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1

2008.06.24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의 경쟁력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www.gong.co.kr

    입력2008-06-16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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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의 경쟁력

    <b>미래는 핀란드에 있다</b> 리처드 D. 루이스 지음/ 박미준 옮김/ 살림 펴냄/ 327쪽/ 1만3000원

    어느 머나먼 땅.’ 리처드 D. 루이스의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는 하나의 은유적인 구절로 시작된다. 핀란드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까마득히 먼 나라다. 하지만 조금만 이 나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소련에 인접하면서도 독립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노키아의 모국으로서 세계 최고의 국가경쟁력을 지닌 나라로 손꼽히는 핀란드에 호기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는 그 비결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봐야 한다.

    책 속에는 다른 나라에서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에피소드가 몇 가지 소개돼 있다. 그중 하나는 핀란드의 닷컴 백만장자인 야코 륏솔라가 속도 위반한 이야기다. 핀란드 경찰이 그에게 부과한 속도위반 티켓은 무려 6000만원짜리였다.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속도 위반의 대가로 지불해야 할 벌금이 6000만원인 나라를! 왜 이런 액수가 나왔는가 하면, 핀란드는 소득 규모에 비례해 벌금 액수가 달라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핀란드어는 우랄알타이어 계통이기 때문에 영어와 언어구조가 아주 다르다. 당연히 그들은 언어문제 때문에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핀란드인들은 영어 소통이 원활한 편이다. ‘왜 핀란드인은 영어를 잘하는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핀란드인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에 집착하며, 성취를 굳건히 하기 위해 한 작가가 ‘핀란드인의 세계 일류성’이라고 부른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핀란드 정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른바 ‘무지개 내각’을 구성해 세계 일류성을 몸소 증명해왔다. 무지개 내각이란 1990년대 리포넨이 처음 구성한 내각으로 좌익 성향에서 우익 성향까지 모든 정치적 스펙트럼을 포괄하며, 모든 정당이 협력해 산업계, 학계, 정부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각을 뜻한다.”

    핀란드는 소련의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지혜로운 처신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의문점이다. 핀란드는 얼마든지 소련이 직접 지배할 수 있는 나라였다. 왜냐하면 핀란드는 650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으며, 1808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맺어진 1809년의 하미나 평화조약에 의해 1917년까지 다시 108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직접 지배가 아니라 대공국으로서 핀란드인의 존엄성을 보장해주었기는 했지만 말이다.



    1894년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의사당 앞에 세워진 차르 알렉산더 2세의 동상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처럼 핀란드인은 자신들을 지배했던 러시아의 국왕 동상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마침내 핀란드인들은 독립의 길로 나서게 된다. 당시의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핀란드 독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 러시아군 대령이자 지휘관으로 폴란드에 주둔하고 있었던 만네르헤임이다. 그는 독일군의 지원하에 러시아군을 격퇴하고 1918년 12월부터 1919년 여름 핀란드 초대 대통령인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가 집권할 때까지 실권을 유지한다. 핀란드 출신인 만네르헤임은 적국의 군인 신분으로 핀란드 건국에 기여하게 된 셈이다. 그는 오늘날까지 핀란드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다.

    1939년 11월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핀란드는 영토의 10%를 소련에 주고 말았지만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과 같이 소련의 직접 지배라는 최악의 상황만은 피할 수 있었다. 핀란드는 이후에도 소련에 대해 조심스런 노선을 견지해 끝까지 독립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로 이뤄지는 북유럽 4개국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 스웨덴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힘과 경제력을 갖고 있었기에 나머지 3개국은 스웨덴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에는 핀란드가 잘나가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 특히 스웨덴이 핀란드에 냉담한 편이다.

    냉전이 한창 진행되던 1956년, 소련은 50년간 조차했던 헬싱키 남서쪽 30km에 자리한 포르크칼라의 기지를 순순히 핀란드에 양도하고 떠났다. 책에는 이때의 사진이 큼직하게 실려 있다. 소련의 기지 반환은 그만큼 핀란드인들이 냉전하에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음을 뜻한다. 미국 중국 일본 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우리로서는 그들의 외교노선에서 훈수를 받아야 할 듯싶다.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핀란드인들이 극지방에서 살아가는 탓인지 고독과 개인주의를 신봉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이 몰리는 상점에서조차 신체 접촉을 싫어한다. 핀란드인들은 자신들의 ‘공간 거품’, 즉 개인적 영역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다. 예를 들면 버스를 기다릴 때도 사람과 사람의 간격이 2m나 된다는 것이다.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 이 책을 통해 머나먼 핀란드로 여행 떠나는 소중한 기회를 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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