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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패션, 파리의 명품

외모에도 톨레랑스는 없다

  • 파리=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외모에도 톨레랑스는 없다

외모에도 톨레랑스는 없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무자비한 패션지 편집장 미란다(오른쪽).

휘황찬란한 플래그십 스토어, 바라만 봐도 럭셔리한 상품, 단아한 선물 박스…. 여기에 ‘메이드 인 파리’라는 이미지까지 겹쳐지면 명품 패션 브랜드들은 날개를 단다.

일반 쇼핑객들은 이런 화려한 이미지를 대개 패션쇼 무대나 쇼윈도 앞에서만 접한다. 따라서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는 것도 우아하고 화려할 것이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파리의 럭셔리 브랜드 간 경쟁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매 시즌, 눈에 띌 만한 실적을 내지 못하면 브랜드든 사람이든 금세 퇴출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업계 분위기를 반영하는 쇼윈도 이면의 에피소드들을 최근 명품 브랜드에 입사한 친구들을 통해 들었다.

명품업계 “얼꽝·몸꽝은 입사 사절”

프리랜서 컨설턴트인 친구 A는 얼마 전 파리의 한 패션 브랜드 프로젝트를 맡았다. 이 브랜드는 최근 마케팅 부서에서 일할 이사급 임원을 모집 중이다. 다음은 친구가 인사 담당자와 점심을 먹으며 나눈 대화다.



“벌써 몇 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못 뽑았어요. 우리 브랜드에 맞는 인재를 못 만나서….”(인사 담당자)

“인재라니요? 저번에 인터뷰하셨던 마담 쭛쭛는 경력이 참 좋던데 결국 떨어진 건가요?”(친구 A)

잠시 뜸을 들인 인사 담당자.

“음… 우린 뚱뚱한 사람은 안 뽑거든요.”

친구는 너무 놀라 씹고 있던 스테이크 조각을 하마터면 뿜어낼 뻔했다고 한다. 인사담당 임원은 이렇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리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바라는 ‘회사의 얼굴’은 일단 늘씬해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 자체도 브랜드 이미지의 하나니까요.”

농담삼아 ‘그럼 나도 지원할 수 없겠다’고 말한 친구 A는 곧 후회했다. 인사담당 임원이 대답 없이 묵묵히 밥만 먹었기 때문. 친구의 옷 사이즈는 우리 기준으로 55와 66의 중간쯤이다.

최근 명품 브랜드를 다수 거느린 LVMH, 구찌, 리치몬드 그룹 등은 모두 각 브랜드의 수익성을 꼼꼼히 따져 희망 없는 브랜드는 가차 없이 처분하는 추세다.

따라서 큰 그룹 소속의 작은 브랜드들은 늘 분발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 실적을 높이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관성에 젖어 있는 기존 직원들을 의욕이 높은 새로운 직원들로 대거 물갈이하는 ‘극약 처방’도 자주 쓰인다. 이런 브랜드 중 하나에 여성복 라인 총책임자로 입사한 친구 B는 살벌한 이 첫 임무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사장의 지령이 “여성복 부문 직원 3분의 2를 ‘처리’하라”는 것이었기 때문.

피고용자에 대한 권리가 잘 보장돼 있는 프랑스에서는 한 사람 해고할 때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친구 B가 받은 은밀한 지시는 퇴출 대상자가 자기 발로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

외모에도 톨레랑스는 없다
“내 비서가 첫 대상이었는데 매일 밤 10시 반쯤 전화해서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해야 할 일을 시켰어. 두 주일 후에 정말 제 발로 나가더라.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무자비한 성격의 패션잡지 편집장)가 따로 없어.”

또 다른 명품 브랜드에서 일하는 C가 끼어들었다.

“나는 사장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 때문에 늘 긴장돼. 옷을 잘 입은 날은 ‘브라보’라고, 잘 못 입은 날은 실망했다는 내용을 보내. 요즘 밤 10시까지 일하는 날이 많은데 아침에는 완벽한 모습으로 출근하기가 쉽지 않아. 옷맵시도 실력으로 치는 거지.”

그 사장이 직원들에게 자주 들려준다는 ‘격언’은 럭셔리 업계 종사자들의 남모를 고충을 압축해놓고 있다.

‘럭셔리는 곧 완벽함이다. 당신의 외모에 대해서도 톨레랑스(관용)는 없다.’



주간동아 2007.01.23 570호 (p52~52)

파리=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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