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1

2008.04.15

자유분방 10대들의 뼈아픈 성장통

  • 손주연 자유기고가

    입력2008-04-11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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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분방 10대들의 뼈아픈 성장통
    미국 작가조합 파업이 끝나면서 국내에 방송되는 미국 드라마의 수도 크게 늘었다. 케이블 채널들은 앞다퉈 방영이 중단됐던 작품들의 방송을 시작했으며, 신규 시리즈의 편성도 늘렸다. 몇몇 채널은 미국과 일본 드라마에 식상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을 위해 영국 드라마를 편성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CJ미디어의 한 관계자는 “미국 드라마에 자극받은 영국이 코믹한 장르에 치우쳤던 제작 관행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며 “앞으로 영국 드라마도 조금씩 국내에 소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올해 케이블 채널 등에서 방송된 영국 드라마는 닥터 후 시즌2(FOX TV)와 로빈후드(KBS2) 등이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XTM이 3월7일 첫 방송을 한 ‘스킨스(skins)’다.

    ‘스킨스’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계열 채널인 E4가 자체 제작 드라마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7년 기획, 방송한 작품이다. 영국 브리스톨 지역에 사는 10대 청소년들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까닭에 청소년 드라마임에도 ‘19세 이상 시청가’ 등급을 얻었다. ‘스킨스’는 스토리가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진행된다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매회 90만명 이상을 TV 앞으로 끌어당기며 명실상부 2007년 영국 최고의 히트 드라마가 됐다. E4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방송도 34%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E4는 시즌1이 끝나기 무섭게 시즌2 제작을 확정지었으며, 시즌3도 제작키로 했다. 현재 영국에서는 시즌2가 역시 큰 화제와 인기 속에 방송되고 있다.

    ‘스킨스’의 묘미는 주인공 토니를 연기한 니콜라스 홀트가 한 인터뷰에서 “(이 시리즈가) 모든 10대의 삶을 반영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일들로 느껴진다”고 말한 것처럼, 다소 과장된 것 같지만 그 속에 담긴 리얼리즘을 감지할 수 있어서다. ‘스킨스’ 속 10대들의 일상이란 누가 누구와 잤는지 혹은 잘 수 있을지, 누가 가장 값비싼 것들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더 살 수 있는지에 있지 않다. 섹스와 자위가 머릿속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에겐 좀더 현실적인 고민들이 존재한다. ‘와우’ ‘러블리’를 입에 달고 사는 소녀 캐시가 약물중독과 거식증으로 힘들어하는 이유는 다이어트 중독 때문이 아니라 외로워서라는 것이 좋은 예다. 캐시의 병은 새아빠와 동생에게만 사랑을 쏟는 엄마가 자신도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엄마에게 버림받고, 부모의 이혼으로 방황하며, 현실과 종교적 가르침 사이에서 번뇌하는 이 아이들에게 세상은 더 이상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찬 꽃동산이 아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어른들의 그것처럼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살아가야 할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도, 또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도 아마 알 것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이 뼈아픈 성장통이 어른이 된다고 멈추는 건 아니라는 것을. ‘스킨스’는 먼저 현실에 발을 디디고 꿋꿋하게 서야만 이상도 희망도 꿈꿀 수 있다는 세상의 진리를 담담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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