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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금실 이명박·홍준표 갈라서나

이 시장 오세훈 지지에 홍 의원 측 “뒤통수 맞았다”… 정치 백수 시절부터 쌓은 동지애 ‘와르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8년 금실 이명박·홍준표 갈라서나

8년 금실 이명박·홍준표 갈라서나

2002년 6월13일 한나라당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 부부와 홍준표 의원(맨 왼쪽)이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1999년 5월17일, 미국 워싱턴 D.C. 댈러스 국제공항. 가방을 둘러멘 홍준표 전 의원(현 한나라당 의원)이 부인과 함께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를 발견한 이명박 전 의원(현 서울시장)이 손을 흔들었다. 98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다 실패한 이 시장은 그해 11월 워싱턴으로 건너와 공부(조지워싱턴 대학)를 하고 있었고, 의원직을 상실한 홍 의원이 그 뒤를 쫓아 워싱턴으로 날아온 것.

난생처음 미국을 방문한 홍 의원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맥클레인 숲 속에 있는 이 시장의 아파트로 숙소를 옮겼다. 이 시장 부부와 홍 의원 부부는 넓지 않은 아파트에서 한동안 동거(?)를 했다. 얼마 뒤 홍 의원이 아파트를 구해서 분가했다. 이 시장 부부는 평소 자주 찾던 한아름 슈퍼마켓으로 홍 의원을 데려가 생필품을 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후 홍 의원은 1998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패한 손학규 전 의원(현 경기도지사)과 함께 수시로 이 시장의 아파트를 찾았다. 이른바 워싱턴의 ‘오리알 3인방’이 급속히 가까워진 배경이다. 세 사람은 수시로 술잔을 기울였고, 그런 자리에서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및 의원직 복귀를 다짐했다.

이 시장 측 “오비이락이 몰고 온 오해”

2001년 10월, 홍 의원이 재·보궐선거(10·25)에서 재기(서울 동대문을)에 성공했다. 이 시장은 선거 내내 홍 의원의 손을 잡고 다니며 측면지원에 나섰다. 다음 해 6월, 이 시장과 손 지사가 지방선거에 출마해 뜻을 이루었다. 이번에는 홍 의원이 이명박 캠프의 유세본부장을 맡아 지원 유세를 폈다.



선거를 끝낸 홍 의원은 자연스럽게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총대를 멨다. ‘친이(親李)’는 곧 ‘반(反)박근혜’의 길을 의미하는 정치 환경이지만, 홍 의원은 개의치 않았다.

홍 의원은 이 시장과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과 함께 인사동 한정식집에서 수시로 회동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모임을 ‘이명박계의 성골모임’이라고 불렀다. 홍 의원은 당과 여의도 정보에 목말라하던 이 시장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 시장과 홍 의원이 한 배를 타고 2007년 12월까지 항해할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는’ 정치의 속성을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 서울시장 경선이 갈등의 출발점이었다. 홍 의원은 이 시장이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한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심지어 뒤통수를 때렸다고 주장한다. 홍 의원 측 인사의 주장이다.

8년 금실 이명박·홍준표 갈라서나

6월1일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왼쪽)가 시청을 방문, 이명박 시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이 시장과 홍 의원은 지난해부터 수십 번이나 만났다. 그때마다 서울시장 선거 얘기를 하면서 도와달라고 했으며, 그때마다 도와주겠다고 했다. 경선 일주일 전에도 만났다. 그러나 막판에 이 시장은 오세훈 후보를 선택했다.”

이 시장이 오 후보를 선택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 이 시장은 왜 오 후보를 선택했을까. 홍 의원의 분석이다.

“오 후보는 ‘현찰’인 데 반해 나는 ‘어음’이다. 현금의 유혹을 이겨낼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치는 때로 현찰보다 어음을 선택해야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어음은 현찰보다 흡인력에서 떨어지지만 경우에 따라 대박을 터뜨린다.”

홍 의원의 이런 주장에 이 시장 측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오비이락이 몰고 온 오해”라며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이춘식 서울시 정무특보의 말이다.

“이 시장이 공개적으로 누구를 돕겠다고 한 적은 없다. 오 후보는 바람을 타고 왔다. 나오자마자 60~70%의 지지도를 확보했다. 이 시장이 돕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홍 의원 측은 이 해명을 믿지 않는다. 이 시장이 측근을 동원해 오 후보의 출마를 부추기고 각종 공약과 정책, 조직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홍 의원이 지목한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 정태근 부시장이다. 정 부시장은 정말 오 후보를 부추겼을까?

“기본적으로 이 시장과 나는 중립을 지켰다. 다만 오 후보와 미래연대 등에서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친밀한 것은 사실이다.”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복구하기 어렵다. 홍 의원이 ‘마이웨이’를 선언하며 돌아선 것도 정치적 신뢰관계가 무너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정무특보, 정 부시장, 박창달 전 의원 등은 오해라며 돌아선 ‘홍심(洪心)’을 잡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홍 의원은 쉽게 마음을 되돌리지 않았다. 급기야 이 시장이 직접 나섰다.

4월28일, 경선 패배의 쓴잔을 마신 홍 의원이 제주도에서 편치 않은 속을 달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장의 전화였다. “서울 가면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홍 의원은 연락하지 않았다. 그 후 이 시장의 전화가 또 걸려왔지만 홍 의원은 받지 않았다.

그러던 6월11일 일요일 오후, 집에서 운동을 하던 홍 의원이 무심결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 시장의 목소리였다. 전화를 끊은 홍 의원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눈치를 보던 부인이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듣기만 하다가, 정리하고 돌아오라”고 일러주었다.

이날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일식집. 이 시장과 홍 의원이 마주 앉았다. 이 시장이 양주를 주문했다. 홍 의원이 “부담스럽다”며 ‘설화’로 바꾸어 잔을 채웠다. 주로 이 시장이 말을 했다.

“특정 후보를 도운 적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홍 의원의 오해다.”

홍 의원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설화를 4병쯤 비웠을 때 이 시장의 말이 끝났다. 듣고 있던 홍 의원이 입을 열었다.

“내가 오해했다고 하니 그렇다고 치자.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당내 인사들이, 당원들이 ‘이 시장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장이 정책과 대선 파트너로 오 후보를 선택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이 시장과 다시 얼굴을 맞대고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시장의 정치적 선택을 존중한다. 이 시장은 이 시장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면 된다.”

이 말을 마친 홍 의원이 자리를 떴다. 정확히 2시간 30여 분간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동지애(愛)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증(憎)오가 밀려온다. 그들도 그럴까? 이 시장 측은 지금도 홍 의원을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홍 의원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눈치다.

그렇지만 홍 의원의 입장은 다른 것 같다.

“나를 이 시장의 손안에 있는 공깃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딱 부러지는 태도지만 미움의 감정은 없어 보인다.‘워싱턴 결의’를 통해 의기투합했고, 함께 길을 가다가 손에 든 계산서를 확인해보니 서로 계산이 달라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홍 의원의 말을 듣고 나니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이 시장은 이번 선거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오세훈 후보의 당선으로 이 시장의 대권 가도에 청신호가 켜진 것은 득이다. 반면 총대를 메고 앞장서던 우군을 잃은 것은 뼈아픈 손실이다. 특히 홍 의원의 ‘마이웨이’를 지켜보는 당내 인사들과 당원들이 이 시장의 포용력과 용병술, 리더십 등 정치력 전반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는 점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 시장의 지방선거 성적표는 ‘이기고도 진 게임’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8년 지기’ 홍 의원이 이 시장에게 남긴 그늘은 크고 또 오래갈 것 같다.



주간동아 2006.06.27 541호 (p34~35)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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