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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

어디선가 본 듯한 영상 이전투구 ‘조폭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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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에 비가 내린다. 비열한 거리에 사내들의 주먹이 쏟아진다. 건달들의 붉은 결기가 도시의 시궁창을 헤맨다.

유하 감독이 돌아왔다. 거장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와 같은 제목의 영화를 갖고서. 그러나 사시미 칼과 개싸움이 난무하는 한국적 조폭영화의 세계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이제 그 승수를 제곱하여 바람 부는 압구정 뒷골목의 조폭 버전으로 바뀌었다. 말죽거리에서 학교 짱의 똘마니였던 ‘햄버거’는 조폭의 막내가 되고, 재수한다던 곱상한 현수는 다 때려치우고 중간 보스가 된 셈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이소룡의 기운을 받아 주인공이 승천하던 옥상, 딱 한번 학교 짱을 때려눕힐 수 있던 그 팬터지 공간은 지금 여기 서울, 어디에도 없다. 그저 주인공 병두의 알몸에 그려진 작은 용 문신이 주인공의 육신을 친친 감아올려 똬리를 틀고 있다.

욕망은 크고 가진 것 없는 먹이사슬의 중간자들

병두 주변에는 징글징글하게도 많은 인간들이 늘 입을 벌리고 있다. 병약한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콜록거리면서 병두에게 사람 좀 되라고 하지만, 집이 강제 철거당할 때는 무기력하게 눈물만 흘린다. 휴대전화를 사주자 뛸 듯이 좋아하는 막내는 보호해줘야 할 철없는 소녀이고, 남동생은 좀 달랐으면 싶었지만 형과 똑같은 양아치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병두는 이들을 식구, 일명 ‘입구녁’이라 칭한다. 그는 부하들에게 삼겹살을 먹이며 “식구가 뭐여. 같이 밥 먹는 입구멍이여”라며 자신만의 철학을 토로한다.



유하 감독이 그려내는 거리의 남자들은 이 수많은 입구녁들이 굴비처럼 엮인 먹이사슬의 딱 중간에 있는 자들이다. 욕망은 크고 가진 것은 없는 사람들. 그래서 보스에게 굽실거리는 병두나, 병두의 친구로 영화 제작자에게 굽실거리는 영화감독 지망생 민호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몸부림으로 똘똘 뭉친 사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자신의 집이 철거당하는 수모와 울분을 겪었던 병두는 자본의 축적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서 다른 집을 철거하는 일을 하며 돈을 좇는다. 민호 역시 병두의 비밀스런 과거를 영화 시나리오에 이용한다. 그는 겉으로는 지식인이지만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병두와 마찬가지다.

이 점이 바로 유하 감독이 ‘비열한 거리’에서 반복적, 강박적으로 이야기하는 조폭영화의 낭만성에 대한 거세와 차별이다. 병두는 민호에게 ‘의리 넘치는 멋있는 건달영화’ 하나 만들라고 주문하지만, 유하 감독은 그 멋있고 의리 넘치는 조폭은 허위 진술이라며, 돈에 무릎 꿇고 먹고살기 위해 상대편의 맨살을 그어버리는 조폭세계의 리얼리티를 가감 없이 그려내겠노라고 선언한다.

문제는 이 방식이 조폭영화의 자장 안에서 그렇게 새롭냐는 것이다. 사실 ‘비열한 거리’의 내러티브와 캐릭터는 매우 관습화되어 있다. 폭력을 체화한 갱스터는 이 거리 어느 하늘 아래서 쓸쓸히 죽어가고, 배신과 무정함으로 점철된 조직은 그를 돌보지 않는다. 순정파인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지만, 남자는 그 빈자리를 메워줄 수 없다. 그건 이창동 감독이 ‘초록 물고기’에서 말했고, 장현수 감독도 ‘게임의 법칙’에서 똑같이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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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

우리 사회에서 폭력이 순환하는 구조를 학교 안에서 찾아낸 전작의 관점과 다르지 않게, 이번에 유하 감독은 우리 사회의 폭력이 혹은 남성성이 우리의 가족주의와 섞여 있다고 말한다. 즉 ‘비열한 거리’라는 간판에도 불구하고 유하의 방식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폭력성을 개인의 관점에서 재편화하는 마틴 스코시즈의 방법보다는, 남자는 남자였고 여자는 여자였던 시절의 패밀리 비즈니스와 폭력을 버무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방식을 더 떠오르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마이클, 젊은 날의 알 파치노를 연상케 하는 곱상한 카리스마의 병두(조인성 분)는 ‘대부’의 막내 마이클과 달리 든든한 ‘빽’이 되어줄 아버지가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대부를 얻기 위해 재력가 황 회장의 부탁대로 현직 검사를 ‘작업’해버린다. 이 장면, 차 안에 있는 병두가 최초의 살인을 저지르기 앞서 긴장감에 차 앉아 있는데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클로즈업되면서 주관적 시점을 이루는 대목은 참으로 ‘대부’에서 레스토랑에 앉아 있던 마이클이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가 나자 벌떡 일어나 경찰관을 처치하는 대목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비열한 거리’는 제목 안에 길거리라는 태생적 운명을 각인시켰음에도 ‘방의 영화’라고 할 만큼 폐소공포증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차 안에서, 룸살롱에서, 화장실에서, 좁은 서점과 오락실에서 사람들은 밀담을 나누고 칼을 들이밀고 살점을 찢는다. 그 긴밀하고 팽팽한 액션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윽고 영화의 백미인 굴다리 밑 진흙탕 싸움 장면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굴다리 밑 진흙탕 싸움 장면 ‘영화의 백미’

병두가 속해 있는 로타리파와 삼거리파의 집단 난투극은 말 그대로 두 집단원 모두가 진흙탕 속의 개가 되어 서로를 부여잡고 나뒹굴고 한데 엉켜 긋고 찌른다. 이전투구, 이것이 ‘비열한 거리’가 바라보는 조폭과 폭력의 본질이다. 소모적이고 무의미하고 비열하다.

잘 만든 갱스터 영화의 스토리와 연출에 대한 강박을 빼고, 그저 유하 감독 자신이 진심으로 재현하고 싶었던 이 이전투구 액션의 기운으로 끝까지 나아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대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결혼식과 폭력 장면의 교차편집 및 갱스터 영화의 관습적 대목들보다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유하 감독이 모든 액션 신을 아주 좁은 장소에서 찍었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결국 ‘비열한 거리’는 갱 영화의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후의 단안을 내린다. 그것은 조폭영화 안에 또 다른 조폭영화를 만들어 현실의 조폭을 거울처럼 비추는 자기 반영성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민호가 만든 조폭영화 ‘남부 항쟁사’가 결국 병두의 비밀을 폭로하는 장면에선 이것이 곽경택 감독의 ‘친구’에 대한 패러디인지, 자신의 영화에 대한 패러디인지조차 모호해지고 만다.

유하 감독은 여전히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리얼리티와 에너지를 강조하는 감독이다. 이런 점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보다 훨씬 세련되긴 했지만, ‘비열한 거리’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도돌이표에 머물고 만다. 학원물이 범람해도 학원물을 만들었고, 조폭영화가 차고 넘쳐도 조폭영화를 만드는 유하 감독. 그는 이 처절한 폭력의 피비린내를 벗어나서 어디로 갈까.

그는 연민과 질시를 가지고 있는 남성 세계와 마초 가득한 뒷방을 벗어나 자신만의 영화 미학을 보여줄 것인가. 유하 감독의 잔혹사 시리즈는 이야기의 쾌감을 배가하는 자신만의 영화적인 동력이 충만한가 하는 것으로 마지막 결판이 날 것이다. 비열한 영화판의 생존법칙에 의하자면 말이다.



주간동아 2006.06.27 541호 (p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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