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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허브’

지능 낮은 딸과 시한부 엄마 여성 관객 눈물샘 터뜨리기

지능 낮은 딸과 시한부 엄마 여성 관객 눈물샘 터뜨리기

지능 낮은 딸과 시한부 엄마 여성 관객 눈물샘 터뜨리기
죽어가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힘겹게 이야기를 잇는다.

“아무것도 니 잘못이 아니야.”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그러자 일곱 살짜리 지능을 가진 딸이 어미의 육신을 흔들며 가냘픈 울음을 삼킨다. “엄마 일어나. 엄마 일어나.”

아, 손수건이 필요하다. 극장에서 휴대용 화장지를 줄 때만 해도 맨송맨송했던 얼굴인데, 할 수 없이 아까 받은 휴지를 사용한다. 녹색의 허브정원 한가운데서 뼛가루가 된 엄마가 환하게 세상 속으로 풀려나간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흰 가루. 자꾸 내 어머니의 것 같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극장에 불이 켜지고 괜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옆에 앉은 남편에게 좀 애교스러워진다. “이 영화 슬프다. 그지?” 그런데 영화과 교수라는 남편은 보송보송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다. “너무 작위적이야. 뻔하잖아.” 한순간 때려주고 싶다. 남자라 불리는 저 가슴 텅 빈 수컷들. 한 지붕 두 소리. 청백 대결전. 해리와 샐리. 그 여자, 그 남자의 영화 관전기.

‘말아톤’ 초원이의 소녀 버전 … 나이는 스무 살 지능은 일곱 살



지능 낮은 딸과 시한부 엄마 여성 관객 눈물샘 터뜨리기
‘말죽거리 잔혹사’나 ‘친구’ 같은 영화들이 조장하는 남성 관객의 퇴행이 이미 어린 나이에 폭력과 권력의 단맛 쓴맛을 모두 알아버린 남성 판타지의 자장 안에 놓여 있다면, 영화 ‘허브’의 여성적 퇴행은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해서 멜로의 당의정에 싸놓았다.

스무 살인데 일곱 살의 지능을 가진 여자. 즉 몸으로는 연애를 할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국민 여동생인 강혜정은 ‘말아톤’에서 조승우가 분한 초원이의 소녀 버전이라 할 만하다. 귀엽다. 즉, 성적인 체취 없이 안전하게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다. 여기에 어머니 이야기를 집어넣는다. 그것도 어머니는 죽어간다. 동화 같고 모든 게 완벽히 계산된 장르적 전략이 오히려 감동을 반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허브’는 보는 동안 살며시, 온통 분홍색으로 치장한 사탕가게나 인형가게에 왔을 때 느끼는 은밀한 기쁨 같은 게 젖어든다. 일단 영화는 신데렐라가 신발 한 짝으로 제 짝을 찾는 바보 같은 왕자를 기다리거나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백 년 동안이나 자신을 자게 내버려둔 멍청이 왕자를 사랑하는 대신, 회사에 취직해서 자기 길을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재기발랄한 애니메이션으로 에둘러 고전 속의 공주상을 비판한다. 아기자기한 페미니즘의 동화 버전이 소소하게 톡톡 튄다. (사실 이 사랑스런 애니메이션만 계속했으면 좋았겠다.) 특히 트리폴리를 타고 펑펑 뛰는 이 아가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함과 환한 미소로 사람들의 넋을 빼놓는다. ‘샤인’의 한 장면과 동일하지만 단발머리 강혜정이 펑펑 뛰니 다른 영화가 생각난다는 말도 못하겠다.

천진난만한 아이 연기 너무 자연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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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가 사랑에 빠진다. 군바리 의경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왕자로 보이는 순간. 영화는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한다. 성적으로 엉큼한 상상을 품는 밉지 않은 까까머리 총각과 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슬 먹고 자라는 소녀의 아슬아슬한 동상이몽의 연애담은 ‘어린 신부’에서도 반복된 도착적 장르 판타지 아닌가. 그런데도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 첫 데이트 때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소녀는 엉뚱하게 똥 밟을 뻔했다고 소년을 밀쳤다. 사람들이 까르르 웃는다. 누가 이 대사를 썼는지 궁금해진다.

사실 영화 속에선 주인공 강혜정이 더 아이 같고, 강혜정의 일곱 살 친구인 영란이가 더 어른 같아 보인다. 정말로 강혜정이 더 아이 같다. 아니, 그냥 강혜정은 아이다. 결국 ‘허브’는 강혜정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영화인 것이다. 그녀의 연기. 그녀의 천진함. 성형수술을 했든 안 했든 그녀는 분명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어떤 투명함 같은 것을 타고났고, 그 매력이 배역 속의 아이 같은 영혼과 접속할 때 가장 맑고 밝은 매력이 스크린에 무지개처럼 걸린다. 그러니까 ‘허브’의 또 다른 이름은 ‘웰컴 투 롯데월드’인 셈.

그런데 여기에 배종옥까지 합세한다. 사람들이 바보라고 하면 콱 물라고. 어머니는 딸에게 자립을 가르쳐주려 한다. 그녀의 첫 번째 소원은 딸이 자전거를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는다. 악착같고 그악스럽던 나무울타리 하나가 지금 메말라가고 있다. 그 나무울타리 그늘에서 자라던 허브는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딸의 2014년까지 생리대를 준비해놓은 엄마의 마음이 짚이는 순간, 딸은 자꾸자꾸 짐을 싸면 죽는다고 자신의 앞날을 위해 준비한 정성어린 엄마의 짐을 불살라버린다. 그러고는 내 엄마로 살아줘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한다. 이 대목은 순전히 여성 관객들에게 엄마와 딸이기 때문에 먹히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 고마움이라는 정서의 보편성이 징글징글하다가도 목메게 엄마라는 사람이 보고 싶어 다시 징글징글해지는 여자들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눈물의 취약지대 같은 곳.

엄마 역 배종옥 … 그녀 소원은 딸이 자전거 배우는 것

‘허브’는 그래서 고운 아가씨 얼굴에 붙어 있는 매력점 같은 영화다. 누구한테는 그냥 보이기 싫은 점이고, 누구한테는 그게 있어야 얼굴이 살아나는 점. 사실 허브란 꽃이 아니라 잎에서 향기나는 식물. 숱한 꽃들을 제치고 강혜정 그녀의 녹색빛 싱그러운 연기가 사랑스럽다. 비록 작위적이지만 매력이 없다고 할 수 없는. 흐르는 눈물을 닦다 보면 어느새 허브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주간동아 570호 (p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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