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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공화국 비극의 땅 나이지리아

마약 밀거래, 금융사기, 인신매매 등 악명 … 최근엔 ‘몸값’ 노린 외국인 납치 감금도 빈발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범죄 공화국 비극의 땅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사는 14세 소년 아킨. 그는 국제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인터넷 사기꾼’이다. 국제 택배물품 가로채기, 개인계좌의 돈 빼돌리기, 인터넷 앵벌이, 금융범죄가 그의 업(業)이다. 인터넷 사기의 메카인 나이지리아에선 아킨 같은 10대를 가리켜 ‘야후(Yahoo) 백만장자’라고 부른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천재 사기꾼을 떠올리게 하는 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억센 나이지리아식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남자는 가족을 부양할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

‘검은돈’ 있는 곳엔 나이지리아인 개입

범죄 공화국 비극의 땅 나이지리아
아킨의 조국 나이지리아는 세계 제일의 범죄 공화국이다. 지난해 9월14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외국인과 외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한 테러 및 납치 가능성이 높다면서 나이지리아에 테러 경보를 발령했고, 이 지역으로의 여행이나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국정원의 우려는 4개월 만에 현실로 드러났다. 1월10일 나이지리아의 대우건설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현장에서 이 회사 소속 한국인 근로자 9명과 현지인 1명 등 10명이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된 것.

‘주간동아’는 최근 국정원이 검경 등 관련기관용으로 작성한 ‘아프리카 범죄조직의 유래 및 특성’ 보고서를 입수했다. 국정원 IO(Information Officer)들이 쓴 이 보고서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범죄조직은 전 세계적으로 성매매 알선, 마약 밀거래, 금융사기, 인터넷사기, 신분증 위변조, 인신매매, 밀입국 알선 등의 범죄를 일으키며 검은돈을 주워담고 있다. 이들 범죄조직은 최근엔 ‘몸값’을 목적으로 한 외국인 납치 및 감금도 빈번하게 저지르고 있다.



국정원 보고서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각종 범죄의 원조(元祖)다. 특히 금융사기 분야에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나이지리아식 금융사기는 투자, 대출, 무역거래 등을 미끼로 일정액의 선불금을 요구하는 수법을 쓰기 때문에 선불사기(Advance free fraud) 혹은 ‘나이지리아 419’로 불린다. 거액의 해외 예치금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하면서 수수료 등 송금경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 빼돌리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의류업체인 C사는 2004년 나이지리아로부터 양복 구입 제안을 받았다. C사는 인터넷 신용카드 대행업체를 통해 대금을 받는 방식으로 바이어와 거래를 텄는데, 바이어는 첫 거래로 소량의 양복을 주문했고 결제 승인은 아무런 문제 없이 떨어졌다. 바이어는 몇 차례의 소량거래 뒤에 대량 주문을 해왔고, C사는 물건을 보낸 뒤 대행업체에 카드 승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대금결제는 이뤄지지 않았고, 신용카드 발급자는 조회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해엔 호주의 내로라하는 금융상담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이 ‘나이지리아 419’에 속아 700만 호주달러(약 56억원)를 나이지리아로 송금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한 피해자는 2년에 걸쳐 220만 호주달러를 나이지리아 범죄조직에 빼앗겼다. 국정원에 따르면 2003년도 인터폴 회의에 참석한 138개국 중 122개국이 자국에서 발생한 금융사기에 나이지리아인이 개입됐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14세 소년 아킨 같은 글로벌 금융사기범들에게 전 세계가 당하고 있는 것이다.

신용카드 위조 및 사기범죄도 나이지리아가 원조다. 나이지리아인들은 1970년대부터 전 세계에서 인적사항을 수집해 신용카드를 만들어왔다. 이들은 보험회사나 병원에 잠입해 신원정보가 저장된 컴퓨터를 훔친 뒤 신용카드 범죄에 이용하기도 한다. 큰 조직은 신용정보업체의 직원을 돈으로 매수해 개인정보를 얻거나 유령회사를 세워 법인카드를 만든 뒤 부정 사용하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 미국 수사당국은 나이지리아인이 위장 설립한 LA의 초이스포인트사를 조사하면서 13만5000건의 개인신상 자료를 압수하기도 했다.

석유와 정치 부패로 배금주의 만연

나이지리아는 국제 마약범죄로도 악명 높다. 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한 서아프리카 범죄조직이 유통시키는 마약은 주로 코카인과 헤로인이다. 이들은 남미에서 생산된 코카인을 일단 서아프리카로 옮겨온 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 유럽시장에 내다판다. 헤로인은 황금의 초승달지대(아프가니스탄-이란-파키스탄 국경)와 황금의 삼각지대(미얀마-라오스-태국 국경)에서 물건을 떼어온 뒤 서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에 되팔고 있다.

국정원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럽으로 마약을 밀반출하다 검거된 마약 운반책 중 92%가 서아프리카 출신이었으며, 이 중 56%가 나이지리아 출신이었다.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이 2004년 나이지리아인만을 대상으로 10일간 특별 정밀검색을 실시한 적이 있는데, 네덜란드령 앤틸리스 제도에서 스키폴 공항으로 입국한 83명 중 63명이 마약을 운반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이지리아 마약조직은 대규모 마약 밀매를 저지르는 전통적 마피아 스타일의 국제 마약조직과 달리 소량을 빈번하게 운반, 밀매함으로써 기존 범죄조직이 착안하지 못한 틈새시장을 뚫었다. 코카인 또는 헤로인 1kg가량을 입으로 삼킨 뒤 몸 안에 밀어넣어 운반하는 ‘삼키기 수법’, 서로 모르는 다수의 마약운반책을 같은 항공기에 탑승시켜 마약을 운반하는 ‘샷건 방식’도 나이지리아인의 머리에서 나온 것. 샷건 방식은 1명이 세관에 걸리더라도 나머지는 혼란을 틈타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마약조직의 보스가 서울에서 암약한 적도 있다. 나이지리아 국적의 O. C. 프랭크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유령회사를 세운 뒤 2004년까지 이 회사를 마약범죄의 베이스캠프로 이용했다. 그는 미국인 사업가로 행세하면서 유창한 영어로 한국 여성들과 사귀었는데, 그의 꾐에 넘어간 일부 여성들은 마약운반책 노릇을 했다. 프랭크는 독일에서 검거됐는데, 범죄를 저지른 덴마크로 인도됐다가 탈옥해 현재는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그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나이지리아 범죄조직은 인신매매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또한 나이지리아인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밀입국 브로커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최근엔 나이지리아 여성들이 성매매 목적으로 팔려가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인신매매 조직원 중엔 매춘부로 일하던 나이지리아 여성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한다. 나이지리아인들이 마약거래, 인신매매, 밀입국 및 성매매 알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여권 위조기술이 세계 최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아프리카 서부해안의 이 아름다운 나라가 범죄의 소굴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석유와 정치적 부패를 그 이유로 꼽는다.

범죄도 비즈니스, 죄의식 없어

대우건설 근로자 9명이 납치된 니제르 델타는 대표적인 유전지대다. 이 지역엔 10여 개의 무장단체가 활동하고 있는데, 그중 니제르 델타 해방운동(MEND)이 제일 유명하다. 이 지역 원주민들로 구성된 MEND는 지난해에만 80여 명의 외국인을 납치한 뒤 대부분 몸값을 받고 풀어줬다(영국인 1명은 사망했다). 이 단체는 현재 이탈리아인 3명과 레바논인 1명을 억류하고 있기도 하다.

MEND를 비롯한 무장단체는 몸값을 노리고 외국인을 납치하거나 강도행각을 벌이고 있는데, 이들이 쟁기와 그물 대신 총을 든 까닭은 석유 개발의 혜택이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석유로 번 외화는 정치인들과 다국적기업의 배만 불렸을 뿐이다. 세계 12위 산유국인 나이지리아 국민들은 고질적인 연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40년간 비리 등으로 증발한 돈이 5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나이지리아는 부패해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1967~70년 내전이 벌어진 뒤 10여 년 동안 쿠데타가 수차례 일어났다. 국정원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적 불안이 이어지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가 확산됐고 법질서 자체를 경시하는 풍조가 팽배해졌다. 1973~79년 국제유가가 폭등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오일달러가 유입됐으나 국민들에게까지 부가 돌아가지 않았으며, 28년간 군부통치를 거치는 과정에서 경제적 빈곤이 가중되면서 배금주의 풍조가 만연하게 됐다고 한다.

정치적 불안과 경제난으로 신음하던 나이지리아인들은 유럽과 북미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였던 까닭에 이들은 각종 범죄행위에 눈을 돌리게 됐으며 체류국의 범죄조직과 연계해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는 한편, 모국에 남아 있던 친지와 친구 등을 적극적으로 범죄조직에 가담시켰다. 유럽과 북미에서 대대적인 단속이 전개되면서 이들은 나이지리아로 추방당했다. 이후 나이지리아에선 생계형 가족단위 범죄조직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등장한 범죄조직들은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진 국제범죄조직 ‘나이지리아 커넥션’으로 발전했다. 나이지리아 범죄인들은 두뇌가 비상하다고 한다. 범죄단체 조직원들의 교육 수준도 높은 편이며, 사회 경험이 풍부하고 기본적인 법률 지식도 갖추고 있다. 마약조직의 조직원들이 마약을 직접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한다. 거액의 돈을 주고 전문가를 채용하거나 변호사의 자문을 받는 범죄조직도 있다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다.

나이지리아에서 범죄는 돈을 버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범죄가 비즈니스가 되다 보니 범죄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1억 달러 규모의 사기행각을 벌인 전직 경관이 겨우 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을 만큼 법도 제멋대로다. 돈 버는 법을 일찍 배운 14세 소년 아킨은 하루 10시간씩 인터넷을 이용해 사기행각을 벌인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의 상당 부분은 그의 보스를 거쳐 정부 관료에게 뇌물로 바쳐진다. 롤렉스 시계와 고가의 장신구를 두른 아킨은 당당하게 말한다.

“정치인들은 그들의 몫을 챙기고 나는 내 몫을 챙길 뿐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나이지리아 범죄조직의 인터넷사기 수법 자료 : 국정원
1.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기관명의 편지, 팩스, e메일 발송.
2. 거액의 비자금을 과시하거나 정부 관리, 중앙은행 고위직 사칭.
3. 비자금 해외 밀반출 협조 시 거액의 커미션 제공 제의.
4. 국제기구 유사 명칭을 가장해 대규모 무역거래 제의.
5. 거래 대상자 선정 시 특별히 선정된 느낌을 갖도록 분위기 조장.
6. 극도의 신뢰와 보안을 당부하며 공범의식 주입




주간동아 570호 (p14~16)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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