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8

2006.06.06

광주지법 문턱 낮추고 서비스 높이고

민원실 안락하고 편리하게 새 단장... 법원장 등 간부들이 직접 민원상담 ‘호평’

  • 광주=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6-06-01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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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지법 문턱 낮추고 서비스 높이고

    광주 시민을 위해 새롭게 단장한 광주지법을 배경으로 서 있는 전수안 법원장.

    “가끔 서류를 떼러 오는데, 몇 달 사이에 법원이 확 달라졌더라고요. 과거에는 분위기가 칙칙하고 왠지 주눅도 좀 들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분위기도 밝아졌고 이용하기도 편해진 것 같아요.”

    광주지방법원(법원장 전수안) 1층 민원실 입구에서 만난 한 민원인의 이야기다.

    광주지법이 변하고 있다. 시민에게 좀더 다가가기 위해 문턱을 낮추고, 건물을 활짝 개방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민원인들을 위한 건물 내부 시설과 시스템의 변화다.

    광주지법 총무과 오양수 과장의 설명에 따르면, 올해 초까지만 해도 광주지법 1층 종합민원실은 어둡고 답답한 복도를 사이에 두고 본실과 분실로 나뉘어 있었다.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민원실의 철문은 폐쇄적인 법원의 상징처럼 민원인들에게 중압감을 주었다. 민원인들은 실내가 좁아 사무실 밖 복도 양쪽에 마련된 의자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현재 상당수 지방법원과 지청의 모습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광주지법은 하루아침에 완전히 탈바꿈했다. 과거의 복도와 벽, 그리고 철문은 모두 사라졌다. 그 대신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 열린 공간에 ‘민원인 쉼터’가 마련돼 있다. 그곳에는 민원인들이 언제든지 쉴 수 있는 반원형 긴 의자와 두 대의 컴퓨터, 프린터 등이 비치돼 있다.



    컴퓨터·복사기 설치해 민원인 무료 이용

    입구 정면으로는 민원상담용 테이블과 복사기, 팩스 등이 설치돼 있다. 모두 민원인들을 위한 무료 편의시설이다. 다만 법원을 자주 드나드는 인근 변호사와 법무사 사무실 관계자들의 사용은 제한적이다.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과거 본실과 분실로 나뉘었던 종합민원실은 한 곳으로 합쳐졌고, 입구는 철문 대신 사무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으로 바뀌었다.

    민원실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부서를 알리는 ‘미디어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실내가 어둡고 보일 듯 말 듯한 부서명패 때문에 업무 해당부서를 찾기 힘들었던 과거의 모습과는 천양지차다. 여기에 현관 입구에서부터 사무실 내벽까지 이어진 연한 아이보리 색 벽면은 밝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광주지법 문턱 낮추고 서비스 높이고

    여성휴게실에서 여직원들이 담소를 나누며 쉬고 있다.

    민원상담 시스템의 변화도 눈에 띈다. 과거에는 전문상담원 2명이 번갈아가며 상담을 받았지만 요즘에는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를 비롯, 각 실무 국·과장과 사무관들이 돌아가면서 상담원으로 나서고 있다. 법원장이 직접 나서서 민원인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또 간단한 법무상담은 법무사회의 협조를 받아 법무사들의 자원봉사로 해결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올해 2월 전수안 법원장 취임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여직원 휴게실도 대폭 업그레이드

    법원 앞 한 변호사 사무실 여직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법원 직원들이 어려워 사소한 일까지 법원에 직접 가서 처리했는데, 이제는 기록의 유무나 복사 가능 여부 등 간단한 내용은 전화로 확인한다”면서 “법원이 민원인의 편의를 위해 여러 가지 신경을 써주고 있고, 직원들도 고압적이고 딱딱했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광주지법 문턱 낮추고 서비스 높이고
    이 직원은 또 “예전에는 법원 직원들이 자주 드나드는 변호사 또는 법무사 사무실 여직원들의 서류를 일반 민원인 것보다 먼저 처리해주는 등 어느 정도 편의를 봐줬는데 요즘은 똑같이 취급한다”면서 “우리 입장에서 보면 조금 불편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민원인 입장에서는 좋아진 것이고, 그게 맞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법원 내부 직원들을 위한 복지시설과 시스템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사방이 꽉 막힌 ‘징벌방’ 수준에 머물렀던 여성휴게실이 창문이 있는 공간으로 옮겨졌고, 여성 판사와 여직원을 위한 ‘유축실(수유실)-엄마랑 아기랑’이 새롭게 마련됐다. 현재 광주지법에 근무하는 여성 법관은 70여 명이고, 여직원은 120여 명이나 된다.

    광주지법 문턱 낮추고 서비스 높이고

    종합민원실의 과거(맨위 사진)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 알 수 있다.

    새로운 근무평가 기준과 평가시스템도 도입됐다. 법원은 매월 친절직원을 선발해 본인이 특별히 반대하지 않으면 민원인이 보낸 편지와 함께 직원의 사진을 로비 엘리베이터 옆에 게시하고 있다. 친절직원으로 선발되면 근무평가 때 가산점을 주며 특별 상여금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시민들이 법원의 시설과 활동을 직접 평가하고 시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12명의 시민사법모니터 요원이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취임한 직후 제시한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라는 개혁 방향에 따른 것이다. 다른 지역의 법원들도 이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라 여러 가지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광주지법의 변화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섬세하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광주지법 한 여직원은 “여성휴게실 개선과 유축실 신설을 기존 법원장에게도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번번이 ‘알았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그런데 전 원장이 부임한 이후 요구하기도 전에 알아서 개선해줬다”고 말했다.

    광주지법 첫 여성법원장인 전수안 원장의 개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터뷰 광주지법 전수안 법원장

    “시설 개선 못지않게 법원 소프트웨어 개혁 추진”


    -법원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점을 꼽는다면?

    “그동안 법원은 수요자인 국민의 눈높이에 서비스를 맞추지 못했다. 또 사건 처리의 완급 조절에 실패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송사하다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민사합의 사건의 경우 접수해서 판결이 나기까지 우리 법원은 238일 정도 걸린다. 250일 남짓 걸리는 일본에 비해 빠른 편이다. 그런데도 법원이 불만을 사는 것은 응급실로 가야 하는 환자와 장기간 입원하면서 검사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환자를 구분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주지법 개혁에 가장 역점을 두었던 부분은?

    “시설 개선이 첫 번째여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국민과 재판에 임하는 자세를 바꾸고 극복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주변 여건을 바꿔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가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국민을 섬기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고, 재판 당사자와 민원인이 그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법원 내 남녀평등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는가.

    “각론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총론에서 법원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핵심부를 남성들이 지배하는 한 ‘역지사지(易地思之)’ 측면에서 한계는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여성들은 항상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고 시혜적인 결정을 받아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우회적일지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집행부에 여성이 들어간다면 시혜를 기다려야 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남녀 평등한 집행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법원장은 물론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나 대법관 중에도 여성이 절반쯤 있었으면 좋겠다.”

    -향후 어떤 개혁을 추진할 계획인가.

    “이미 구속영장 기준을 발표했다. 앞으로 법정 모니터링과 구술변론, 공판중심주의가 확실하게 자리 잡도록 할 예정이다. 전문직 범죄자나 소수자에 대한 적정한 양형도 중요하다. 그동안 성범죄 피해를 당한 소수자인 여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당사자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그동안의 양형에 대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화두’로 제시해 활발한 논의를 이끌어볼 생각이다. 그것이 궁극적인 개혁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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