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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2008 프로야구에 불났다

“우리는 야구장에 놀러 간다” 관중 모으는 스포테인먼트의 힘

베스트 관중 찾기, 키스 타임, 불꽃축제 등 구단마다 각종 이벤트로 유혹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우리는 야구장에 놀러 간다” 관중 모으는 스포테인먼트의 힘

“우리는 야구장에 놀러 간다” 관중 모으는 스포테인먼트의 힘

롯데가 한화를 꺾고 6연승을 달린 5월27일, 부산 사직야구장은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가르시아가 역전 3점 홈런을 치자 환호성을 지르는 롯데팬.

스포츠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시장규모가 커지고, 분야를 달리하는 경쟁상대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스포츠는 타 부문과의 컨버전스(융합)를 통해 대응해가고 있다. 스포츠와 비즈니스가 만나기도 하고, 문화와 만나기도 한다.

스포츠(Sports)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의 만남 역시 스포츠 이상의 다양함을 요구하는 관중의 욕구에 스포츠가 내놓은 하나의 대답이다. 단순히 운동경기 관람에 그치는 게 아니라 볼거리와 먹을거리, 놀거리가 제공돼 관중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킨다. 전문가들은 이를 스포테인먼트(Spotainment)라 이름 붙였다.

피자에서 맥주까지 … 먹을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 준비물

엔터테인먼트의 핵심은 즐기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철저히 즐긴다는 측면에서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Abraham H. Maslow)가 내세운 ‘욕구 5단계설’ 중 최고 수준인 ‘자아실현의 욕구’로 볼 수도 있다. 스포테인먼트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해 관중의 이런 욕구를 충족해나간다.

5월27일 오후 4시10분. 아직 표를 판매하기 전이건만 매표소 주위는 삼삼오오 짝지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이를 목말 태워 오는 아버지, 손을 꼭 잡은 채 얼굴을 마주 보는 연인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온 듯한 교복 차림의 고등학생 등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모두 야구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서울 잠실야구장에 발을 내디뎠다.



야구장에는 야구 외에도 놀거리, 먹을거리, 볼거리가 많다. 야구가 무엇인지 몰라도 올 수 있게 하는 힘, 그게 바로 스포테인먼트의 힘이다. 이지혜(23·여) 씨는 이날 여자친구 3명과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TV에서 보기만 했지 실제로 야구장을 오기는 처음이다. “야구를 잘 모르지만 응원만 해도 재미있을 거 같았어요. 일부러 휴가를 내고 친구들과 천안에서 올라왔어요.”

여자들끼리 응원 오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응원 막대풍선에 바람을 넣어 친구들끼리 때리며 노는 것만으로도 이미 야구장에 온 재미를 느꼈으리라. 이씨는 응원가에 맞춰 춤을 추고 소리 지를 때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말했다.

먹을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김밥에서부터 피자까지 없는 게 없다. 각종 패스트푸드점에서는 햄버거, 치킨, 콜라 등을 한 묶음으로 할인된 가격에 팔고 있다. 고소한 치킨 냄새는 절로 맥주까지 사게 하는 묘한 힘을 지녔다. 경기장 안까지 맥주를 사려고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편의점 역시 계산을 하느라 종업원들은 쉴 틈이 없다. 야구장에서 통닭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광경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프로야구 각 구단들도 관중이 바라는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놓치지 않는다. 다양한 이벤트로 야구 이외의 볼거리를 제공할 뿐 아니라 먹을거리와 살거리 그리고 쾌적한 야구장 시설을 갖춤으로써 고객의 니즈(needs·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있다. LG의 베스트 관중 찾기, 두산의 전지훈련참관권, SK의 불꽃축제와 공연 이벤트, 롯데의 올드 유니폼 행사 등 프로야구 8개 구단 모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우리는 야구장에 놀러 간다” 관중 모으는 스포테인먼트의 힘

연예인들은 야구장에서 시구뿐만 아니라 즉석 공연도 펼친다. 가수 춘자 씨의 공연팀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

최근 각광받는 엔터테인먼트 요소는 ‘사랑’이다. 스포츠를 통해 더욱 사랑을 다지는 것이다. 4회 초가 끝나자 일명 ‘키스 타임’이 시작된다. 카메라에 잡힌 커플들의 모습이 전광판에 비춰지면 그들은 키스를 하고 상품을 받는 식이다. “예전 같으면 쑥스러워하고 그럴 텐데 요즘은 거리낌이 없어요.” LG스포츠 마케팅팀 안광영 과장의 말이다. 젊은 연인들뿐 아니라 간혹 중년부부, 심지어 동성(同性)이나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카메라가 비추는 등의 짓궂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전광판 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자 순간 깜짝 놀라면서도 이내 키스를 감행하는 남자친구. 관중은 휘파람을 불며 호응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드는 듯하다. 6년간 사귄 배대환(32), 김희정(26) 커플은 “우리도 저런 이벤트에 참여하면 좋을 텐데…. 정말 야구장이 연인들에겐 최고의 장소”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연인 위한 이벤트 다채 “쌍쌍은 좋아”

“우리는 야구장에 놀러 간다” 관중 모으는 스포테인먼트의 힘

5월27일 LG와 두산의 잠실 경기에서 4회 초 두산 공격이 끝나자 ‘키스 타임’이 시작됐다. ‘키스 타임’은 최고의 인기 이벤트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삼성전자 PAVV가 공동으로 마련한 ‘사랑의 시구 릴레이’ 이벤트 역시 호응이 뜨겁다. 5월21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삼성과 LG 경기에 앞서 이벤트에 응모한 배명수(27) 씨는 시구를 하면서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배씨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자친구에게 고백하고 싶었다”며 “좋아하는 야구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까지 나눌 수 있는 이런 행사가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야구장만큼 연인들이 데이트하기에 좋은 장소는 없다. 만원 관중이 들어찬 경우가 아니라면 넓은 공간을 둘만의 추억을 쌓는 용도로 이용할 수도 있다. 빈자리가 보이는 외야석. 해가 저물어 날씨가 추워지자 남자친구가 웃옷을 벗어 여자친구에게 덮어주는 모습, 이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군인들의 모습이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스포테인먼트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되고는 있지만 실제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서비스 제공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1990년대 후반부터 있었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김종 교수는 “잠재고객을 확보해 프로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목적으로 일찍부터 스포테인먼트가 도입됐다”고 설명한다.

스포츠가 독립적인 산업에서 벗어나 엔터테인먼트라는 문화적 요소와 융합됨으로써 3만명이 넘는 인원이 3~4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거대 관람스포츠로 성장하게 됐다. 김 교수는 “스포테인먼트는 기업에게도 프로스포츠가 적자만 내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테인먼트 아직은 걸음마 단계 … 장기투자 지속돼야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스포테인먼트는 걸음마 단계라는 얘기가 많다. 용어 자체가 생소할 뿐 아니라 단발성 행사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산 베어스 운영홍보부문 조성일 차장은 “스포테인먼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단들의 장기투자가 중요하다”며 “승부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관중문화의 정착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쟁상대에 대한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LG스포츠 홍보팀 정택기 대리는 “8000원이라는 동일한 돈을 내고 즐길 수 있는 영화, 연극 등 다른 문화적 요소가 프로야구의 진정한 경쟁상대다”라고 말했다.

밤 10시20분. 경기는 끝났지만 스포테인먼트는 경기장 밖에도 있다. 한쪽에는 경기장을 나오는 선수를 보기 위해 관중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반대편인 매표소 앞에서는 술판이 벌어졌다. 승리한 팬들은 승리의 기쁨을, 패배한 팬들은 분노를 삭이며 술을 마신다. 여기서도 화제는 야구다. 승리한 쪽도 패배한 쪽도 술을 마시며 얘기하다 어느새 하나가 된다. 이들이 얼마만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야구 표 하나로 일석이조의 효과는 충분히 누렸다는 점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야구장에서 ‘광팬’이 사는 법

경기마다 개근은 기본 선수 일거수일투족 캠코더에 담아


“우리는 야구장에 놀러 간다” 관중 모으는 스포테인먼트의 힘

LG-두산 잠실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안준모 씨(오른쪽).

오후 4시59분. 5시까지는 1분도 채 남지 않았다. 아직 퇴근시간이 안 됐지만 연신 시계를 훔쳐보는 사람들이 있다. 오후 5시. 빠르게 이들은 짐을 챙긴다. 집, 직장, 학교, 심지어 관공서에서까지.

들뜬 마음을 가누지 못한 채 이들이 달려가는 곳은 서울지역의 라이벌 두산과 LG가 맞붙는 서울 잠실야구장. 이들은 이른바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야생야사(野生野死)다. 야구 좋아하는 것으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

안준모(33) 씨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낮에는 메트라이프생명보험㈜의 변액보험 판매관리사로 일하지만, LG의 잠실 경기가 있을 때면 LG트윈스프로야구단 아나운서로 변신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 손을 잡고 프로야구를 보러 다닌 그는 야구가 너무 좋은 나머지 직장을 다니면서도 야구와의 인연을 잇고 있다.LG를 위한 방송인 만큼 편파방송은 기본이다. 이 때문에 다른 팀 팬들과 실랑이가 벌어져 시비가 붙은 적도 많다. 그래도 야구방송이 주는 매력은 마약과도 같다고 한다.

“이란, 카타르에서도 제 방송을 듣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중계를 하면서 선수나 감독, 구단에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좋고요. 일반 팬의 입장에서는 하기 어렵잖아요.”

이연수(45·여) 씨는 불혹의 나이도 잊은 열혈 두산팬이다. 펜스 가까이 붙어 캠코더로 선수들이 공을 던지고 달리는 모습 하나하나를 빠뜨리지 않고 담아낸다. 10대 소녀처럼 얼굴은 호기심으로 붉게 상기돼 있다.이씨는 이렇게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들을 네이버 카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려놓는다. 평범한 주부지만 취미가 야구 구경인 그를 가족도 말릴 수가 없다. “남편도 이젠 저를 못 말려요. 고등학교, 대학생 애들도 저랑 같이 야구 보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주변 사람들에게서 ‘아이들 태교를 야구장에서 했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 이씨는 캠코더로 촬영하고 있을 때 그의 닉네임인 ‘야구 부인’을 확인하고, 경기장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놀라우면서도 반갑다고 한다.

공익근무요원 황장연(24) 씨. 이 사람은 도대체 앉아 있지를 못한다. 덩치도 큰데 서서 몸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조금은 부담스럽다. 그는 개의치 않고, 혼자 일어나서 ‘무적 LG’를 외친다. “저는 야구경기 내내 서서 응원을 해요. 왜 그러느냐고요? 앉아 있으면 불안하거든요.”

황씨는 큰 소리를 외칠 때와는 다르게 기자의 질문에 금세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순박하다. 대화 중에도 서서 하는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뒷사람의 시야를 방해해서 아웃. 뒤에 홀로 나가서 엉덩이를 흔들며 쉰 목소리로 외친다. 황씨는 오후 5시 공익근무가 끝나면 다른 일을 제쳐두고 LG 경기를 보러 달려온다. 힘든 공익근무 생활도 야구가 있어 외롭지 않다.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은 사람, 갖가지 화려한 분장으로 눈길을 끄는 팬 등 야구장에서는 정말 다양한 모습의 팬들을 만날 수 있다. 주변 사람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이것이 야구 광(狂)팬인 그들이 사는 법이다.




주간동아 2008.06.10 639호 (p34~36)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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