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8

2006.06.06

“테러 위협·스토커에 맘 편할 날 없었죠”

박근혜 대표, 집 앞 시위·전화 욕설은 ‘기본’…그동안 애정공세 남성도 30명 넘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6-06-01 13:5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테러 위협·스토커에 맘 편할 날 없었죠”

    5월20일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피습을 당하는 박근혜 대표.

    1997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정치 역정은 ‘테러와 스토커’로 점철됐다. 특히 대중 앞에 섰을 때 테러의 위험은 커졌고 스토커도 늘어났다. 비서진은 이런 상황에서 생길 수 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최근 박 대표를 위협하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사회·이익단체들의 극단적 행동이다. 박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승민 의원은 “일부 시민단체나 이익단체 회원들이 박 대표가 탄 차를 가로막고 욕설을 퍼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서울 삼성동의 박 대표 자택 앞. 사학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당과 한판 승부를 벌이던 박 대표 집 앞에 새벽같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몰려들었다. 지방 일정 때문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서던 박 대표 차량은 이들에게 발목이 잡혀 움직이질 못했다. 유 전 실장이 설명하는 당시 상황.

    “욕설은 기본이었다. 박 대표가 앉은 뒷자석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는가 하면 발로 차를 차는 등 한동안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의 전화 및 사이버 테러는 ‘기본’이다. 5월에는 지방선거 공천에 불만을 품은 한 시민단체 간부가 ‘똥’을 담은 도시락을 대표실로 배달했다. 박 대표 얼굴에 테러를 가한 지충호 씨처럼 ‘무조건 한나라당이 싫다. 조심하라’는 협박편지도 곧잘 대표실로 배달된다.



    공천 불만 품고 분뇨 담은 도시락 보내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박 대표의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다. 측근인 전여옥 전 대변인은 “박 대표는 체질적으로 근접 경호를 싫어한다”고 설명한다. 다른 한 측근도 “박 대표는 소탈한 스타일로, 권위주의 냄새가 나는 경호를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경호를 싫어하는 박 대표이지만 ‘대중 속으로’ 향하는 그의 움직임은 깊고 넓다. 그만큼 위험은 배가되는 셈이다. 보좌진이 제일 당황하는 경우가 군중 속을 걸어가는 박 대표를 특정인이 가로막고 위협적인 상황을 연출할 때다. 느닷없이 나타나 손을 으스러지게 잡는 경우 박 대표로서는 죽을 맛이다. 그렇다고 고함을 치거나 손사래를 칠 수도 없다. 얼굴은 웃고, 속은 고통으로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테러가 직접적으로 박 대표를 위협한다면, 스토커는 박 대표와 주변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두통거리다. 측근들에 따르면 박 대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30여 명이 넘는 스토커가 박 대표 주변을 서성이면서 사랑고백(?)을 시도했다.

    2005년 11월4일 광교 쪽 청계천에 ‘박근혜 대표 애인’이라는 어깨띠를 두른 50대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내용을 알 수 없는 괴문서를 돌리며 박 대표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2005년 1월 박 대표의 미니홈피에 50여 건의 글을 올린 K 씨도 박 대표 주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다. 어지간한 스토커에게는 이력이 난 박 대표 측이지만 그는 이전 사례들과는 차원이 다른 애정공세를 펼쳐 박 대표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런 식이다.

    “박근혜 대표님은 만고의 절개를 말해주시며, 미인이다…. 커플링 반지를 꼭 끼워주세요. 박 대표님의 슬픔과 아픔과 고통까지 하나가 되어 함께 나아가려는 강쫛쫛이 될 수 있을까? 먼저 결혼하고 풀어갑시다.”

    그는 박 대표와 결혼키로 했다는 가짜 청첩장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청첩장에 기재된 결혼식 장소는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의 산소가 있는 국립묘지였다.

    “테러 위협·스토커에 맘 편할 날 없었죠”

    2005년 10월 서울 청계천 인근에서 ‘박근혜 대표 애인’이란 어깨띠를 두른 50대 남자가 행인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2003년 어느 이른 봄 날, 5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의원회관으로 박근혜 대표를 찾아왔다. 그는 양복 윗주머니엔 장미 한 송이를 꽂고 목에는 빨간 머플러를 둘렀다. 그는 비서에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그 명함에는 이름보다 더 눈길이 가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오늘도 다녀갑니다. 박근혜 양, 사랑해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박 대표에게 애정공세를 펴는 스토커의 출신 성분은 다양하다. 승려에서부터 도사, 법사 등등. 이들 가운데에는 하늘로부터 기(氣)를 받았다는 사람이 유독 많다.

    박 대표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살고 있다. 그러나 국회수첩에 등재된 주소는 ‘대구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다. 다른 정치인들이 다 적는 전화번호도 없다. 한 측근은 “스토커들 때문에 주소를 공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택 위치와 전화번호를 보안에 부쳐도 스토커들은 그의 집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박 대표 만나겠다며 집 앞에서 노숙하던 남성 체포되기도

    2005년 1월에는 박 대표 자택 앞에서 하트 모양의 꽃다발을 들고 박 대표를 기다리던 한 남자의 사진이 박 대표 홈페이지에 오르기도 했다. 2000년 초에는 어떤 남자가 박 대표를 만나겠다며 삼성동 자택 앞에서 침낭을 펴놓고 잠을 자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이번에는 뺨에 60바늘이나 꿰매는 테러를 당했지만 박 대표는 평소 테러와 스토커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반응한다. 유 전 실장은 “보통사람 같으면 한번 도둑을 맞으면 보안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법석을 떨겠지만 박 대표는 테러 위협이 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 테러는 이념이나 사회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정치적 소외세력에 의해 주로 이뤄진다. 박 대표에 대한 테러도 이런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테러와 스토커에 시달린 박 대표의 다음 한수가 궁금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