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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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배려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

  • 김준기 미술비평가 www.gimjungi.net

    입력2006-11-30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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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자 배려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
    예술을 소비하는 일이 도시인만의 전유물일까. 백두대간 준령이 이어지는 경북 내륙 지방 봉화에서 열린 정정엽의 전시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소백산 아래 영주와 동해의 울진 사이에 자리잡은 봉화군의 청량산 자락에 명호면 비나리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 귀농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부부가 운영하는 비나리 산골미술관이 있다. 페미니스트 그룹 ‘입김’의 구성원인 화가 류준화와 철학을 전공한 농부 송성일 부부가 운영하는 이 미술관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도 예술적 소통이 필요하고 새로운 방식의 문화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정엽의 개인전이 산골미술관에서 열린 것은 이번 전시의 주제인 ‘멸종’과 미묘한 연계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정엽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일 뿐만 아니라, 열린 구조의 소통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은 예술가이자 행동하는 지성이기도 하다.

    소수자 배려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

    비나리 산골미술관

    그는 1980년대 두렁이라는 소그룹에 가입해서 현장미술운동을 했고, 여성미술연구회 멤버로서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 운동의 2세대로 활동해왔다. 2000년에는 입김 멤버들과 ‘종묘 점거 프로젝트’를 벌여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이렇듯 지속적으로 그룹 활동을 해온 정정엽이 놓치지 않고 정진해온 일이 있다. 회화적 성찰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붉은 잉크를 가지고 그린 드로잉이 주조를 이룬다. 그는 멸종 위기에 놓인 동식물과 상처를 입은 여성의 얼굴을 그렸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정을 담은 이 작업은 생태자연으로부터 오지의 삶에 이르기까지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 정정엽의 진지한 시각을 담고 있다. 신호등의 빨간색과 파란색 아이콘을 재미난 상황으로 교체한 그림도 있다. 작은 반짝이들을 붙여서 비교적 고정된 이미지로 각인된 인체 아이콘을 해체하거나 재배치하는 방식이다. 생명과 문명의 배리(背理)를 대하는 정정엽의 마음은 여성, 이주노동자, 멸종 위기의 동식물 등 사라질 위기에 처한 소수자에 대한 배려 그 자체다. 12월10일까지, 비나리 산골미술관. 054-673-8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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