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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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개인전 열고 화단에 홀로서기

  • 이남희 동아일보사 여성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6-06-05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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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개인전 열고 화단에 홀로서기
    “2세라는 이유로 숨어 지냈지만, 이제는 아버지와 당당히 겨뤄보고 싶습니다.”

    한국 근대미술의 거목, 고 박수근 화백의 아들 박성남(59·서양화가) 씨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개인전 ‘박성남 展-쓸림과 쌓임을 토대로’를 열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 전시관에서 5월30일까지 열리는 ‘국제아트페어’에 참가해 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 것. 올해 초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 ‘박수근가(家) 3대에 걸친 화업의 길’이 아버지의 명성에 기댄 전시회였다면, 이번 전시회는 ‘독립된 예술가’ 박성남을 선언하는 자리다.

    졸고 있는 청년, 딸을 안고 환하게 웃음 짓는 엄마, 쓸쓸하게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 박 씨의 그림 속 주인공은 모두가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1950년대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선친의 그림과 ‘닮은 듯 다른’ 분위기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모노크롬 색조는 특히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그의 ‘선 긋기’는 상상력으로 넘쳐난다.

    “50년대는 6·25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넘는 ‘결핍의 시대’였던 만큼 아버지는 수많은 덧칠을 통해 독특한 마티에르를 창조하셨죠. 하지만 ‘과잉의 시대’인 21세기에 살고 있는 저는 ‘깎아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기법상 차이가 있지만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아버지와 같아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1986년 호주로 이주했던 그는 그동안 청소부로 일하며 조용히 창작 활동을 해왔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은 1호당 2억원을 호가하지만, 아들은 세상과 단절된 채 가난하게 살아온 것. 생김새뿐 아니라 예술적 견해, 작품세계까지 선친의 영향을 받은 박 씨는 아버지처럼 그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고 한다.



    “1966년 선친의 유작전이 열렸습니다. 거기서 선친의 친구분들이 ‘성남이가 돈독이 올라 아버지의 작품을 똑같이 그린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말이 상처가 돼 ‘절대 아버지처럼 그리지 말자’고 다짐했죠. 한국을 떠나기 전 국전에 7회나 입상할 만큼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아버지의 후광이 역으로 작용한 셈이죠.”

    박 씨는 더 이상 숨어 지내지 않을 생각이다. 이제는 아버지와 당당히 실력으로 겨루겠다고 말한다. 유화물감을 칠한 뒤 붓으로 쓸어내 질감을 매끄럽게 표현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완성한 그는 51세에 작고한 아버지보다 여덟 살이나 많다.

    “앞으로 5년간 한국에 머물며 21세기 한국의 시대상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싶어요. 이번 전시회가 저를 알리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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