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4

2007.02.27

인터넷 속도에도 ‘여유의 미학’

  • 입력2007-02-16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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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속도에도 ‘여유의 미학’
    얼마 전 서울에서 온 친구가 집에 잠시 머물렀다. 친구는 인터넷을 사용하더니 “왜 이렇게 느리냐”며 불평했다. 인터넷이 또 느려졌나 싶어 들여다봤더니 평소 속도였다. 새 페이지를 완전히 띄우는 데 10초가량 걸렸다. 지난 연말부터 이 정도 속도로 빨라져 만족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도 친구는 “서울에선 클릭과 동시에 새 페이지가 휙휙 뜬다”며 프랑스의 인터넷 속도를 탓했다. 드라마 한 편 내려받는 데 5분이면 충분하다고도 했다. 인터넷을 많이 쓰는 나로선 부러울 따름이었다.

    지금 프랑스의 인터넷 사정은 3년 전 파리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발전했다. 3년 전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본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드라마 한 편을 내려받으려면 늦은 밤, 다운로드를 실행해놓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많이 쓰지 않는 시간에 그나마 속도가 조금 빨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낮 시간에도 인터넷 속도가 빠를 땐 2시간이면 드라마 한 편을 내려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인터넷이 크게 발전했다. 유럽의 다른 나라로 출장을 많이 다니는데 프랑스만큼 인터넷 속도가 빠른 나라도 없다.

    솔직히 나는 지금 정도의 속도에도 감지덕지한다. 며칠 전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의 얘기를 들은 뒤로는 더욱 그렇다. 탄자니아에 사는 이 친구는 인터넷 사정에 대해 묻자 말도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뉴스를 보려면 제목 하나 클릭해놓고 다른 볼일을 한참 처리한 뒤 모니터를 쳐다본다고 했다. 그래도 뉴스가 완전히 떠 있을까 말까 하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한국에 있는 사람과 바둑을 둘 때면 속도가 느려 늘 ‘시간패(敗)’를 당한다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인터넷 페이지가 휙휙 뜬다는 한국과 뉴스 하나 보는 데도 몇십 분이 걸린다는 탄자니아,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프랑스. 인터넷 속도를 비교해보다 ‘삶의 속도’에 생각이 미쳤다.

    탄자니아에선 사람들이 느긋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한다. 대금을 치르고 일을 맡겨도 언제 그런 계약을 했냐는 듯 함흥차사이기 일쑤여서 복장이 터질 지경이라고 한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프랑스도 한국인의 기준으로는 느려터진 사회다. 관공서에서 5분짜리 업무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두세 시간씩 멍청하게 앉아 기다리고 있노라면 화가 치민다.

    한국은 어떤가. 대부분의 문제가 전화 한 통이면 곧바로 해결된다. 서비스가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큰일난다. 온라인에 불평 한마디만 올라오면 무수한 댓글과 함께 질타를 받기 때문이다.

    빨라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국 사람들의 성격도 점점 더 급해진다는 지적이 있다. 모든 면에서 좀 느려서 불편하지만 그만큼의 ‘삶의 여유’를 누리는 프랑스 사람들과, 여유보다는 빠른 속도가 주는 편리한 삶을 추구하는 한국인들. 어느 쪽의 생활이 더 나은지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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