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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과나무 심기 강박증

  •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교수·법학

사과나무 심기 강박증

사과나무 심기 강박증
새해 들어서 노무현 대통령이 분주하다. 텔레비전에 출연해 국민을 상대로 대화를 하고, 뉴스 속 인물로도 자주 등장한다. 대통령의 모습이 비춰지는 것에 비례해 새 정책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원포인트 개헌안에 병역제도 개선안도 나온다.

요즘 국민은 정신이 없다. ‘국민건강 투자전략’ ‘주택 부분의 공공부문 역할 강화’ ‘인적자원 활용 2+5전략’ ‘2단계 국가균형 발전대책’…. 무슨 정책이 언제 시행되는지 따라잡기도 힘들다.

임기가 1년 정도 남은 정부가 중장기 계획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노 대통령은 이 정도 비판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정책은 선진 한국의 필수 과제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국민들 생각도 왔다 갔다 한다. 왜 하필 지금, 즉 대선을 앞둔 임기 말에 청사진이 나오는지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지만, 해야 할 일이라면 언제든 해야 한다는 원칙론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정책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헌법적 관점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권력분립 원리에 반하는 위헌적 요소를 지닌다. 권력분립이란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여러 국가기관에 배분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조직 구성의 원리다. 흔히 이 원리는 입법부·집행부·사법부가 상호견제와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시간적 권력분립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관 등의 임기를 정해놓은 것 역시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방책이다.



대한민국 헌법상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최근 그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이 규정은 독재정부의 출현을 막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임기 5년인 대통령은 5년에 걸맞은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헌법에 충실한 임무 수행이다.

무리한 중장기 계획 남발로 차기 정부 구속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가 임기 내내 야당과, 때로는 국민과 불협화음을 낸 것도 바로 여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다음 정부가 들어서도 바꿀 수 없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욕심이 너무 컸던 것이다.

지난해 6월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오를 때 “세금제도는 노무현 정권이 끝나도 안 바뀐다. 바꿀 수 없다”고 역설하던 노 대통령의 말은 현 정부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예다. 지난해 가을 전효숙 전 재판관의 헌법재판소장 임명 사건도 돌이켜보면 다음 정부의 행동을 구속하겠다는 현 정권의 오만에서 비롯됐다. 전효숙 당시 재판관은 임기 6년 중 3년을 남겨두고 있었는데, 그를 재판소장으로 임명할 경우 3년 뒤 그의 재판관 임기가 끝나 다음 정부가 다른 사람을 재판소장에 임명하리라는 걱정이 앞서 무리수를 두었던 것이다.

더 앞으로 가면, 수도 이전 혹은 신행정수도 문제가 나온다. 이 역시 현 정부가 다음 정부를 구속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수도 이전은 대통령선거 공약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추진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입법부가 여야 합의로 법률을 제정했다고 해서 해결될 사안도 아니다. 국민의 의사가 중요한 사안이다.

그럼 5년 단임 대통령은 중장기 계획도 세울 수 없고, 정권 말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국가 미래상을 제시하고 그 계획을 수립, 시행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과제다. 다만 나의 계획, 제도는 나와 생각이 다른 정부가 들어서도 바꿀 수 없도록 만들어놓겠다는 인식이 문제다.

오늘 사과나무를 심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사과나무 밭을 엎어버리고 포도나무 밭을 만드는 것은 지금 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간동아 574호 (p136~136)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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