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2006.09.12

“환자가 혈소판 공여자 구하는 게 말이 됩니까”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6-09-11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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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가 혈소판 공여자 구하는 게 말이 됩니까”
    백혈병환우회 소속 회원들이 ‘혈소판 사전예약제’ 전면 실시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을 점거 농성한 지 9월1일로 벌써 열흘째. 다행히도 보건복지부와 여의도성모병원, 대한적십자사 등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혈소판 사전예약제란 병원이 혈소판 수혈 2~3일 전에 환자를 대신해서 직접 적십자사에 혈소판 공급을 요청하는 제도. 안기종 사무국장은 “일이 빨리 마무리되어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피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백혈병 환자들은 항암치료나 골수이식수술을 받을 때 많은 양의 혈소판을 공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때 혈소판을 구하는 일은 환자의 몫이다. 적십자사가 혈소판을 공급하고 있지만, 병원은 환자에게 직접 혈소판 공여자를 구해오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당 구해야 하는 공여자는 20여 명. 환자 간병과 고액의 수술비 마련 등으로 고통받는 보호자들은 동일한 혈액형에, 음주를 하지 않았고, 감기나 말라리아 같은 바이러스 질환도 없어야 한다는 수혈 조건에 부합된 사람들을 찾아내 병원에 오도록 하기 위해서 피 말리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안 국장도 2002년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앓는 아내의 골수이식수술을 앞두고 20명의 혈소판 공여자를 구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을 찾아다니며 수혈을 부탁했을 뿐 아니라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출입구 앞에 서서 ‘아내를 살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전단지를 돌리기도 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읽어보지도 않고 전단지를 버렸다”면서 “길바닥에 나뒹구는 아내의 웃는 사진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혈소판 공여자를 구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환자 가족들의 사연은 제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친인척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해보고, 경찰이나 군부대 등을 돌아다니고…. 여기 인권위에 나와 점거 농성을 하는 분들은 대부분 치료가 거의 끝나가는 백혈병 환자들입니다. 혈소판 공여자를 구하러 다니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환자들이 더 이상은 고통당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겁니다.”

    안 국장은 “백혈병 환자에게 필요한 혈소판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을 정도의 헌혈 수준과 시스템이 이미 갖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병원과 적십자사만 서로 유기적으로 협조한다면 백혈병 환자 가족들이 혈소판 공여자를 찾기 위해 피눈물 흘리는 일은 없을 것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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