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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빚은 와인 세상 ‘신의 물방울’ 따라잡기

와인 마니아 필독서 … 와인 상식 실생활에 접목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만화로 빚은 와인 세상 ‘신의 물방울’ 따라잡기

만화로 빚은 와인 세상 ‘신의 물방울’ 따라잡기
“와인을 주문했는데, 디켄팅을 해주세요.”

“손님, 2000년 빈티지는 마개를 열고 바로 드시는 편이 나을 텐데요.”

“디켄팅해야 와인이 ‘열린다’는데요. 소믈리에(와인 관리와 추천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디켄팅을 못하는 거 아닌가요?”

요즘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와인을 소재로 한 만화 ‘신의 물방울’(글 타다시 아지, 그림 슈 오키모토)이 5권까지 10만 부가 팔릴 만큼 인기를 끌면서 생겨난 새로운 현상이다. ‘디켄팅’이란 와인을 디켄터라는 용기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디켄팅의 목적은 와인 숙성 과정에서 생겨난 침전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와인 병의 목 아래에 촛불을 켜놓고 침전물이 흘러가는지 살피면서 공기가 닿지 않게 디켄터로 옮겨 담으면 된다. 디켄팅 기술은 소믈리에의 기본이면서, 가장 큰 평가 기준이기도 하다.

방대한 와인 정보에 재미 더해 … 10만부 판매



가짜 양주에 워낙 많이 속아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와인을 주문한 손님은 직접 병의 라벨을 확인하고 눈앞에서 소믈리에가 바로 마개를 따서 서비스하기를 원하는 것이 보통이다(주문한 활어로 회를 뜨는지 입회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신의 물방울’에서 디켄팅이 ‘와인을 맛있게 마시는 방법’으로 소개되면서 디켄팅을 요구하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났다. ‘디켄팅이 어려우면, 한두 시간 전에 병을 따놓으라’는 만화 대사 때문에 “몇 시에 와인을 여는지” 소믈리에에게 확인하는 손님도 있다.

만화에 따르면 숙성 기간이 길지 않은 ‘어린’ 와인을 마실 때 디켄팅을 하면 떫고 신 와인 속에서 ‘단맛이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향긋한 향이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하나의 와인으로 두 가지 맛을 낼 수도 있다’고도 한다. 또 만화에는 주인공 칸자키 시즈쿠가 1999년산(빈티지) ‘리슈부르’ 와인을 디켄팅하면서 와인 병과 디켄터를 30cm 이상 떼어놓고 와인을 ‘붉은 명주실처럼 똑바로 병 주둥이로 떨어져 들어가게’ 하는 ‘신의 솜씨’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레스토랑 매니저들은 “소믈리에에게 이런 곡예를 원하는 손님들도 꽤 있다”고 전한다.

“‘신의 물방울’이 인기가 있다 보니 생겨난 부작용 중 하나죠. 작가의 와인에 대한 정보량과 지식이 보통 아니에요. 만화도 무척 재미있고요.”

‘신의 물방울’의 한국판 감수를 맡았던 대유와인의 김세길 팀장의 평이다.

‘신의 물방울’ 주인공은 칸자키란 맥주 회사 말단사원으로, 국제적인 와인평론가이자 파워맨인 칸자키 유타카의 아들이다. 그는 평생을 와인에 바치느라 가족에게 무심했던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맥주 회사에 입사했으니(왜 아니겠는가!), 와인에 대해서는 독자만큼이나 문외한이다.

그러나 이 괴짜 아버지는 생전의 기행보다 더 괴상한 유언을 남긴다. 즉, 1년 안에 “12병의 위대한 와인과 그 정점에 서 있는 ‘신의 물방울’이라 불린 환상의 와인 1병을 알아맞히는 사람에게 전 유산을 양도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자신이 죽으면서 남긴 와인의 ‘본질’을 ‘뛰어난 표현’으로 대답한 자에게 자신의 집에서 살도록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만화로 빚은 와인 세상 ‘신의 물방울’ 따라잡기

6월13일 열린 한국소믈리에 대회 결선에 진출한 소믈리에가 디켄팅 테스트를 받고 있다.

내용으로만 보면 너무 뻔한 일본 만화다. 평생 한 우물을 판 아버지, 그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갖고 있어 오히려 철없이 구는 아들, 아들을 정신차리게 하는 엄청난 실력의 경쟁자, 그리고 주인공을 헌신적으로 돕는 주변인들이 등장한다. 아들과 경쟁자가 한 계단 한 계단씩 대결을 펼치는 가운데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의 ‘장인 정신’을 체득한다. 그것이 초밥을 쥐는 것이든, 전통주를 담그는 것이든, 빵을 굽는 것이든, 아무리 시시껄렁한 기술이라도 상관없다.

도식적인 설정이지만, 이것이 ‘신의 물방울’의 장점을 바래게 하진 않는다. 새로운 와인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 전개되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흥미진진하고 현실감 있기 때문이다.

성인들을 위한 와인 만화지만, 일본 만화 특유의 과장법은 결코 순화되지 않았다. 1982년 샤또 무똥 로쉴드를 맛본 와인평론가 토미네의 눈앞에는 밀레의 ‘만종’이 ‘오리지널’로 그려진다. 2001년 ‘샤또 몽 페라’를 입술에 댄 순간, 칸자키의 귀에는 록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울려퍼진다. 2001년 ‘생콤’을 마신 칸자키는 어느새 육감적인 발리 섬의 무희들 사이에 앉아 있고, 생굴과 ‘루이 자도 샤블리’를 마신 주인공은 눈물을 쏟으며 고향에 돌아가 소꿉친구와 결혼하는 상상을 한다. 흔히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말하는 ‘마리아주’(프랑스어로 ‘결혼’이라는 뜻)가 바로 이것이다.

홍익대 앞의 와인바에서 1년 전부터 소믈리에 공부를 하고 있다는 김미선(26) 씨는 “‘신의 물방울’을 읽고 ‘몽 페라’를 마셔봤다. 만화와 비슷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수백, 수천 가지의 와인을 맛보는 일이 불가능한데, 만화를 보면 마셔보지 않은 와인의 맛도 마치 직접 마신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만화에 등장한 와인 ‘불티’ … 없어서 못 팔 정도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와인 소믈리에로 근무하는 최현철 씨는 “소믈리에들의 세계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면서 “요즘 소믈리에를 장래 직업으로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고 있는데, 이런 유행도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와인동호회 회원은 “‘신의 물방울’이 와인동호회들의 필독서가 됐다.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수준에서 보면 ‘신의 물방울’은 와인에 대한 지식보다 맛의 표현력에서 배울 것이 많은 책”이라고 한다.

6월13일 프랑스 농식품 진흥공사 주최로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5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 결선에 오른 9명의 소믈리에들은 모두 뛰어난 기술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맛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능력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심사위원장 파스칼 부셰 씨는 “타닌이 고기의 육질을 감싸는 와인이라고 말한 사람은 소믈리에로서 좋은 점수를 받지만, 프랑스의 가장 좋은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이란 말은 좋지 않은 답”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을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인천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오는 길에 택시기사와 우연히 와인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책을 이야기해 처음 알게 됐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와인을 아는 가장 중요한 길은 경험이다. 와인에 도그마가 있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보는 즉시 사자!) ★(꽤 좋다) X(사지 말자) -(평가가 엇갈리는 해) N(파워는 없지만 지금 마시기 적당) D(디켄팅 추천)
  92 93 94 95 96 97 98 99 00 01 02 03
보르도 N - - N - ★★ - - ★★
부르고뉴 N - - - - X ★★ X - ★★ X
이탈리아 X - - - ★★ - D ★★ D    
캘리포니아 ★★ - - - ★★ N - X D    


‘신의 물방울’을 맛보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보르도의 유명세와 칠레 와인의 공습,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대중적으로 소외돼 있던 부르고뉴 와인이 새삼 인기를 얻고 있다. 작가 타다시 아지가 부르고뉴 와인을 좋아해서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보르도의 샤또가 소유한 밭에서 생산된 와인 가운데 엄격한 기준에 달하지 못한 와인을 의미하는 ‘세컨드 와인’도 와인 마니아들의 새로운 타깃이 됐다. 예를 들면 ‘샤또 라투르’의 세컨드 와인 ‘레 포르 드 라투르’는 가격은 훨씬 싸지만 맛에서 유명 샤또의 간판 와인을 능가한다는 것. 기존에 수입되던 ‘몽 페라’(7만원대) ‘루이 자도 샤블리’(4만원대)는 ‘신의 물방울’ 이후 없어서 못 팔 정도고, ‘생콤’은 ‘신의 물방울’ 때문에 수입이 시작된 와인이다. 와인 만화가 인기를 끌 만큼 팬 층이 두터워져 와인 시장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 와인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신의 물방울’의 미덕은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기 위해서’ 와인을 마시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와인을 마시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와인 역시 ‘아는 만큼 맛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6.06.27 541호 (p66~67)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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