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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서울대 미대 출신 목수 이정섭

가구 만드는 재미로 홍천에 살어리랏다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가구 만드는 재미로 홍천에 살어리랏다

가구 만드는 재미로 홍천에 살어리랏다
강원도 홍천 내촌의 두메산골에 사는 목수가 간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종로구 인사동 쌈지길 갤러리에서 첫 번째 가구 전시회를 연 것이 지난해 7월이니 거의 1년 만이다. 이번엔 청와대 입구 소격동 선 컨템퍼러리에서 6월13일부터 전시회를 열고 있다. 내촌목공소 주인 이정섭(35) 씨다.

그가 이번에 들고 나온 가구는 모두 18점. 의자건 탁자건 장식대건 하나같이 단순하고 깔끔하다. 나무 이외의 다른 재료는 전혀 섞이지 않았다. 전통 목가구의 고풍스러움이 묻어나면서 현대적인 세련미도 풍긴다. 한옥 건축방식의 하나인 사괘맞춤으로 상판과 다리를 연결했으며, 혹시 떨어질 새라 강력 본드로 접합하고 대못까지 꼼꼼히 박은 뒤 못자리가 보이지 않게 나뭇조각으로 감쪽같이 상감해 넣었다.

그가 “나무가 끊어지면 끊어졌지 연결 부위가 벌어지거나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만하다.

단순 깔끔한 가구 전시회로 1년 만에 서울 나들이

그의 가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몇몇 탁자 위에 올려진 자갈과 평평한 돌덩이들. 물푸레와 오크 나무의 단아한 결을 따라 흐르던 시선이 돌덩이가 놓인 곳에서 잠시 소용돌이친다.



“동네의 홍천강에 좋은 돌들이 정말 많아요. 나무탁자 위에 뜨거운 뚝배기 같은 것을 그냥 올려놓으면 자국이 남으니까 돌을 받침대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연 그대로의 돌만큼 아름다운게 또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이 정도면 가구라기보다는 예술작품에 가깝지 않을까. 경남 마산이 고향인 이 씨는 서울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런 그가 강원도 두메산골로 흘러 들어오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 전교 10등 안에 드는 모범생이었던 그에게 사춘기의 방황은 조금 늦게 찾아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의 모든 것이 싫어졌다. 아침 7시에 등교해서 늦은 밤까지 공부를 강요당하고, 배고프면 밥 먹는 것이 당연한데도 숨어서 몰래 먹어야 하고…. 자유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학교가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는 학교를 그만뒀다.

그 직후 그가 미술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였다.

“남이 쓴 책으로 공부하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쪽으로 학과를 선택하려고 고민하다가 그나마 소질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 미술이어서 선택하게 되었죠.”

검정고시를 치르고 1년 반 정도 입시 미술학원에서 배운 실력으로 그는 서울대 미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의 방황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미술가로서의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현실도피하는 심정으로 군대에도 다녀왔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술이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도대체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었어요. 물론 열심히 그 해답을 찾지 않은 것도 잘못이지만….”

대학 3학년 때, 그는 붓 대신 사진기를 들었다. 사진기는 도구에 불과했다. 사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하철에서 사진 찍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그를 사로잡은 건 지하철 역사를 오가는 수많은 군상이었다. 우두커니 지하철을 기다리는 무표정한 사람들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그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으로 투영돼 다가왔던 것이다.

가구 만드는 재미로 홍천에 살어리랏다
가구 만드는 재미로 홍천에 살어리랏다

강원도 홍천 내촌의 두메산골에 있는 이정섭 씨의 작업실 내촌목공소.

그는 2년 동안 지하철 역사를 돌며 세상을 살아가는 군상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다시 그림으로 그렸다.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그림이 사진보다 훨씬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는 이 그림들로 지하철 역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사진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학 땐 서양화 전공 ... 목공소엔 TV·인터넷도 없어

대학을 졸업하자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미대를 나와서 취직하기가 힘들었어요. 교수를 하려면 유학을 다녀와야 하는데 형편은 안 되고…. 시끄럽고 술값도 비싼 서울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TV에서 혼자 나무로 집을 짓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더군요. 시골에서 농사도 짓고 농한기 때 부업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집 짓는 법을 배우러 찾아갔죠.”

그는 그 길로 사진기를 팔아 집 짓는 데 필요한 연장을 샀다. 집 짓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뭐든 재미만 있으면 쉽게 빠지는 그를 단숨에 사로잡아버렸다. 결국 그는 배운 지 두 달 만에 혼자서 집을 지었다. 첫 고객은 친구의 아버지. 그는 집 한 채를 완성했다는 성취감과 함께 노동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좋았다. 나무를 다루면서 사는 것도 행복했다.

그런데 10가구 정도 지었을까, 어느 순간 집 짓는 것이 일이 돼버렸다. 게다가 주문이 들어오는 집의 디자인이 너무나 뻔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지을 수도 없고, 지었다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허물 수도 없는 노릇. 반면 가구는 집보다 훨씬 자유롭고 놀이의 비중도 컸다. 그가 가구를 선택한 이유다.

가구의 생명은 나무다. 최고의 원목을 구입해서 적정한 습도를 유지하고 건조시키는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 그만큼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든다. 원목을 가구 재료로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은 최소 6개월이다. 원목을 보관하고 가공할 공간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그는 경치 좋고 땅값 싼 내촌에 1200여 평의 땅을 매입한 뒤 집과 원목창고, 공장, 작업장 등 모두 4동의 건물을 직접 지었다. 그 속에서 TV와 인터넷도 없이 조용히 묻혀 살면서 가구를 만들고 있다. 그의 휴대전화도 항상 꺼져 있다.

“대학 시절 한 번 TV를 보기 시작하면 한물간 영화라도 밤새 보고 그랬어요. 자제력이 없어서 그때부터 TV를 보지 않은 것뿐이에요. 세상 돌아가는 바를 몰라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더라고요. 휴대전화가 꺼져 있는 것은 통화불통 지역에 자주 있다 보니까 그런 거예요. 내촌목공소도 불통지역이거든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웃음)

그는 최근 라디오를 하나 샀다. 이제야 세상과 통하는 통로가 하나 생긴 셈이다. 하지만 그가 언제 이 통로를 없앨지, 또 가구가 아닌 새로운 놀이에 흥미를 갖게 될지 모르는 일. “하기 싫은 것을 하면서까지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 않다. 재미없는 일을 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는 그의 삶의 철학에서 무한한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주간동아 2006.06.27 541호 (p70~71)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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