대문역으로 개칭되었다가 1910년에 서울시의 명칭이 한성에서 경성으로 바뀌게 되어 1923년에는 다시 경성역이 되었다. 이즈음에 도쿄제국대학의 쓰카모토 야스시(塚本靖)가 설계한 역사가 1925년 완공되었다. 그 모습은 ‘제국’의 한복판 도쿄의 붉은 벽돌 역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경성역이 지금의 서울역이 된 것은 광복 직후의 일. 1946년에 광복 1주년을 맞아 일제 치하 명칭인 경성부를 서울시로 개칭하는 서울시 헌장이 공포되어 이에 따라 그해 11월1일부터 서울역이 되었다. 옛 역사는 실무적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1988년에 서울역 민자 역사가 준공되었고 2003년에는 고속철도 역사가 완공되었다. 예전에는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모두 서울역에서 출발하였으나 고속철도 시대 이후 그쪽 노선은 용산역 몫이 되었고 지금은 아래로 경부선과 위로 경의선 도라산역까지 뻗어간다.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는 441.7km이고 경의선의 도라산역까지는 55.6km이다.

    이 서울역이 한반도 근현대사의 한복판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서울역이 지리와 교통 면에서 기본적으로 한복판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지난 100여 년 근현대사 주요 장면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그 많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사람들은 분주히 타거나 내렸고, 또 밥을 먹었다.

    요란한 기적 소리마저 쇼핑몰이 집어삼켰나
    이 대도시의 식당들 중에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맛을 자랑하고 또 무슨 주차장 같은 것도 자랑하는 곳이 많은데, 나는 서부간선도로 고척교 부근의 롯데마트 푸드코트와 이 서울 민자역사 내의 푸드코트를 가장 사랑한다. 메뉴도 많고 값도 저렴하지만, 무엇보다 반원형의 창가에 앉아 역 광장과 맞은편 대우빌딩과 연세재단빌딩이 압도하는 남대문로 쪽을 내려다보면, 그제야 서울역에 온 것 같고, 그래서 기이하게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격정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크고 작은 역사가 환골탈태하면서 하나같이 거대한 쇼핑몰이 먼저 압도를 하고 그 다음에야 매표소와 간이의자와 개찰구가 눈에 보이게 한 식이다. 대형 의류쇼핑몰이 압도하는 신촌역사가 그렇고 매머드급 전자상가와 극장이 우선하는 용산역사가 그렇고 대형 쇼핑몰의 보조기구처럼 전락해버린 영등포역사가 그렇고, 한창 공사 중인 청량리역사 또한 그 앞에 설치된 조감도로 보아 애처롭게 연명할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그런 상황의 연속이다.

    서울역 역시 민자역사 공사를 하면서, 1925년에 완공한 오래된 옛 역사를 조금의 아량도 없이 짓눌러버리고, 또 신축한 고속철도 역사를 오른쪽에 슬며시 낄 정도로 압도적인 스케일이 되는 바람에, 서울역이 그 무슨 창대한 쇼핑몰의 부속기관이 되고 말았다.

    푸드코트 창가 자리에선 서울역 옛 정취 느낄 수 있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지난 100여 년 근현대사 동안 누구라도 서울역에 내릴 때면 우선 한강철교 건너면서부터 속도가 확실히 줄어들고 남영역 지나면서 끝도 없는 레일의 행렬이 좌우로 펼쳐지고, 이윽고 기차가 쇳소리를 내며 멈추고 나면 그리 급할 것도 없는 걸음을 재촉하여 광장으로 나가서, 1977년에 완공된 23층 높이에 연면적 4만 평이 넘는 맞은편의 대우빌딩 바라보며 담배 한 대 피워 물어야, 그제야 서울역에 도착한 공간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었건만, 이제는 고속철도 타고 쑤욱 들어와서 어떤 식으로든 쇼핑몰로 이어지게 되는 길들을 따라 숨가쁘게 걸어야만 하는 셈이 되었다.

    내가 서울역의 푸드코트를 사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넓디넓은 서울역사 안에 근사한 중국집, 일식집이며 요란한 패스트푸드점이 많지만, 나는 언제나 반원형의 넓은 창가에 앉아, 그리 맛있어 보이지 않는 비빔밥 시켜놓고, 누구 하나 눈총 주지 않는 그 자리에 앉아서 광장이며 그 너머를 한없이 바라본다. 서울역을 서울역답게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자리가 그곳이다. 그곳에서 가만히, 함민복의 시 서울역 그 식당과 나이 마흔둘의 사내를 생각한다.

    요란한 기적 소리마저 쇼핑몰이 집어삼켰나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른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