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8

2006.06.06

피눈물 흘린 열도의 한국 혼 만나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6-06-05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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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눈물 흘린 열도의 한국 혼 만나다
    섬나라 일본의 고유 기질 ‘시마구니 곤조(島國根性)’. 그것은 감정과 비논리가 섞여 있는 집단 정서다. 논리나 반론, 이웃의 충고로 바로잡힐 성질의 것이 아니다. 숙명의 이웃인 우리나라와 계속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주요 원인이 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배타적인 일본. 멀리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부터 일제강점기 ‘조센진’에 이르기까지 ‘시마구니 곤조’와 처절한 투쟁을 하며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재일 한국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저항하며 때로는 자신의 핏줄을 철저히 숨겼던 10명의 인물을 통해 우리들의 자화상을 만난다.

    풍운아 김옥균은 갑신정변이 ‘사흘천하’로 끝나자 황급히 일본으로 몸을 피신한다. 일본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핍박이었다. 김옥균은 조선으로 돌아가 개화의 꿈을 펼치겠다는 야망을 꿈꾸며 10년 유랑의 세월을 보내던 중 중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상하이로 갔다가 결국 세 발의 총을 맞는다.

    꼬장꼬장한 구한말 마지막 선비 최익현에게 일본은 용서할 수 없는 구적(仇敵)이었다. 꺼져가는 대한제국을 살리려고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돼 대마도로 압송된 최익현은 일본이 주는 음식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곡기를 끊고 용서할 수 없는 적과 시대에 항거하던 그는 죽어서야 고국으로 돌아온다.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된 이진영은 다소 생소하다. 그는 2002년 일본에서 초연된 오페라 ‘현해탄에 핀 매화’의 주인공. 농노로 숱한 고생을 겪은 이진영은 우여곡절 끝에 와카야마(和歌山) 영주로 부임한 도쿠가와 요리노부(德川賴宣)의 시강(侍講)으로 인간의 도리를 가르친다.



    시대 상황에 따라 김옥균은 용일(用日), 최익현은 항일(抗日), 이진영은 순일(順日)의 삶을 살다 갔다.

    “그들에게 돌을 던지더라도, 죄의식과 강박에 떨며 살았던 그들의 안쓰러운 일생을 한 번쯤은 중층적으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조선 도공의 후예로 외무대신을 두 번 역임하고 천황을 구한 인물로 알려진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박무덕)와 대중작가 다치하라 세이슈(立原正秋·김윤규), 그리고 함경도 출신으로 사각의 링 위에서 미국인을 때려눕혀 패망 후 구겨진 일본의 자존심을 세운 역도산(김신락). 그들은 핏줄을 철저히 부정하며 살았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처럼 살며 피와 눈물로 이룬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다.

    정유재란 때 왜군은 남원을 비롯한 삼남 일대의 도공들을 마구 잡아갔다. 일명 도자기 전쟁. 그때 끌려간 심수관 씨는 15대 400년을 내려오며 사쓰마(薩摩) 도자기 종가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또 사가현(佐賀) 아리타(有田)에서 일본 최초의 자기를 구운 이삼평의 후손들은 폐업 150년 만에 가업을 다시 계승하며 자신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동아일보 일본 특파원을 지낸 저자에게 심수관 씨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흥미롭다. 일본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가 그에게 “우리 선조도 조선에서 건너왔다”고 말했다. 사토는 역시 일본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친동생으로, 최근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바로 기시의 외손자다. “강경파 아베에게 한반도 핏줄이 흐르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신산한 그들의 삶을 선악 이분법으로 구분하려고 쓰여진 것이 아니다. 이 책이 한국과 일본, 역사와 미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김충식 지음/ 효형출판 펴냄/ 332쪽/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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