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1

2008.04.15

농촌 경시 ‘식량대란’ 위협 현실로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04-11 10:2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농촌 경시 ‘식량대란’ 위협 현실로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

    남아도는 쌀 때문에 농림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었다. 농산물의 과잉생산으로 곡물 가격이 너무 낮다고 개발도상국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미국과 유럽이 넘치는 농산물을 덤핑 판매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세계가 ‘식량대란’을 걱정하고 있는 판국이다. 식량대란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들은 ‘식량 보호주의’를 외치며 수출을 기피한다. ‘식량전쟁’이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허튼 얘기만은 아니다. 한국은 특히 식량부족 사태가 닥칠 경우 심각한 상황에 놓인다. 곡물자급률이 28%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쌀이 있기에 그 정도지 쌀을 제외하면 한 자릿수로 떨어진다.

    최근의 식량대란 원인은 중국을 비롯한 국제 식량소비량의 급증에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이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못한 잘못도 따져봐야 한다. 한계산업에다 공산품 등 다른 부문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산업. 우리는 농업을 그렇게 취급해왔지 않은가. 농업의 경시는 농촌 몰락의 원인이자 결과다. 농업의 경시가 농촌의 몰락을 가져왔고, 농촌의 몰락이 다시 농업 경시로 악순환되고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최근 농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나의 결혼 원정기’는 서른여덟 살이 되도록 여자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농촌 노총각들이 짝을 찾아 외국까지 나간다는 얘기다. 이들은 마을에 시집온 우즈베키스탄 색시를 보고 온 할아버지의 권유로 우즈베키스탄으로 신부 찾기 여행을 떠난다. ‘집으로’나 ‘이장과 군수’ 등의 영화도 농촌을 배경으로 한다.

    대부분의 국산 영화들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 ‘도시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눈길을 끈다. 흥행 실적도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를 영화의 새로운 흥행 코드로 봐야 할 것인가. 그러나 그렇게 좋게만 봐줄 수는 없다. 영화 속 농촌은 대개 농촌을 배경으로 할 뿐 농촌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에서 농촌이라는 배경은 농촌이라는 이미지의 소비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인정이 넘치고 구수한 사투리와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곳, 그런 이미지가 소품처럼 필요한 것이다. 거기서 사는 이들은 대개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늘 허둥대고 뭔가 부족해 보인다.



    이건 농촌, 그리고 거기에 사는 이들에 대한 폭력이다. 그 폭력과 조롱을 거두고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에 좀더 경의를 표할 때 식량대란 문제의 해법도 열릴 것이다.



    영화의 창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