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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방 죽이고 장쩌민은 띄우고

후진타오 주석 묘한 이중전략 … 정책 딴죽 거는 정적 제거하며 공과는 구분

  • 베이징=김수한 통신원 xiuhan@hanmail.net

상하이방 죽이고 장쩌민은 띄우고

중국에서 지난 10여 년간 권세를 누린 상하이방(上海幇)이 위기를 맞고 있다. 잇단 부패 스캔들에 파벌 핵심인사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 ‘상하이방’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후원 하에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 권부의 실세로 등장한 상하이 출신의 인사들을 일컫는다.

장쩌민은 톈안먼(天安門) 시위로 정국이 혼란에 빠져 있던 1989년 6월24일, 중국 공산당의 총서기로 선출됐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진두지휘해왔던 전임자 자오쯔양(趙紫陽)은 ‘혼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는 비난과 함께 축출됐다. 당시 덩샤오핑(鄧小平) 등 개혁파 원로들은 보수파의 견제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중국 개혁을 이끌어 갈 인물이 필요했다.

장쩌민은 1985년 상하이 시장, 87년부터는 상하이 당서기를 지내면서 상하이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또한 그는 89년 상하이에서도 거세게 일었던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조기에 진압함으로써 상당한 정치력을 증명해 보였다. 바로 이 점이 당 원로들의 낙점을 받은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부패 투쟁 명목으로 칼바람 서막

장쩌민은 당 최고직인 총서기에 올랐지만 중앙 무대에서는 신출내기에 불과했다. 보수파 리펑(李鵬) 총리나 차오스(喬石) 정치국 상무위원 등 쟁쟁한 정치 라이벌의 견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상하이의 심복들을 차례로 베이징(北京)으로 불러와 당정 요직에 앉히기 시작했다.



세를 넓혀가던 장쩌민 세력은 1995년 자신들과 줄곧 대립각을 세우던 베이징방(北京幇)의 거두 천시통(陣希同) 베이징시 당서기를 부패 혐의로 축출하고, 97년에는 차오스마저 몰아냄으로써 명실상부한 상하이방 천하를 구축했다. 상하이방은 현 후진타오(胡錦濤) 체제가 출범하자마자 우방궈(吳邦國), 쩡칭훙(曾慶紅), 자칭린(賈慶林), 황쥐(黃菊) 등 계파 수뇌들이 중국 최고 권부인 당 정치국 상임위 자리를 꿰차면서 정권의 한 축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위풍당당하던 상하이방의 권세는 후진타오 주석의 본격적인 홀로서기와 함께 크게 흔들리고 있다. 후진타오는 균형발전 전략을 제시하면서 장쩌민 시대의 경제성장 우선 정책, 일명 선부론(先富論)을 폐기했다. 2007년 가을 중국 공산당의 제17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2차 집권(2008~ 2012년)의 기반을 다지려는 후진타오 주석 입장에서는 국가 발전관과 거시경제 정책 등에 사사건건 토를 달고 반발하는 상하이방에 대한 척결이 시급한 형편이다. 상하이방을 몰아내기 위해 후진타오가 빼든 칼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임자인 장쩌민이 정적 제거 때마다 애용하던 반부패 투쟁.

후진타오 주석이 3월에 주창한 사회주의 도덕 재무장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8롱8츠(八榮八恥·여덟 가지 영예와 여덟 가지 치욕)’ 운동은 반부패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맨 먼저 당 서열 4위인 자칭린 정치협상회의 주석의 핵심 측근인 류즈화(劉志華) 베이징 부시장이 문란한 사생활과 비리 혐의로 6월 전격 파면됐다.

‘장쩌민 文選’ 발매 후 학습 열풍 거세

2006년 8월 상하이방의 본산인 상하이에서 터진 사회보장기금 유용 스캔들은 이번 반부패 투쟁의 결정판이다. 전인대 대표인 주쥔이(祝均一) 상하이시 노동사회보장국장과 친위(秦裕) 상하이 바오산구 구청장이 32억 위안(약 3840억원)의 사회보장기금을 유용한 혐의로 파면됐으며, 현재 수사 당국의 조사를 받는 중이다. 주 국장은 당 서열 6위인 황쥐 부총리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으며, 친 구청장은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당서기의 비서를 지냈다. 현재 베이징에서 파견된 100여 명의 대규모 조사단이 상하이에 상주하면서 기금 유용 스캔들에 대한 조사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방 죽이고 장쩌민은 띄우고

후진타오가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2002년의 제16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상하이방에 속하는 우방궈(왼쪽에서 두 번째), 쩡칭훙(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장악했다.

중국 당국은 간부들의 부동산 구입 등 재산 변동 상황뿐 아니라, 기업 활동 관여 또는 해외여행 등도 반드시 당에 보고해야 한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는 등 반부패 투쟁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죄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방이 이렇게 된서리를 맞는 와중에 올해로 80세를 맞은 계파의 좌장 장쩌민은 오히려 인생의 황혼기를 만끽하고 있다. 8월10일 장쩌민의 저술과 어록을 묶은 3권짜리 ‘장쩌민 문선(文選)’이 신화서점을 통해 중국 전역에 일제히 발매된 것.

‘문선’은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영예다. 중국 공산당은 전통적으로 최고 지도자의 은퇴나 사망 이후에 문선집을 발간했으며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 저우언라이(周恩來) 등 몇 안 되는 인물에게만 그 기회가 주어졌다. 중국 당국은 그동안 ‘마오쩌둥 선집’ ‘덩사오핑 문선’ 등을 당원은 물론 대중의 이념교육 교과서로 삼아왔다. ‘장쩌민 문선’도 예외는 아니다.

책 발간 직후 전국 당정조직에 소위 ‘문선 학습소조’가 조직됐다. 인민해방군과 민간단체는 물론이고, 각급 학교에서도 문선 배우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관방언론에서는 장쩌민 전 주석의 사상인 선진생산력 대표 등 3개 대표 이론을 “사회주의이론의 새로운 혁신”이라고 한껏 치켜세우며 ‘문선 열풍’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밀어주기’에 힘입어 문선은 판매 일주일도 안 되어 100만 권 이상이 팔려 나갔다. 2005년 5월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후진타오 당 총서기에게 물려주는 것을 끝으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장쩌민은 이번 문선 발간을 통해 중국의 역사적 지도자 계보에 이름을 올리는 동시에 멋지게 대중 앞에 컴백했다.

상하이방 죽이기와 장쩌민 띄우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중국의 현 정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사회주의와 공산당 일당 지배라는 체제 연속상에서 찾아야 한다. 과거에 대한 철저한 단절은 결국 현 지배권력에 대한 부정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자신은 연금되고 아들은 홍위병의 폭력으로 불구자가 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던 덩샤오핑도 마오쩌둥을 “공(功)은 7할이고 과(過)는 3할”이라고 평한 바 있다. 그는 4인방 등 문혁 세력을 철저히 척결하는 과정에서도 ‘사회주의 건국의 아버지’라는 마오쩌둥에 대한 역사적 예우를 거둔 적이 없었다. 공과(功過) 분리의 권력 교체라는 중국 특유의 정치 과정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주간동아 554호 (p58~59)

베이징=김수한 통신원 xiu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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