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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이야!|제사음식

어? 진주에도 ‘헛제삿밥’ 있었네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어? 진주에도 ‘헛제삿밥’ 있었네

어? 진주에도 ‘헛제삿밥’ 있었네

진주헛제삿밥의 상차림.

흔히들 음식 맛은 정성이라고 한다. 젖 뗀 뒤 40여 년간 음식을 먹어본 경험에 의하면, 지극히 맞는 말이다. 어린 시절 받았던 생일상, 장모님이 처음 차려준 밥상 등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내 시각과 미각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정성 들인 음식을 늘 받기만 한 나는 정작 남에게는 그렇게 해준 적이 없다. 가족을 위해 가끔 요리를 하지만 맛을 내기 위해 기교는 부릴망정 정성을 담았다고는 할 수가 없었다. 음식에 정성을 들인다는 말의 참뜻을 몸으로 느낀 것은 지난해 가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맞는 설 차례상에서였다. 셋째인 우리 집은 전을 맡았는데 시장에서 재료를 사는 것부터 시작해 달걀 입힌 옷이 두꺼울까 얇을까, 너무 지져질까 설익을까, 밤새 쪼그리고 앉은 다리에 쥐가 나고 허리가 끊어질 듯해도 음식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세상일이라는 게 참 요상한 것이, 살아생전에는 외식 한번 함께 하지 않다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야 음식 냄새나 맡으실까 싶은데도 이렇게 지극 정성을 다하다니…. 하여간 요즘 내 생각에는 정성 들이는 음식 가운데 제일은 제사음식이다.

일곱 가지 나물 위에 탕국 얹어 ‘쓱쓱’ 기막힌 맛

어버이날 즈음해서 고향 선친묘소를 다녀왔다. 묘소 앞 푸른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고, 어머니는 또 한번 목놓아 우셨다.

돌아오는 길에 경남 진주를 경유한다. 지나는 길이니 진주 음식 한번 먹자고 시내로 들어섰다. 진주 관광안내 팸플릿에 향토음식으로 진주비빔밥과 진주냉면, 진주교방음식, 진주헛제삿밥이 소개돼 있었다. 진주비빔밥과 냉면, 교방음식은 이미 맛을 봤던 터라 헛제삿밥집으로 향했다. 헛제삿밥은 안동의 서너 집이 향토음식으로 낸다. 이 음식은 6·25전쟁 이후 가세가 기운 종가의 며느리들이 집에서 해먹던 제사음식을 광주리에 이고 “제삿밥 사이소” 하며 행상을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안동이고 진주고 헛제삿밥의 유래에 대해 “기름진 음식을 먹고 싶어진 조선시대 양반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꾸며 음식을 해먹었다”는 ‘설’이 마치 정설인 양 여기저기 소개되고 있는데, 이건 우스갯소리일 뿐이다. 조선시대 양반이 지켜야 할 덕목 중 하나가 염치인데, 제 배 불리자고 돌아가신 조상 팔아먹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주에서 헛제삿밥을 파는 집은 딱 한 곳. 3대째 하고 있다는 전통을 내세우는데 중간에 잠시 다른 음식장사를 하다가 자리를 옮겨 ‘다시’ 헛제삿밥을 내기 시작한 지는 6년이 됐다고 한다. 제사음식은 자세히 보면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고 크게 보면 모두 비슷비슷하다. 제사음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는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음식도 내놓고 있다.

음식에 대한 정성이야 제 조상 제사상 차리듯 했겠냐만은 깔끔한 전이며 잡내 없는 생선찜이 먹을 만하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나물비빔밥. 일곱 가지 나물에 밥을 올리고 탕국을 넣어 비볐다. 단, 여기에 고추장을 넣으면 맛이 없어진다. 간장이 제격이다. 그런데 이 집에는 간장조차 넣지 않는다. 쓱쓱 비벼 맛을 보니 간장을 넣지 않아도 간이 맞다. 나물과 탕국의 간이 강하기 때문이다.

남의 집 제사음식을 앞에 놓고 우리 집 제사음식과 비교해 맛이 어떻다는 둥 떠들어가며 먹다가 문득 한 가지 허전한 구석을 발견했다. 제사음식이면 반드시 나야 하는 냄새, 그게 나지 않았다. 향내가 없었다. 그래서 ‘헛’제삿밥인가? 예전에 먹어본 바에 의하면, 안동헛제삿밥에서도 향내를 맡을 수가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진주헛제삿밥 관련 글들을 보니 안동은 헛제삿밥을 향토음식으로 적극 키워 ‘재미’를 보고 있는데, 진주는 그렇지 못하다는 불평들이 눈에 띈다. 안동과 차별화하고 진주 향토음식으로 키우는 전략으로 향내를 이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진주 인근에 예부터 전통 향 제조업체들이 있었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그에 앞서 제사음식 아닌 것은 상에서 과감히 없애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꼴인가?



주간동아 2006.05.23 536호 (p77~77)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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